1914 크리스마스
참호 안에서 우리는
작은 전나무를 세웠다.
진흙 묻은 손가락들이
초를 하나씩 꽂을 때마다
밤은 잠깐
사람의 키만큼 낮아졌다.
나는 독일어로 노래했고
철조망 너머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입들이
같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처음에는 총성이 멎은 줄 알았다.
아니,
총성이 우리를 잊은 줄 알았다.
누군가 흰 천을 흔들었다.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은 내 이름도 아니었는데
가슴 안쪽에서
젖은 군화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올라갔다.
참호의 사다리는
하늘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죽은 말과 부러진 말뚝 사이,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전우들 곁으로
짧게 놓여 있었다.
영국 병사 하나가
담배를 내밀었다.
그의 손은
내가 어제 조준하던 손이었다.
내 손은
그가 내일 다시 조준할 손이었다.
성냥을 그어 주자
불꽃은 너무 작아서
전쟁을 태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작은 불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의 웃음 속에는
고향의 식탁이 접혀 있었고
내 주머니 속 사진에는
아직 늙지 않은 어머니가
눈보라보다 오래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몰랐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알았다.
빵을 반으로 가르는 손,
흙을 털어 주는 손,
얼어붙은 시신의 단추를
천천히 잠가 주는 손.
그날 무인지대에는
적이 없었다.
적이라는 말만
철조망에 걸려
밤새 얼어붙고 있었다.
누군가 공을 찼다.
공은 진흙 위에서 멈췄고
우리는 그것을 다시 굴렸다.
마치 세상이
아직 둥글다는 것을
서로에게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해가 기울자
장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명령은 언제나
사람보다 길게 살아남았다.
우리는 다시 내려갔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밤이 오자
총은 제 주인을 기억했고
포성은 우리 이름을
하나씩 지워 갔다.
그래도 내 손가락 끝에는
그가 빌려 간 성냥불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방아쇠에 손을 얹을 때마다
그 불이 꺼질까 봐
조금씩
늦게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