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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폭우가 내리는 대기의 식도를 따라 휘발되는 비명들이 천문학적인 정적을 수혈하며, 망각의 농포를 부화시킨다. 질척이는 어둠 속에서 하늘은 스스로의 목구멍을 짓이겨 빗줄기를 쏟아낸다. 대기가 삼킨 비명들은 형체도 없이 흩어져 차가운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고막을 짓누르는 거대한 정적뿐이다. 핏기 없는 새벽이 올 때마다 지워진 기억들은 진물처럼 터져 나와 도시의 모서리를 적신다. 성실하게 부풀어 오른 망각의 덩어리들이 발밑에서 꿈틀대며 새로운 비극을 잉태한다. 젖은 땅 위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서지는 것은 누군가 간절히 붙들고 있던 마지막 존재의 파편이다. 세계는 이제 거대한 아가리가 되어, 이름 없는 슬픔들을 하나둘씩 소화시킨다.

빗물은 수직으로 내리는 법을 잊은 지 오래다. 그것은 이제 마치 숨을 거둔 별들의 마지막 떨림처럼 공중에서 수평으로 흩어지며 존재의 방향을 상실한다. 횡단보도의 흰 선들은 젖어서 번지고 있으며, 그것은 마치 오래된 뼈마디들이 빛을 삼키며 썩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신호등은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 채 붉게 진물러 있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물웅덩이마다 기억의 찌꺼기들이 부유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수축하는 어둠의 입자들이다. 나는 그 물웅덩이를 밟는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냉기는 망각의 점성이다. 잠긴 발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 무게가 더 무거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 속에서 아직 덜 썩은 누군가의 이름이 부력에 밀려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아가리는 목젖마저 없이 텅 비어 있고, 그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삼킴의 소리는 놀랍도록 맑은 화음으로 밤을 접는다.

작성일: 2026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