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왜 '언제나 무언가를 향한다'고 말해졌는가
지향성(intentionality) 개념이 '의식의 보편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발견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다. 브렌타노(Franz Brentano)가 1874년 중세 스콜라 철학의 용어를 심리학적 언어로 옮기는 순간, 한 신학적 구별이 근대 심리 철학의 토대 개념으로 재정주되었다. 이후 후설(Edmund Husserl)이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정화하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존재론적으로 확장하며, 현대 자연주의자들이 계산 이론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이 걸어온 변형의 궤적은 차츰 불가시해졌다. 지향성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은 그 궤적이 남긴 편향을 물려받은 채 작동하고 있다.
마음 안에 깃든 대상 — 스콜라 철학의 지향적 내재
중세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전통에서 '지향적 내재(intentional inexistence)'는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신학적 해법이었다. 대상이 마음 안에 존재하는 방식과 물리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다. 불을 인식할 때 마음 안에 실제 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의 형상(forma)이 질료(materia) 없이 지성 안에 수용된다. '내재(in-existence)'의 접두사 'in-'은 부정이 아니라 위치를 표시한다. 대상이 마음 안에 깃든다는 뜻이다. 이 구별은 신학적 인식론 안에서, 즉 피조물의 인식 능력이 신의 창조 질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물음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스콜라 철학의 이 구별이 전제하는 것은 마음과 세계의 관계가 이미 신학적으로 보증된다는 사실이었다.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창조의 질서가 인식 능력과 인식 대상을 함께 산출했기 때문이다. 이 전제 안에서 지향적 내재는 성립 조건을 묻는 개념이 아니라 성립 방식을 기술하는 개념이었다. 브렌타노가 이 개념을 끌어낼 때, 그는 신학적 보증을 제거한 채 기술의 언어만 남겼다.
브렌타노의 전환 — 신학적 개념의 심리학적 재정의
브렌타노는 1874년 『심리학의 경험적 관점에서』(Psychologie vom empirischen Standpunkt)에서 정신 현상과 물리 현상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지향성을 제시했다. "모든 정신 현상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이 대상의 지향적 내재라고 불렀던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목표는 심리학을 경험 과학으로 정초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 현상의 고유한 표지가 필요했다.
브렌타노의 이동에서 결정적인 것은 신학적 맥락의 삭제다. 스콜라 철학에서 지향적 내재는 창조 질서 안에서의 인식 관계를 기술했다. 브렌타노에서 그것은 정신 현상 전반의 분류 기준이 된다. 표상(Vorstellung), 판단, 사랑, 증오, 욕망 — 이 모든 것은 대상을 향한다. 어떤 물리 현상도 이 구조를 갖지 않는다. 이 선언은 신학적 보증 없이 제시된다. 지향성이 왜 정신 현상의 표지인가라는 물음에 브렌타노는 기술을 제공하지만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동이 암묵적으로 심리학적 원자론의 단위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정신 현상을 분류하려면 개별적으로 식별 가능한 정신 행위들이 있어야 한다. 각 행위는 자신의 대상을 가지며, 그 관계가 지향성이다. 의식은 이 행위들의 집합이 된다. 이 단위 설정은 이후 현상학이 비판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 즉 의식을 행위 단위들로 분해하면 의식의 흐름과 통일성이 어떻게 설명되는가라는 물음을 예비한다.
후설의 구제 — 지향성의 현상학적 정화와 그 대가
브렌타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 —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하는 지향이 어떻게 가능한가 — 를 후설(Edmund Husserl)은 의식 구조 분석으로 재정위했다. 브렌타노의 심리학주의를 거부한 후설은 『논리 연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0–1901)에서 지향성을 심리적 사실의 기술에서 끌어내 의식의 내적 구조를 해명하는 언어로 전환했다. 브렌타노에게 대상은 정신 행위 안에 내재한다. 그러면 존재하지 않는 켄타우로스를 지향할 때 켄타우로스는 어디 있는가.
후설의 해법은 노에시스(noesis)와 노에마(noema)의 구별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노에시스는 지향 행위 자체, 즉 의식의 실제적 계기다. 노에마는 그 행위가 지향하는 방식, 즉 대상이 의식 안에서 나타나는 의미-구조다. 노에마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이 어떻게 주어지는가의 의미적 측면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하는 지향도 노에마 차원에서 완전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이 해법은 지향성 개념을 심리학적 오염에서 구제했다. 그러나 대가가 있었다. 노에마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을 의미 구성의 선험적 장으로 설정하게 된다. 의식이 세계를 향하되 그 향함이 의식 자신이 구성한 의미 구조를 통해서만 수행된다면, 세계는 의식의 구성적 활동으로 접근 가능한 것이 된다. 이 귀결의 관념론적 함의는 후설 후기의 "생활세계(Lebenswelt)" 논의에서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후설이 의식의 선험적 구성이 이미 역사적·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진 생활세계를 전제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을 때, 그것은 의식이 세계에 선행한다는 초기 입장의 실질적 수정이었다. 지향성의 분석은 결국 의식의 자기 구성 분석이 된다. 의식이 세계에 선행하는 의미 원천으로 설정될 때,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계기는 뒤로 물러난다.
하이데거의 해체 — 존재론적 심화와 개념의 확장
세계-내-존재라는 구조가 의식의 지향성보다 더 근원적이라면, 지향성 개념 자체가 어떻게 재정위되어야 하는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후설의 현상학이 여전히 의식을 세계와 마주하는 주체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 물음을 피할 수 없었다.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가 세계 안에 있다는 사실 —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라는 구조 — 을 의식의 지향성보다 더 근원적인 사태로 제시한다. 현존재는 언제나 이미 세계 안에 처해 있다.
하이데거의 이 이동은 지향성 논의의 지형을 바꿨다. 브렌타노와 후설에게 지향성은 정신 행위나 의식 구조의 특성이었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세계 향함은 관심(Sorge, 염려)의 구조로 재기술된다. 현존재는 도구를 사용하고, 타인과 함께 있으며,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기투(Entwurf)한다. 이 모든 것이 세계를 향한 근원적 관계다. 여기서 지향성은 의식의 구조에서 현존재의 세계-내-존재 방식으로 재기능화된다. 지향성은 이 더 넓은 존재론적 구조의 파생된 양상이 된다.
이 확장은 두 가지 방향에서 지향성 개념의 경계를 흐렸다. 첫째, 지향성이 의식의 특성에서 현존재의 존재 방식으로 격상되면서, 원래 브렌타노가 설정한 문제 — 정신 현상과 물리 현상의 구별 — 는 물음에서 벗어났다. 모란(Dermot Moran)이 지적하듯, 하이데거는 후설과 브렌타노의 지향성 설명이 의식을 세계와 독립된 내적 영역으로 전제한다고 비판하면서 그 도식 자체를 해체했다. 둘째, 하이데거적 전통에서 지향성 논의는 자연과학적 설명과의 접점을 잃었다. 현존재의 존재론과 신경과학의 인과 설명 사이의 번역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남겨진 채로.
자연주의의 귀환 — 지향성 논쟁이 물려받은 편향
하이데거적 전통이 남긴 자연과학과의 단절을 메우려는 시도가 20세기 후반 분석철학과 인지과학의 맥락에서 재개되었다. 여기서 자연주의란 지향성을 의식의 고유 구조가 아니라 인과·기능·설명 전략으로 처리하려는 계열 전체를 가리킨다. 데닛(Daniel C. Dennett)은 『지향적 태도』(The Intentional Stance, 1987)에서 지향성을 존재론적 특성이 아니라 설명 전략으로 재해석했다. 체계를 지향적 체계로 취급하는 것은 그 체계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한 유용한 전략이다. 자연주의적 설명과의 양립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향성은 귀속의 문제, 즉 우리가 어떤 체계를 어떻게 기술하는가의 문제로 이동했다.
설(John R. Searle)은 이 방향을 거부했다. 『지향성』(Intentionality, 1983)에서 그는 진정한 지향성은 의식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컴퓨터의 기호 처리는 의미론을 산출하지 못하는 구문론적 조작에 머문다. 그의 '중국어 방' 논증은 기능주의적 자연주의가 지향성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직관을 압축한다.
이 논쟁은 브렌타노의 유산을 두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데닛은 지향성을 3인칭 설명 전략으로 해소하려 하고, 설은 지향성을 1인칭 주관성의 환원 불가능성과 연결짓는다. 그러나 이 대비는 현대 자연주의 논쟁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크레인(Tim Crane)이 지적하듯 지향성 논쟁의 핵심 축은 데닛·설의 이분법보다 훨씬 넓다. 드레츠키(Fred Dretske), 포더(Jerry Fodor), 밀리컨(Ruth Millikan)으로 이어지는 정보의미론·목적론적 의미론 계열은 브렌타노의 심리학적 분류와 독립적으로 지향성을 재정식화한다. 이들에게 지향 상태는 인과적 정보 관계나 생물학적 기능의 산물이며, 의식의 고유 구조라는 전제 없이도 성립한다.
이 계열의 존재는 계보학적 진단에 대한 강한 반론을 구성한다. 지향성 개념의 역사적 기원이 드러나더라도, 그 사실이 지향성의 자연화 가능성을 약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원의 이야기와 개념의 현재적 타당성은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이 반론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보의미론 계열은 브렌타노의 심리학적 정의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지향성을 자연화되어야 할 독립 문제로 보존한다. 계보학의 진단은 바로 이 보존된 문제틀, 곧 왜 지향성이 철학적 설명의 핵심 표지가 되었는가를 겨냥한다. 지향 상태를 자연화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왜 그 구별이 처음부터 철학의 핵심 물음으로 설정되어야 했는가라는 물음은 별도로 남는다.
여기서 계보학이 드러내는 것이 있다. 브렌타노의 개념 이동은 스콜라 철학의 신학적 보증을 제거하면서도 그 보증이 담당하던 역할, 즉 마음과 세계의 관계가 왜 특정한 구조를 갖는가에 대한 설명을 채우지 않았다. 후설은 의식의 선험적 구성 능력으로 그 공백을 채우려 했고,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의 존재론으로 물음 자체를 이동시켰으며, 현대 자연주의는 인과 관계와 기능적 역할로 대체하려 한다. 각각의 시도는 앞선 단계의 미해결 문제를 다른 언어로 재설정한 것이다.
현재 지향성 논쟁의 구조적 한계는 이 계보의 누적에서 비롯된다. 지향성이 의식의 보편 특성으로 자연화된 것은 특정 학문적 실천과 제도적 환경, 즉 19세기 말 심리학의 과학화 기획, 20세기 초 현상학 운동, 20세기 후반 인지과학의 부상이라는 조건들의 산물이다. 현재 지향성 논쟁의 구조적 한계는 브렌타노적 표지 설정 자체에 있다. 지향성이 정신 현상을 물리 현상과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전제를 물음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논쟁의 지형이 달라진다.
참고자료
- Brentano, Franz. Psychologie vom empirischen Standpunkt (1874). Eng. trans. by L. L. McAlister, Psychology from an Empirical Standpoint. London: Routledge, 1973.
- Husserl, Edmund. Logische Untersuchungen (1900–1901). Eng. trans. by J. N. Findlay, Logical Investigations. London: Routledge, 1970.
- Husserl, Edmund. 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1913). Eng. trans. by F. Kersten, Ideas Pertaining to a Pure Phenomenology and to a Phenomenological Philosophy. The Hague: Martinus Nijhoff, 1982.
- Heidegger, Martin. Sein und Zeit (1927). Eng. trans. by J. Macquarrie and E. Robinson, Being and Time. Oxford: Blackwell, 1962.
- Dennett, Daniel C. The Intentional Stance. Cambridge, MA: MIT Press, 1987.
- Searle, John R. Intentionality: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Min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 Dretske, Fred. Knowledge and the Flow of Information. Cambridge, MA: MIT Press, 1981.
- Fodor, Jerry A. Psychosemantics: The Problem of Meaning in the Philosophy of Mind. Cambridge, MA: MIT Press, 1987.
- Millikan, Ruth Garrett. Language, Thought, and Other Biological Categories. Cambridge, MA: MIT Press, 1984.
- Moran, Dermot. "Heidegger's Critique of Husserl's and Brentano's Accounts of Intentionality." Inquiry 43 (2000): 39–65.
- Crane, Tim. "Intentionality as the Mark of the Mental." Contemporary Issues in the Philosophy of Mind, ed. A. O'Hea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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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