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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빛 소음

들판의 두루미가 고개를 떨궈 살구빛의 소음을 주워 담는다. 부리 끝에 걸린 것은 계절이 무르익으며 떨어뜨린 볕의 조각들, 혹은 누군가 두고 간 낮은 대화의 잔향일지도 모른다. 소리는 딱딱한 부리 사이에서 둥글게 갈려 고요한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흩어진다.

두루미는 서두르지 않는다. 가느다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따스한 색채의 소음은 새의 허기를 채우고, 텅 빈 들판에는 깃털이 스치는 서늘한 공기만 남는다. 이제 들판은 더 깊은 침묵으로 자신을 채우기 시작한다.

살구빛 소음이 잦아든 자리마다 저녁노을이 내려앉아 대지를 물들인다. 두루미는 한 발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자신이 삼킨 그 따뜻한 울림을 품고 다시 긴 날개를 편다. 허공으로 번지는 새의 그림자는 하나의 고결한 선율이 되어, 저무는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느릿하게 휘어진다. 들판은 비로소 완성된 적막 속에서 다음 계절의 소리를 기다리며 숨을 죽인다.

밤은 서서히 들판의 가장자리부터 스며든다. 낮 동안 풀잎에 매달려 있던 미세한 떨림들은 하나둘 제 몸을 접고, 두루미가 지나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원처럼 옅은 온기만 남는다. 그것은 막 사라진 소리의 체온 같아서, 어둠조차 한동안 그 자리를 밟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멀리 물가에서는 늦은 바람이 천천히 몸을 낮춘다. 바람은 수면 위에 흩어졌던 파문의 흔적을 더듬다가, 이미 식어버린 볕의 부스러기 몇 조각을 건져 올리는 듯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채 다시 풀숲 사이로 흘러들고, 들판은 잠든 짐승처럼 깊고 고른 숨을 이어 간다.

하늘에 첫 별이 떠오를 무렵, 두루미의 그림자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기 속에는 긴 날개의 완만한 곡선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듯 남아 있다.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낮은 선율이 어둠의 결을 따라 천천히 번지고, 들판은 그 희미한 잔향을 품은 채 더욱 조용히 밤의 안쪽으로 기울어 간다.

작성일: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