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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설명의 윤리적 한계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 설명은 가치 판단이 놓인 조건을 드러내는 진단 도구로 쓰일 때 통찰이 된다. 인간은 신체를 가진 동물이고, 욕망·두려움·친밀감·경쟁심·협력 성향은 긴 생물학적 역사 안에서 형성된 능력이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인간 행동은 순수한 의지, 순수한 문화, 순수한 이성의 산물처럼 과장된다. 진화 설명은 바로 그 과장을 낮춘다. 인간이 왜 위협에 민감한지, 왜 친족과 집단에 강하게 반응하는지, 왜 평판과 지위에 집착하는지, 왜 도덕 감정이 때로 논증보다 먼저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진화론은 강력한 언어를 제공한다. 문제는 그 언어가 “그렇게 형성되었다”에서 “그러므로 그렇게 살아도 된다”로 넘어갈 때 발생한다.

생존의 언어는 인간 행동을 빠르게 이해하게 만든다

진화론적 설명은 인간을 예외적 존재로 분리하지 않고 생명 과정의 연속선 안에 둔다. 이 관점은 인간 행동을 신비화하는 설명을 약화시킨다. 질투를 단순한 도덕적 결함으로만 보거나, 공격성을 순수한 악의 표현으로만 보거나, 협력을 고귀한 정신의 기적으로만 보는 설명은 인간의 반복적 행동 양식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진화론은 이런 현상을 생존과 번식, 집단 유지, 위험 회피, 상호성, 평판 관리의 문제로 다시 배열한다.

이 재배열은 통찰이다. 다윈은 인간의 도덕 감각을 동물의 사회적 본능, 특히 동정과 애착의 연속선에서 설명하려 했다. 도덕이 하늘에서 떨어진 명령이라는 설명이 힘을 잃을 때, 도덕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묻는 질문은 인간 이해의 중요한 진전이 된다. 현대 진화심리학도 이 흐름 안에서 인간 행동을 내적 심리 기제와 적응의 산물로 설명하려 한다. 이 접근은 인간의 판단이 투명한 이성의 명령으로만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흔든다. 인간은 이유를 말하기 전에 이미 끌리고,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가까운 사람을 편든다.

진화 설명의 매력은 설명의 경제성에 있다. 여러 사회에서 반복되는 행동을 볼 때, 우리는 매번 완전히 다른 문화적 우연을 가정할 필요 없이 일정한 생물학적 조건을 검토할 수 있다. 부모의 양육 투자, 집단 내부 협력, 외집단 경계, 성적 선택, 위험 지각 같은 주제는 문화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완전히 임의적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진화론은 이 반복성의 배경을 묻는다. 인간 행동을 진화로 설명한다는 말은 문화와 제도가 작동하기 전에 이미 깔려 있는 감정적·인지적 장비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통념은 설명의 성공을 가치의 증거로 읽는다

진화 설명이 사회적 통념으로 바뀌면 “살아남았다”는 말은 곧 “우월하다”는 말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어떤 행동이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는 사실, 어떤 성향이 생존에 유리했을 수 있다는 가설, 어떤 제도가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관찰은 쉽게 가치 판단의 어휘로 번역된다. 경쟁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필요하고, 불평등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불가피하며, 공격성은 오래된 본능이기 때문에 제거할 수 없다는 식의 문장은 바로 이 번역에서 나온다.

이 통념은 실제 설명력의 일부를 붙잡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는다. 자연선택은 실제로 차이를 만든다. 환경에 더 잘 맞는 형질은 퍼질 수 있고, 집단의 생존에 유리한 행동 양식은 안정화될 수 있다. 인간 사회도 생물학적 조건과 완전히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규범이 유지되는 데에는 그것이 인간의 욕망, 공포, 보상 체계와 맞물리는 방식이 있다. 제도가 인간의 심리적 조건과 맞지 않으면 강한 저항을 낳고, 교육·법·도덕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 위에서 작동한다.

통념의 가장 강한 형태는 사회다윈주의에서 드러난다. 사회다윈주의는 자연선택의 언어를 인간 집단, 계급, 국가, 시장의 경쟁에 적용하면서 강자의 지배와 약자의 탈락을 자연 질서처럼 해석했다. 이때 생존은 자격의 표지로 변한다. 살아남은 자가 더 적합하고, 더 적합한 자가 더 우수하며, 더 우수한 자가 더 많은 권리와 자원을 가져도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통념은 여기서 생물학적 설명을 사회적 판정 장치로 바꾼다.

설명은 정당화로 바뀌는 순간 사회적 위험이 된다

진화 설명의 위험은 자연을 규범의 최종 법정으로 세울 때 발생한다. 어떤 행동이 진화적 이점을 가졌다는 주장은 그 행동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고 반복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 주장은 그 행동이 어떤 조건에서 강화되었는지를 말하는 설명의 범위에 머문다. 폭력, 편애, 지배욕, 배제 성향도 특정 환경에서는 생존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런 결합을 확인하는 일은 인간 사회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같은 확인을 정당화로 바꾸면 경계의 대상이 제도의 원칙으로 승격된다.

여기서 핵심은 사실 명제와 규범 명제의 층위 차이다. 흄 이후 윤리학에서 반복되어 온 문제는 “무엇이 그러하다”는 진술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진술이 어떻게 나오는가라는 질문이다. 무어가 비판한 자연주의적 오류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 어떤 것이 쾌락적이거나, 자연적이거나, 진화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사실은 선함을 판정하는 데 필요한 평가 전제를 대신할 수 없다.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은 어떤 삶을 승인할 것인지, 어떤 고통을 줄일 것인지, 어떤 관계를 존중할 것인지에 관한 평가 전제를 요구한다.

사회적 자연화는 이 평가 전제를 숨긴다. 예컨대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말은 특정한 조건에서는 경험적 설명이 될 수 있다. 그 기업이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은 별도의 규범 판단을 필요로 한다. 특정 성 역할이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는 말은 역사적·심리적 설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성 역할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은 자유, 평등, 해악, 자율성에 관한 판단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자연화의 위험은 바로 이 빈칸을 지우는 데 있다. 사회는 가치 판단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이 단지 자연을 따를 뿐이라고 말하게 된다.

적응주의의 한계는 과학 내부에서도 절제 장치로 작동한다

모든 반복 행동을 적응의 산물로 읽는 태도는 진화론 자체 안에서도 논쟁적이다. 적응주의 논쟁은 어떤 형질이나 행동을 너무 빠르게 “그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생겼다”로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굴드와 르원틴의 「산마르코의 스팬드럴」 논의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 형질을 각각 독립적 적응으로 상상하는 설명 습관을 비판하면서, 부산물·제약·역사적 우연·발달 구조가 진화 설명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보았다.

이 절제 장치는 인간 행동 논의에서 더 중요하다. 인간 행동은 유전자, 발달, 학습, 제도, 언어, 경제 조건, 권력 관계가 함께 만든다. 어떤 행동이 오늘 관찰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이 과거 환경에서 직접 선택된 적응이라고 결론짓는 일은 설명을 너무 빨리 닫는다. 특히 성별, 계급, 인종, 능력, 가족, 범죄, 노동 같은 사회적 쟁점에서는 진화 설명이 기존 권력 관계와 결합하기 쉽다. 설명이 과학적 언어를 얻는 순간, 사회적 불평등은 오래된 본성의 표현처럼 보인다.

진화론을 신중하게 쓰려면 세 가지 질문을 분리해야 한다. 첫째, 그 행동은 실제로 여러 문화와 조건에서 반복되는가. 둘째, 그 반복은 생물학적 적응, 발달 제약, 문화적 전승, 제도적 보상 중 무엇으로 가장 잘 설명되는가. 셋째, 그 설명이 맞다고 해도 우리는 그 행동을 어떤 규범 아래에서 다룰 것인가. 이 세 질문을 섞으면 설명은 선전이 된다. 이 세 질문을 나누면 진화론은 인간 사회의 불편한 조건을 더 정확히 보게 하는 도구가 된다.

가치 판단은 적응의 결과를 다시 심사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가치는 생존의 결과를 심사하는 인간적 능력에서 생긴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자신이 물려받은 성향을 그대로 제도화하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공포 정치의 제도화를 거부할 수 있고, 친족을 편애하는 성향을 가지면서도 공정한 법을 만들 수 있으며, 지위를 욕망하면서도 존엄의 평등을 규범으로 세울 수 있다. 윤리는 자연적 성향을 인식한 뒤 그것을 어떤 질서 안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데서 생긴다.

이 관점은 진화 설명을 배척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덕 판단이 감정, 본능, 사회적 승인, 습관, 교육과 얽혀 있다는 사실은 윤리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바로 그 취약성 때문에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다. 법과 교육과 공론장은 인간이 편향과 공감, 공격성과 협력, 이기심과 상호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진화론은 윤리가 다루어야 할 재료의 성질을 알려준다.

생존에 유리한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명제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빠뜨린다. 인간은 살아남은 것을 다시 평가한다. 오래 지속된 관습을 폐지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충동을 억제하기도 하며,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능력은 인간이 역사 속에서 형성한 규범적 실천이다. 자연선택은 우리에게 특정한 성향을 남겼고, 사회는 그 성향을 재료로 제도를 만든다. 가치는 그 제도가 어떤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심사하는 이름이다.

생존의 사실은 가치 판단의 원자료가 된다

인간 행동을 진화로 설명하는 일은 통찰과 위험을 동시에 품는다. 통찰은 인간을 추상적 이성의 환상에서 끌어내려 몸, 감정, 습관, 선택 압력의 조건 속에 놓는 데 있다. 위험은 그 조건을 규범의 판결문으로 오독하는 데 있다. 진화론은 왜 인간이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설명을 제공한다. 윤리는 그렇게 행동하는 인간이 어떤 제도와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생존은 가치 판단의 원자료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윤리는 공허해지고, 인간의 자연적 성향을 무시하는 제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생존의 사실은 가치 판단의 심판자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하다. 살아남은 것은 이미 힘을 가졌다는 뜻일 수 있지만, 힘의 보유와 존중받을 자격은 다른 범주에 속한다. 인간 사회의 과제는 생존에 유리했던 성향을 존엄과 자유와 고통의 감소를 해치지 않는 질서 안에 재배치하는 일이다.

진화는 인간을 설명하는 강력한 언어이고, 가치는 그 설명을 다시 심사하는 인간의 실천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