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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 세계는 우리의 생각 바깥에 있는가

핵심 요약

실재론(realism)은 하나의 교리라기보다 특정 대상, 성질, 사실, 구조, 가치, 가능성에 대해 그것이 인간의 인식·언어·태도·관습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묻는 입장군이다. 실재론의 기본 형식은 두 주장으로 압축된다. 첫째,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존재 주장이다. 둘째, 그것의 존재나 성질이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검증하거나 합의하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독립성 주장이다. 여기에 문장이 객관적으로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는가라는 진리 주장이 결합되면 실재론은 존재론, 인식론, 의미론을 모두 가로지르는 철학적 문제로 확장된다.

실재론은 “세계가 완전히 알려져 있다”는 낙관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인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실재론의 핵심 장면을 만든다. 오류란 판단과 대상이 어긋나는 경우이며, 이 어긋남은 판단 바깥의 기준을 요구한다. 실재론자는 우리가 세계를 언제나 정확히 파악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가 우리의 믿음과 언어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 철학에서 실재론은 영역별로 다르게 작동한다. 한 사람은 일상 사물과 과학 이론에 대해서는 실재론자이면서, 도덕 가치나 미적 가치에 대해서는 반실재론자일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은 전자, 유전자, 장(field), 블랙홀처럼 직접 감각되지 않는 이론적 대상의 존재와 이론의 근사적 진리를 다룬다. 수학적 실재론은 수와 집합 같은 추상적 대상의 독립성을 문제 삼는다. 도덕적 실재론은 도덕 판단이 감정 표현을 넘어 참·거짓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보편자 실재론, 자연종 실재론, 양상 실재론, 사회적 실재론은 각각 성질, 분류, 가능성, 제도적 대상의 실재성을 해명한다.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대립은 단순히 “세계가 있다”와 “세계가 없다”의 대립이 아니다. 반실재론은 특정 담론에서 존재, 독립성, 객관적 진리값을 제한하거나 재해석한다. 구성적 경험론은 과학의 목표를 관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참이 아니라 경험적 적합성으로 이해한다. 유명론은 보편자나 추상적 대상의 존재론적 부담을 줄이려 한다. 비인지주의와 오류 이론은 도덕 언어가 사실을 보고한다는 생각에 도전한다. 이런 반론들은 실재론을 폐기하기보다, 어떤 종류의 독립성·진리·존재를 어느 영역에서 주장할 수 있는지 더 정밀하게 만든다.

이 글의 중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실재론은 인간의 마음, 언어, 사회적 합의, 관찰 가능성에 환원되지 않는 어떤 대상·성질·사실·구조가 있다고 보는 철학적 태도이며, 그 의미와 강도는 적용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의식

우리가 잠든 밤에도 방 안의 책상은 그대로 있는가. 아무도 달을 보지 않을 때도 달은 존재하는가. 전자와 쿼크는 직접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물리학 이론이 가리키는 실제 대상인가. “2+2=4”는 인간이 정한 기호 규칙인가, 인간과 무관하게 성립하는 진리인가.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그르다”라는 판단은 감정 표현인가, 아니면 어떤 도덕적 사실을 말하는가.

이 질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모두 인간의 생각과 말과 경험이 닿기 전에도, 혹은 그것과 독립적으로, 어떤 것이 세계 안에 있거나 성립하는지를 묻는다. 실재론은 바로 이 질문의 이름이다. 그것은 단순히 “현실을 인정하라”는 태도나 “눈앞의 사실을 보라”는 상식적 충고가 아니다. 실재론은 우리가 무엇을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 존재가 마음·언어·사회·이론·관찰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분석하는 철학적 입장군이다.

실재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실재’라는 말이 여러 층위를 동시에 가리키기 때문이다. 책상은 물리적 사물로 실재한다. 전자는 이론적 대상이지만 실험과 기술 체계 속에서 강한 설명력을 가진다. 수는 물리적 위치를 갖지 않지만 수학적 명제의 진리와 연결된다. 국가는 자연물처럼 존재하지 않지만 법, 제도, 폭력 독점, 시민권, 조세 체계 속에서 개인의 삶을 강하게 규정한다. 실재론의 과제는 이런 서로 다른 사례를 하나의 단어로 뭉개지 않고, 어떤 의미의 실재성이 문제 되는지를 구분하는 데 있다.

개념의 정의

실재론의 최소 구조는 존재 주장과 독립성 주장이다. 존재 주장은 어떤 대상, 성질, 사실, 구조가 있다는 명제다. 외부 세계 실재론은 책상, 돌, 나무, 달 같은 물리적 사물이 지각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보편자 실재론은 붉음, 인간임, 삼각형임 같은 공통 성질이 단순한 이름 이상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고 본다. 수학적 실재론은 수, 집합, 함수 같은 수학적 대상이나 수학 명제의 객관적 진리값을 인정한다. 도덕적 실재론은 적어도 일부 도덕 판단이 참이며 그 참됨이 개인의 선호나 사회적 승인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고 본다.

독립성 주장은 실재론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오직 인간의 상상, 약속, 표상, 언어 규칙 안에서만 존재한다면 강한 실재론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실재론은 보통 대상이나 성질이 인간의 마음, 지각, 언어, 관습, 사회적 합의, 검증 가능성으로부터 일정하게 독립해 있다고 본다. 독립성의 종류는 영역마다 다르다. 달의 존재는 인간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다. 화폐의 존재는 제도에 의존하지만 한 개인의 임의적 믿음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수학적 명제의 참은 물리적 관찰에 의존하지 않지만 증명, 공리, 의미론, 수학적 구조와 연결된다. 도덕적 실재론에서 말하는 독립성은 대체로 개인의 감정이나 문화적 승인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가리킨다.

진리 주장은 실재론을 의미론으로 확장한다. 어떤 영역에 대한 문장이 우리의 검증 능력과 독립적으로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다면, 그 영역에는 의미론적 실재론이 성립한다. 예를 들어 “공룡은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는 문장은 현대 과학자가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도 참 또는 거짓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더밋(Michael Dummett)의 논의 이후, 실재론은 단순히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머물지 않고 “문장의 의미는 검증 가능성에 의해 제한되는가, 아니면 검증을 넘어서는 진리 조건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동했다. 이때 반실재론은 대상을 모두 부정하는 입장이라기보다, 진리를 증거·정당화·검증 가능성과 더 밀접하게 연결하려는 입장으로 나타난다.

실재론을 다음처럼 세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핵심 질문 대표 사례
존재 축 무엇이 있는가 외부 사물, 전자, 수, 보편자, 도덕 사실
독립성 축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가 마음, 언어, 관습, 사회적 합의, 관찰 가능성
진리 축 그에 관한 문장은 객관적으로 참·거짓을 갖는가 과학 명제, 수학 명제, 도덕 판단, 양상 명제

이 세 축은 항상 같은 강도로 결합되지 않는다. 어떤 철학자는 수학 명제의 객관적 진리값은 인정하면서도 수학적 대상의 독립적 존재는 부정할 수 있다. 어떤 과학철학자는 전자라는 대상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현재 이론 전체가 근사적으로 참이라는 주장에는 조심스러울 수 있다. 어떤 사회철학자는 젠더나 계급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실제 효과를 가진 사회적 실재임을 인정할 수 있다. 실재론은 흑백 선택이 아니라 존재, 독립성, 진리의 강도를 조정하는 철학적 지도다.

배경과 맥락

실재론의 고전적 출발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에게 개별 사물들은 변하고 사라지지만, 그것들이 참여하는 형상 또는 이데아는 안정적인 지위를 가진다. 여러 아름다운 사물이 아름답다고 불릴 수 있으려면 아름다움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기에 있다. 이 관점은 보편자 실재론의 강한 형태를 예고한다. 보편자는 여러 개별자가 공유하는 성질이나 관계이며, 실재론자는 그것이 단순한 이름붙이기 이상의 근거를 가진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적 형상이 개별 사물과 분리되어 독립 영역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수정했다. 그는 형상과 본질을 개별 사물 안에서 파악하려 했다. 이 차이는 초월적 실재론과 내재적 실재론의 구분으로 이어진다. 초월적 실재론은 보편적 구조가 개별자 너머에 있다고 보는 경향을 갖고, 내재적 실재론은 개별 사물 안에서 공통 구조를 찾는다. 이 구분은 후대의 수학적 플라톤주의, 보편자 실재론, 자연종 실재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중세 보편자 논쟁은 실재론의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이다. “인간”, “동물”, “삼각형” 같은 보편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실재론은 보편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 존재한다고 보았다. 유명론(nominalism)은 보편자를 이름이나 언어적 표지로 처리했다. 개념론(conceptualism)은 보편자가 마음속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이해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중세 학설사가 아니다. 현대 철학에서도 “같은 성질을 공유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과학적 분류가 자연의 구분을 반영하는가, 수학의 일반 명제가 어떤 대상을 겨냥하는가라는 문제로 계속 살아 있다.

근대 철학에서는 외부 세계의 실재성이 중심 문제로 떠올랐다. 데카르트 이후의 회의론은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꿈이나 악마의 속임수와 구분될 수 있는지 물었다. 로크는 일차 성질과 이차 성질을 구분하여 크기, 모양, 운동 같은 성질과 색, 맛, 냄새 같은 성질의 지위를 달리 보았다. 버클리는 물질적 실체를 부정하고 존재를 지각과 연결했다. 칸트는 경험 세계의 대상에 대해서는 경험적 실재론을 유지하면서도, 공간과 시간이 사물 자체의 속성이라는 주장을 제한했다. 그의 초월론적 관념론은 외부 세계를 단순히 부정한 입장이 아니라, 경험 가능한 대상의 객관성과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 제한을 동시에 세우려는 시도였다.

현대 분석철학에서 실재론은 의미론과 과학철학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더밋은 실재론 논쟁을 진리 조건과 이해 가능성의 문제로 재구성했다. 어떤 문장이 참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참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가, 아니면 모든 가능한 증거를 넘어 독립적으로 정해지는가. 퍼트넘(Hilary Putnam)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세계를 인간 개념틀과 무관하게 “이미 잘려 있는” 대상으로 상정한다고 비판했다. 과학철학에서는 성공한 과학 이론이 보이지 않는 세계 구조를 실제로 포착하는지, 아니면 관찰 가능한 현상을 잘 맞히는 도구에 그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이 역사적 흐름은 실재론이 점점 더 약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실재론은 자신의 주장 범위를 정밀하게 조정해 왔다. 고전적 실재론은 보편자와 형상에 초점을 두었고, 근대 실재론은 외부 세계와 지각의 문제를 통과했으며, 현대 실재론은 과학 이론, 언어, 수학, 도덕, 사회적 대상, 가능 세계로 분화되었다. 실재론의 지속성은 세계가 우리의 생각과 말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나온다.

핵심 논리

실재론의 첫 번째 논리는 오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자주 틀린다. 멀리서 물웅덩이처럼 보인 것이 아스팔트의 빛 반사일 수 있고, 한때 성공적이었던 과학 이론이 후대 이론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새 자료에 의해 수정될 수 있다. 이때 오류는 단순히 의견 차이가 아니다. 판단이 맞거나 틀릴 수 있으려면 판단과 독립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실재론은 이 기준을 세계, 대상, 사실, 구조, 또는 담론 영역별 독립성에서 찾는다.

두 번째 논리는 설명력에서 나온다. 우리의 경험은 무질서한 감각 파편의 나열이 아니라 비교적 안정된 구조를 가진다. 내가 방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책상이 대체로 같은 자리에 있고, 다른 사람도 같은 책상을 가리킬 수 있으며, 물리 법칙은 반복 실험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실재론은 이런 안정성을 세계가 일정한 구조를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안정성이 실재론을 곧바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실재론은 경험의 지속성, 상호주관적 조정, 과학적 예측 성공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강한 틀을 제공한다.

세 번째 논리는 과학의 성공에서 나온다. 과학 이론은 단순히 이미 관찰한 현상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아직 관찰하지 못한 현상과 기술적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전자 이론은 전자현미경, 반도체, 입자 검출 장치 같은 실천과 결합한다. 유전자 개념은 유전 양상, 질병, 생명공학 기술을 설명하고 조작하는 데 쓰인다. 블랙홀 이론은 천체물리학의 관측과 중력파 검출의 해석에 연결된다. 과학적 실재론자는 이런 성공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른바 기적 논증은 과학 이론이 성공하는 이유가 그 이론이 세계의 구조를 적어도 근사적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 논리는 논쟁의 객관성에서 나온다. 수학자들은 정리의 증명을 두고 논쟁할 때 단순한 취향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실험 결과와 이론을 비교하며 어떤 설명이 더 좋은지 따진다. 윤리적 논쟁에서도 사람들은 단지 “나는 싫다”만 말하지 않고, 이유, 피해, 권리, 책임, 일관성을 제시한다. 실재론은 이런 논쟁이 객관적 기준을 지향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쉽다. 도덕적 실재론이 모든 도덕 문제에 즉각 정답을 준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도덕 판단이 참·거짓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 논리는 저항성에서 나온다. 세계는 우리의 언어에 완전히 복종하지 않는다. 틀린 의학 이론은 환자를 낫게 하지 못하고, 잘못된 물리 이론은 실험 장치를 예측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며, 허술한 수학 증명은 반례 앞에서 무너진다. 사회적 대상도 저항성을 가진다. 돈과 법은 인간이 만든 제도지만, 개인이 마음대로 무시할 수 없는 강제력과 효과를 갖는다. “구성되었다”는 말은 “가짜”라는 뜻과 같지 않다. 사회적 실재는 자연물과 다른 방식으로 독립성을 갖는다.

주요 유형

일상 세계와 지각 실재론

상식적 실재론은 컵, 의자, 나무, 바위, 달 같은 물리적 사물이 지각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일상생활의 기본 전제와 잘 맞는다. 우리는 물건을 찾고, 길을 기억하고, 타인과 같은 대상을 가리키며, 사물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가 무너지면 일상적 행위와 의사소통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지각 실재론은 이 상식적 구조를 지각 이론으로 분석한다. 직접 실재론은 우리가 감각 자료나 내적 표상만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사물 자체를 직접 지각한다고 본다. 간접 실재론은 외부 사물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표상, 감각 내용, 지각 경험을 통해 접한다고 본다. 착시와 환각은 이 논쟁의 중심 사례다. 막대기가 물속에서 굽어 보이거나, 없는 소리를 들었다고 느끼는 경우, 지각 경험과 외부 사물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직접 실재론은 이 틈을 설명해야 하고, 간접 실재론은 그 틈을 설명하는 대신 우리가 외부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보장해야 한다.

형이상학적 실재론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세계가 인간의 생각, 언어, 이론, 지각 방식과 독립적인 구조를 가진다고 본다. 이 입장에서 세계는 인간 개념틀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니다. 인간의 개념과 이론은 세계를 분절하고 설명하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는 세계의 구조에 의해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이 입장은 강력한 직관을 갖지만 어려운 문제도 낳는다. 우리가 항상 언어와 개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면, 개념틀과 무관한 세계 자체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퍼트넘의 내부 실재론과 개념 상대성 논의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는 세계의 독립성을 보존하려 하고, 반실재론자는 독립적 세계를 말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개념틀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논쟁은 실재론의 가장 깊은 층위, 곧 세계와 언어의 관계를 건드린다.

보편자 실재론

보편자 실재론은 여러 개별자가 공유하는 성질이나 관계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고 본다. 붉은 사과와 붉은 장미가 모두 붉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사물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닮음 자체도 하나의 관계이며, 그 관계를 설명하려면 다시 공통성을 설명해야 한다. 보편자 실재론은 이런 공통성의 근거로 붉음, 원형성, 인간임 같은 보편자를 인정한다.

플라톤적 실재론은 보편자가 개별 사물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보는 강한 형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은 보편자가 개별 사물 안에서 실현된다고 본다. 유명론은 보편자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름, 언어, 분류 습관, 개별자들의 유사성으로 설명하려 한다. 트로프 이론은 개별화된 성질, 예컨대 이 사과의 붉음과 저 장미의 붉음을 별개의 특수 성질로 보며 보편자의 부담을 줄이려 한다. 보편자 논쟁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과학의 법칙, 자연종, 속성, 수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직접 연결된다.

과학적 실재론

과학적 실재론은 성공한 과학 이론이 관찰 가능한 현상뿐 아니라 관찰 불가능한 대상과 구조에 대해서도 참이거나 근사적으로 참인 설명을 제공한다고 본다. 전자, 양성자, 유전자, 장, 블랙홀, 시공간 곡률은 일상 감각으로 직접 포착되지 않는다. 과학적 실재론자는 이런 대상들이 단지 계산을 편하게 하는 허구가 아니라 세계의 실제 구조를 가리킨다고 본다.

과학적 실재론은 세 차원을 가진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는 과학 이론이 말하는 대상이나 구조가 인간의 이론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의미론적 차원에서는 이론 문장이 문자 그대로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잘 확립된 이론에 대해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 세 차원은 분리될 수 있다. 누군가는 과학 이론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서도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믿음은 유보할 수 있다. 누군가는 특정 이론의 대상은 인정하지만 이론 전체의 진리에는 신중할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의 대표 논거는 기적 논증이다. 과학 이론이 예측, 설명, 기술적 응용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면, 그 성공을 우연으로 보는 것보다 이론이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포착한다고 보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반론은 과학사에서 나온다. 플로지스톤 이론, 에테르 이론, 고전적 열소 이론처럼 한때 성공적이었던 이론들이 나중에 폐기되었다. 비관적 귀납은 현재 이론도 미래에는 폐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소결정 논증은 같은 증거가 복수의 이론과 양립할 수 있다면 증거만으로 하나의 이론이 세계의 참된 구조를 포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본다.

구조적 실재론

구조적 실재론은 과학적 실재론과 과학사적 반론 사이의 긴장을 조정하려는 입장이다. 과거 이론의 존재론적 대상은 폐기되더라도 수학적 구조나 관계 구조는 새 이론 속에 보존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빛에 관한 오래된 이론의 매질 개념은 사라졌지만, 파동 방정식의 일부 구조나 관계적 형식은 후속 이론의 수학적 틀과 연결될 수 있다.

인식론적 구조 실재론은 우리가 세계의 개별 대상의 본성까지 알기보다 구조적 관계를 안다고 본다. 존재론적 구조 실재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개별 대상보다 구조라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현대 물리학의 관계적·수학적 성격과 잘 어울리지만, “구조만 존재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구조는 보통 구조를 이루는 항들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실재론과 플라톤주의

수학적 실재론은 수학 명제가 인간의 증명 가능성, 심리 상태, 사회적 약속과 독립적으로 객관적 진리값을 가진다고 본다. 수학적 플라톤주의는 여기에 수, 집합, 함수, 공간 같은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더한다. 이 관점에서 수학자는 수학적 구조를 발명한다기보다 발견한다. “2+2=4”는 우리가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에만 참인 문장이 아니라, 수의 구조 안에서 객관적으로 성립하는 명제다.

수학적 실재론은 수학의 객관성과 필연성을 잘 설명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수학자들이 같은 정리와 증명 구조에 도달할 수 있고, 수학은 자연과학에서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추상 대상 인식 문제가 발생한다. 수와 집합이 시공간 안에 있지 않고 원인적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베나세라프(Paul Benacerraf)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수학적 참을 설명하는 의미론과 인간의 수학 지식을 설명하는 인식론이 동시에 만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명론은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수학의 유용성을 설명하려 한다. 직관주의는 수학적 진리를 구성 가능성이나 증명 가능성과 연결한다. 구조주의는 수학적 대상의 독립적 실체성보다 구조 속 위치를 강조한다. 수학철학의 실재론 논쟁은 추상적 대상이 어떤 의미에서 실재할 수 있는지 가장 날카롭게 보여준다.

도덕적 실재론

도덕적 실재론은 도덕 판단이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으며, 적어도 일부 도덕 판단은 실제로 참이라고 본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그르다”, “부당한 차별은 잘못이다” 같은 문장은 단순한 감탄, 명령, 취향 보고가 아니라 사실을 보고하는 형식을 가진다. 도덕적 실재론자는 이 표면적 형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도덕적 실재론은 특정 규범 윤리 이론과 동일하지 않다. 공리주의자, 의무론자, 덕 윤리학자는 서로 다른 도덕 이론을 가질 수 있지만 모두 도덕적 실재론자일 수 있다. 핵심은 어떤 행위가 옳고 그른지에 관한 실질적 이론이 아니라, 도덕 명제가 사실을 보고하고 참·거짓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메타윤리적 지위다.

반대 입장은 크게 나뉜다. 비인지주의는 도덕 문장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감정, 태도, 승인, 명령을 표현한다고 본다. 오류 이론은 도덕 문장이 사실을 보고하려 하지만 그런 도덕 사실이 없기 때문에 모두 거짓이라고 본다. 상대주의는 도덕 판단의 참을 문화, 규범 체계, 관점에 의존시킨다. 구성주의는 도덕 규범의 객관성을 이성적 절차나 실천적 관점에서 구성하려 한다. 도덕적 실재론의 핵심 부담은 도덕적 불일치, 도덕 사실의 존재론적 성격, 도덕 판단과 행위 동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다.

자연종 실재론

자연종 실재론은 금, 물, 전자, 호랑이, 생물종, 질병 범주 같은 분류가 인간의 편의적 구획을 넘어 자연 자체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본다. 물이 H₂O라는 사실은 우리가 물을 어떻게 부르느냐와 독립적으로 화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금은 원자번호 79라는 미시 구조를 통해 분류된다. 이런 사례에서 자연종은 귀납, 설명, 예측의 근거가 된다.

자연종 논의는 생물학과 사회과학으로 갈수록 복잡해진다. 생물종은 화학 원소처럼 단일 본질로 정의되기 어렵고, 진화사, 번식 관계, 생태적 역할, 유전적 흐름과 관련된다. 정신질환이나 사회적 범주는 인간의 자기이해와 제도적 분류에 영향을 받아 변화할 수 있다. 이언 해킹(Ian Hacking)이 말한 상호작용적 종류(interactive kinds)의 문제는 분류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바뀐 행동이 다시 분류를 바꾸는 경우를 가리킨다. 자연종 실재론은 자연의 구분을 인정하되, 모든 분류가 같은 방식으로 자연적이라고 보지 않아야 한다.

양상 실재론

양상 실재론은 가능성과 필연성을 가능한 세계(possible worlds)의 실재성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나는 오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물이 H₂O라면 물은 필연적으로 H₂O다”, “날개 달린 말은 가능하지만 둥근 사각형은 불가능하다” 같은 문장은 실제 세계를 넘어 가능한 방식들을 참조한다. 가능한 세계 의미론은 이런 양상 문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다.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의 강한 양상 실재론은 가능한 세계들을 단순한 언어적 장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들로 본다. 어떤 명제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가능한 세계에서 참이라는 뜻이다. 어떤 명제가 필연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참이라는 뜻이다. 이 입장은 양상 논리를 매우 선명하게 설명하지만 존재론적 비용이 크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는 가능한 세계를 추상적 대상, 모형, 최대 일관 명제 집합, 또는 유용한 허구로 해석한다.

사회적 실재론

사회적 실재론은 돈, 국가, 법, 기업, 계급, 젠더, 시민권, 직위 같은 사회적 대상이 단순한 개인 심리나 허구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본다. 사회적 대상은 자연물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제도, 규칙, 실천, 승인, 문서, 권력 관계가 형성되면 개인의 임의적 믿음을 넘어서는 객관적 효과를 갖는다. 한 사람이 “이 지폐는 돈이 아니다”라고 믿어도 그 지폐는 제도적 조건 안에서 구매력을 가진다. 어떤 법적 지위는 개인의 감정과 무관하게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킨다.

사회적 실재론은 구성과 실재를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가짜라는 뜻이 아니다. 국가는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금, 법, 군대, 국경, 시민권을 통해 매우 실제적인 힘을 행사한다. 젠더나 계급도 자연종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적 분류와 제도적 실천 속에서 사람들의 기회, 위험, 자기이해를 구조화할 수 있다. 사회적 실재론의 핵심은 의존성과 독립성의 결합이다. 사회적 대상은 인간 실천에 의존하지만, 한 개인의 마음에는 종속되지 않는다.

미학적 실재론

미학적 실재론은 아름다움, 우아함, 균형, 추함, 숭고함 같은 미적 속성이 단순한 취향 표현을 넘어 대상에 귀속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어떤 음악이 긴장과 해소의 구조를 갖는다는 판단, 어떤 건축물이 비례와 균형을 이룬다는 판단, 어떤 문장이 리듬과 밀도를 가진다는 판단은 모두 미적 속성의 객관성을 일정하게 요구한다.

미학적 실재론은 도덕적 실재론과 비슷한 문제를 갖는다. 사람들의 취향은 크게 다르고, 문화와 역사에 따라 미적 기준도 변한다. 그런데도 비평과 예술 교육은 단순한 호불호 이상의 기준을 사용한다. 미학적 실재론은 이 기준을 대상의 형식, 지각 가능한 성질, 인간 감수성의 공통 구조, 문화적 실천의 안정성 속에서 설명하려 한다. 강한 객관주의와 단순한 주관주의 사이에 여러 절충적 입장이 가능하다.

구체적 사례

달의 사례는 외부 세계 실재론의 가장 단순한 장면이다. 아무도 달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달은 존재한다. 이 명제는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지각과 존재의 관계를 압축한다. 달의 존재가 관찰에 의존한다면, 관찰되지 않는 동안의 달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실재론은 달이 인간의 지각과 독립적인 물리적 대상이며, 우리의 관찰은 그 대상에 대한 불완전한 접근이라고 본다.

전자 사례는 과학적 실재론의 핵심을 보여준다. 전자는 일상 감각으로 직접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전자의 흔적, 실험 장치의 반응, 수학적 이론, 기술적 응용을 통해 전자를 안다. 도구주의자는 전자를 예측을 위한 이론적 장치로 볼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자는 전자라는 용어가 실제 세계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며, 전자 이론의 성공은 이 대상의 실재성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이 차이는 “관찰되지 않는 것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압축된다.

물과 H₂O 사례는 자연종 실재론을 설명한다. 일상적으로 물은 투명하고 마실 수 있으며 강과 바다에 있는 액체다. 과학적으로 물은 H₂O 분자 구조를 가진 물질이다. 우리가 물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물의 화학적 구조는 인간의 언어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이 사례는 자연종 용어가 단순한 묘사 목록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얼음, 수증기, 중수, 혼합물 같은 사례는 자연종 분류가 항상 단순하지 않다는 점도 드러낸다.

피타고라스 정리 사례는 보편자와 수학적 실재론을 연결한다. 우리는 유한한 수의 직각삼각형만 그려 볼 수 있지만, 피타고라스 정리는 모든 직각삼각형에 대해 성립한다고 말한다. 이 보편성은 단순한 경험 일반화로 설명하기 어렵다. 수학적 실재론자는 이 정리가 인간의 관찰을 넘어서는 수학적 구조의 진리라고 본다. 직관주의자는 그 진리를 증명 가능성과 연결할 수 있고, 유명론자는 추상적 대상 없이 수학적 언어의 기능을 재구성하려 한다.

고문 사례는 도덕적 실재론을 시험한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그르다”라는 문장이 단지 “나는 고문을 싫어한다”와 같은 뜻이라면, 도덕 논쟁은 취향 충돌에 가까워진다. 도덕적 실재론자는 이 문장이 행위의 성질, 피해, 권리, 존엄, 이유와 관련된 사실적·규범적 내용을 갖는다고 본다. 반실재론자는 도덕 언어가 사회적 규범, 감정, 명령, 태도 표현을 수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사례는 실재론이 가치의 객관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다.

돈 사례는 사회적 실재론을 보여준다. 지폐는 종이 조각이지만 특정 제도 안에서 구매력을 갖는다. 구매력은 자연적 성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상상에 불과하지 않다. 중앙은행, 법, 시장, 신뢰, 회계, 강제력, 거래 관행이 결합해 지폐를 돈으로 만든다. 사회적 실재는 인간 실천에 의존하지만 개인적 환상과 구분된다. 이 사례는 실재론이 자연물만 다루는 입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요 쟁점과 반론

가장 오래된 반론은 지각의 매개성이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접 붙잡지 못하고 감각 기관, 신경 처리, 언어, 개념, 이론을 통해 접한다. 착시, 환각, 꿈은 지각 경험이 외부 대상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반론은 외부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우리가 외부 세계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직접 실재론은 지각의 직접성을 보존하면서 오류를 설명해야 하고, 간접 실재론은 표상을 통해 세계에 도달하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주요 반론은 과소결정이다. 어떤 증거 집합이 복수의 이론과 양립할 수 있다면, 증거는 하나의 이론을 유일하게 결정하지 못한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대안 이론이 있을 수도 있다. 과소결정은 과학적 실재론이 이론의 성공에서 곧장 참을 추론하는 것을 제약한다. 실재론자는 예측력, 설명력, 단순성, 통합성, 개입 가능성 같은 이론적 덕목이 단순한 증거 일치 이상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답할 수 있다.

비관적 귀납은 과학사의 실패 사례를 근거로 한다. 과거의 성공적 이론들이 나중에 폐기되었다면, 현재의 성공적 이론도 장차 폐기될 수 있다. 이 반론은 과학적 실재론의 낙관을 직접 겨냥한다. 실재론자는 모든 이론 요소가 보존된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더 정교한 실재론은 성공에 실제로 기여한 구조, 법칙적 관계, 참조 성공, 핵심 메커니즘만 선별적으로 보존된다고 말한다. 구조적 실재론은 바로 이런 선별적 대응의 한 형태다.

개념틀 의존성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핵심 반론이다. 세계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특정 언어와 개념을 통해 세계를 분절한다. 어떤 것은 물체로, 어떤 것은 과정으로, 어떤 것은 사건으로, 어떤 것은 제도로 분류된다. 이런 분류가 달라지면 “무엇이 있다”는 목록도 달라질 수 있다. 실재론자는 개념틀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지만, 모든 개념틀이 똑같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세계는 개념틀에 의해 해석되지만, 개념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저항성을 가진다.

도덕적 실재론에 대한 반론은 도덕적 불일치와 동기 문제에서 나온다. 사회와 문화에 따라 도덕 판단이 크게 달라진다면, 객관적 도덕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또한 도덕 판단이 사실 판단이라면 왜 인간에게 행위 동기를 부여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도덕적 실재론자는 불일치가 객관성의 부재를 곧장 뜻하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다. 과학과 역사에서도 불일치는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불일치를 조정하는 더 나은 이유와 기준이 있는가다. 동기 문제에 대해서는 도덕 판단이 욕구와 결합해 동기를 만들거나, 이성적 행위자에게 규범적 이유를 제공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반론은 추상 대상 인식 문제다. 수와 집합이 시공간 바깥에 있고 인간과 원인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수학적 플라톤주의는 수학의 객관성을 잘 설명하지만 인식론적 연결을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는 이성적 직관, 구조적 인식, 공리 체계 안의 필연성, 수학적 실천의 안정성, 자연과학에서의 적용 가능성 등이 제시된다. 각각의 답은 장점과 부담을 함께 가진다.

사회적 실재론에 대한 반론은 구성성과 객관성의 긴장이다. 어떤 대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면 그것을 실재한다고 부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구성의 의미를 잘못 이해할 때 생긴다. 사회적 구성은 개인적 환상과 다르다. 법, 화폐, 기업, 학위, 시민권은 사회적 규칙과 승인에 의존하지만, 그 효과는 개인을 넘어 제도적으로 작동한다. 사회적 실재론의 과제는 자연적 독립성과 제도적 객관성을 구분하는 것이다.

반대 입장과의 비교

반실재론(anti-realism)은 특정 영역에서 실재론의 존재 주장, 독립성 주장, 객관적 진리 주장을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입장군이다. 반실재론은 세계 전체의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과학적 반실재론자는 일상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대상에 대한 믿음을 유보할 수 있다. 도덕적 반실재론자는 물리적 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도덕 사실의 독립성을 부정할 수 있다. 반실재론은 주제별 입장이다.

관념론(idealism)은 현실의 궁극적 성격을 정신, 의식, 관념, 표상과 연결해 이해한다. 버클리식 관념론은 물질적 실체를 지각과 신의 지각 안에서 이해한다. 칸트는 경험 세계의 객관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아는 대상은 인간 감성의 형식과 지성의 범주 아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관념론은 실재론의 단순한 반대말이 아니다. 칸트의 경우 경험적 실재론과 초월론적 관념론이 결합된다.

유명론은 보편자나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 보편자 실재론이 붉음이나 인간임 같은 공통 성질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유명론은 개별자와 이름, 유사성, 언어적 분류만으로 설명하려 한다. 유명론은 존재론적 절약이라는 장점을 갖지만, 공통성, 법칙, 수학, 과학적 분류를 어떻게 설명할지 부담을 진다.

도구주의(instrumentalism)는 과학 이론을 세계의 참된 구조에 대한 묘사보다 예측과 계산을 위한 도구로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 전자, 장, 유전자 같은 이론적 대상은 성공적인 계산 체계의 일부일 수 있다. 도구주의는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부담을 줄이지만, 과학 이론의 깊은 설명력과 기술적 개입의 성공을 어떻게 해석할지 설명해야 한다.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대상, 규범, 범주가 인간의 인식 구조, 사회적 실천, 언어 활동, 제도적 절차 속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구성주의는 실재론의 단순한 적이 아니다. 사회적 대상의 경우 구성성과 실재성이 동시에 성립한다. 도덕 구성주의도 도덕적 객관성을 개인 취향이 아니라 이성적 절차나 상호 정당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구성주의와 실재론의 관계는 영역에 따라 대립, 보완, 절충의 형태를 모두 가진다.

허구주의(fictionalism)는 어떤 담론을 문자 그대로 참인 존재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용한 허구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수학 허구주의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수학 언어를 과학과 추론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양상 허구주의는 가능한 세계를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 위한 허구적 장치로 해석한다. 허구주의는 존재론적 비용을 줄이지만, 허구가 어떻게 참과 유사한 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오해와 한계

실재론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실재론이 인간 지식의 완전성을 주장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재론은 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그 세계를 오류 없이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실재론은 오류 가능성과 잘 어울린다.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은 판단과 독립적인 기준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도 최선의 이론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실재론자는 이론이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이 근사적이고 수정 가능하다고 본다.

두 번째 오해는 실재론을 물질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실재론은 물리적 사물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수학적 실재론은 추상적 대상이나 수학적 진리값을 다룬다. 도덕적 실재론은 가치와 규범의 객관성을 다룬다. 양상 실재론은 가능성과 필연성의 지위를 다룬다. 보편자 실재론은 성질과 관계를 다룬다. 물질주의는 세계의 근본 구성 요소를 물질적 또는 물리적 항목으로 이해하는 입장이고, 실재론은 어떤 영역의 대상이나 사실이 마음과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가를 묻는 더 넓은 틀이다.

세 번째 오해는 실재론이 모든 영역에서 같은 강도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상 사물에 대한 실재론, 과학적 실재론, 수학적 실재론, 도덕적 실재론, 미학적 실재론은 서로 다른 근거와 반론을 가진다. 전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이 도덕적 실재론을 거부할 수 있고, 도덕적 객관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수학적 플라톤주의를 거부할 수 있다. 실재론은 전체 세계관 하나로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세분화된다.

네 번째 오해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돈, 법, 국가, 기업, 시민권은 인간의 제도와 실천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개인의 기분이나 착각이 아니다. 사회적 실재는 제도적 조건, 규칙, 승인, 물질적 장치, 권력 관계 속에서 객관적 효과를 가진다. 이 점을 놓치면 실재론은 자연물만 인정하는 좁은 입장으로 축소된다.

다섯 번째 오해는 철학적 실재론과 정치적 현실주의를 혼동하는 것이다. 영어 realism은 맥락에 따라 실재론 또는 현실주의로 번역된다. 철학의 실재론은 존재, 독립성, 진리의 문제를 다룬다.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는 국가, 권력, 안보, 경쟁, 무정부적 국제질서를 중심에 놓는다. 두 입장은 같은 단어를 공유하지만 분석 대상과 문제의식이 다르다.

실재론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강한 실재론은 때로 인간의 개념틀, 언어, 사회적 실천이 세계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과학적 실재론은 이론 교체와 과소결정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수학적 실재론은 추상 대상 인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도덕적 실재론은 도덕 사실의 존재론과 동기 문제를 설명해야 한다. 사회적 실재론은 구성성과 객관성의 관계를 정교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런 한계는 실재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보다, 실재론이 영역별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정리

실재론은 세계가 인간의 생각과 말과 승인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는다는 철학적 태도다. 그 핵심은 존재, 독립성, 객관적 진리의 세 축에 있다.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가, 그에 관한 문장은 참 또는 거짓을 가질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이 실재론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실재론은 상식의 반복에 머물지 않는다. 보편자 논쟁은 공통 성질의 근거를 묻고, 근대 인식론은 외부 세계와 지각의 관계를 묻고, 과학철학은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대상과 과학의 성공을 묻고, 수학철학은 추상 대상과 객관적 진리를 묻고, 메타윤리는 도덕 판단의 사실성을 묻는다. 사회 존재론은 인간이 만든 제도적 대상도 어떤 방식으로 실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반실재론은 실재론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실재론의 강도를 조정하는 경쟁적 해석이다. 그것은 검증 가능성, 언어, 개념틀, 관찰 가능성, 사회적 구성, 존재론적 절약을 강조한다. 실재론은 이런 반론을 통과하면서 더 정교해진다. 현대 실재론의 설득력은 모든 것을 같은 방식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대상의 종류에 따라 독립성의 방식이 다르고, 진리의 기준이 다르고, 인식 가능성의 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믿음과 언어를 넘어서는 저항성과 질서를 설명하는 데 있다.

실재론의 철학적 의미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틀릴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며, 더 나은 설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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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