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 앞에서

멜빌의 바다를 지나며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얼굴이
수평선 아래서 오래 숨을 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다
각자의 두려움을 입에 올렸다.
운명, 저주, 신, 괴물.
말들은 파도 위에 잠깐 떠 있다가
젖은 밧줄처럼 가라앉았다.
에이해브여,
잃어버린 다리 하나가
밤마다 선실 벽을 두드렸다.
등불은 낮게 흔들리고,
나무벽에는 네 그림자가
부러진 작살처럼 걸려 있었다.
흰 등이 물 위로 솟을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찡그렸다.
누군가는 악이라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모자를 벗었다.
고래는 물살을 밀고 지나갔다.
남은 것은 부서진 햇빛과
오래 흔들리는 거품뿐이었다.
돛은 팽팽했다.
밧줄은 젖은 뱀처럼 손바닥을 감았고,
갑판의 못들은 밤새 식지 않았다.
선원들은 명령을 들었다.
자기 목소리를 떠올릴 틈도 없이
그들은 한 사람의 눈빛 아래 서 있었다.
오, 피쿼드호여,
나무와 쇠로 세운 검은 예배당.
돛대는 첨탑처럼 흔들리고,
작살은 제단 위의 촛대처럼 번뜩였다.
기도는 없었다.
한 사람의 침묵이
모든 입을 대신해 타올랐다.
모비 딕이 솟구치던 순간
하늘은 흰 금속처럼 번쩍였다.
물보라는 잠깐 별가루가 되었고,
너는 그 빛 속에서 외쳤다.
“나는 너를 찌른다!”
작살은 날아갔다.
그 끝에는
네 가슴속에서 밤마다 벌어지던
검고 마른 우물이 매달려 있었다.
마침내 배가 기울었다.
돛은 찢어진 폐처럼 펄럭였고,
밧줄들은 미친 풀뿌리처럼 뻗었다.
사람들의 외침이 물속에서 짧아졌다.
네 손에 감긴 줄이 팽팽해졌고,
그 줄은 너를 끌고
더 어두운 물살 속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슈메일,
떠오른 자여,
너는 널빤지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사라지는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네 입술에는 말이 오지 않았고,
눈앞에는 흰 거품만 오래 남았다.
그날 네 손에는
널빤지의 거친 결,
손톱 밑의 소금,
물속으로 내려간 자들의 무게가 남았다.
흰 고래는 멀리 헤엄쳤다.
차갑고, 찬란하고, 무심한 등.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호흡.
작살이 닿기 전부터 어두웠고,
배가 사라진 뒤에도 흔들릴 물결.
밤이 오자 바다는
별들을 하나씩 다시 받아들였다.
부서진 돛대는 물속에서 천천히 식었고,
먼 수평선 아래
흰 등 하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검은 물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