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에 대하여
“__결혼하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든 하지 않든,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__위대한 인간의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이다. 아무것도 다르기를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온 영원을 통틀어서도.”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1888)
1. 서론: 후회의 철학적 위상
사람은 흔히 후회를 약한 감정으로 취급한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들고 괴로워하는 일,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되새기며 자신을 소모하는 일, 혹은 결단력 없는 정신의 잔열 정도로 이해한다. 그래서 후회에 대한 가장 손쉬운 처방은 늘 비슷하다. 잊어라, 앞으로 나아가라, 그 또한 경험이었다고 받아들여라. 그러나 이러한 충고는 대개 후회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다. 후회는 단순히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는지, 책임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삶의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철학적 감정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후회는 오랫동안 이성의 반대편에 놓인 열등한 감정으로 취급되었다. 스토아학파는 후회를 불완전한 판단의 결과로 보았고, 칸트의 도덕철학은 의지의 선함이 결과와 무관하게 도덕적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함으로써 후회가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감정이 될 여지를 구조적으로 축소했다. 그러나 20세기 실존철학과 현대 도덕철학은 이 전통에 깊은 균열을 냈다. 키르케고르는 선택 자체가 불안의 원천임을 보였고,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시간적 유한성이 모든 결단에 되돌릴 수 없는 무게를 부여한다고 논증했으며, 버나드 윌리엄스는 행위자-후회라는 개념을 통해 도덕적 비난 가능성과 무관한 후회의 합리성을 옹호했다. 이 에세이는 이러한 철학적 전통들을 교차시키며, 후회라는 감정이 인간 실존의 구조적 조건—시간성, 자유, 책임, 자기 해석—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후회는 상처이지만 동시에 인식이다. 그것은 지나간 일에 대한 고통이면서, 내가 누구였고 지금 누구이며 앞으로 누구일 수 없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거울이다. 이 에세이의 과제는 그 거울의 구조를 해명하는 것이다.
2. 반사실적 사고와 후회의 인지적 구조
후회가 고통스러운 까닭은 단순한 상실 때문이 아니다. 상실은 슬픔을 낳지만, 후회는 슬픔에 더해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지목하게 만든다. 여기서 후회는 비극적 사건과 구별된다. 누군가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그는 슬퍼할 수는 있어도 반드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그때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내가 돌아섰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용기 있었더라면”이라는 문장은 후회의 문장이다. 이 문장들은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 곁에 하나의 반사실적 세계를 세운다.
후회는 언제나 실제 세계와 가능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감정이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사실과, 선택 하나만 달랐더라면 열렸을지도 모를 다른 삶의 형식을 나란히 겹쳐 본다. 그러므로 후회는 기억의 감정이 아니라 비교의 감정이다. 현재의 불충분함이 과거의 다른 가능성과 충돌할 때 후회는 발생한다. 인지심리학에서 카네만과 트버스키가 정립한 반사실적 사고 연구는 이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한다. 인간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대안적 결과를 구성하고 그것과 현실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형성한다.
이 점에서 후회는 인간 이성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고유한 능력에서 나온다. 인간은 이미 일어난 사건만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의미까지 계산하는 존재다. 엡스튜드와 뢰제가 제안한 반사실적 사고의 기능 이론에 따르면, 후회는 잘못된 선택 구조를 미래에 수정하게 만드는 적응적 인지 장치이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은 이 유익한 기능이 곧장 실존적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우리는 교정하기 위해 후회하지만, 동시에 후회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기도 한다. 후회는 방향 감각을 주는 나침반이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족쇄다.
길로비치와 메드벡의 연구는 이 이중성의 시간적 구조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단기적으로는 행위한 것에 대한 후회가 더 강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행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지배적이 된다. 행위의 후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리화, 인지부조화 감소, 행동적 교정 등의 심리적 과정에 의해 완화되는 반면, 미행위의 후회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상상 속에서 점점 더 이상화되고 낭만화되면서 오히려 증폭된다. 코넬 대학교 명예교수부터 양로원 거주자까지, 삶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가장 깊이 후회하는 것은 잘못 한 일이 아니라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발견은 후회가 단순한 오류 인식을 넘어, 실현되지 않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3. 도덕적 운과 행위자-후회: 윌리엄스와 네이글
그렇다면 후회는 단지 잘못된 선택의 흔적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어떤 후회는 명백한 잘못에서 생긴다. 우리는 비겁했고, 게을렀고, 무책임했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으며, 자기기만 속에서 해야 할 말을 미뤘다. 이런 후회는 윤리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결과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더 나은 판단과 더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책임의 문제가 개입한다. 나는 내 행위의 원인이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러나 모든 후회가 도덕적 실패에 뿌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버나드 윌리엄스가 도입한 ‘행위자-후회(agent-regret)’ 개념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한다. 윌리엄스의 유명한 사례를 보자. 과실 없이 정상적으로 운전하던 트럭 운전사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치어 사망케 한다. 이 운전사에게 법적 과실은 없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우리가 이 운전사에게서 아무런 후회도 느끼지 않는 사람, 즉 “끔찍한 일이 일어났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만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행위자-후회의 구성적 사유는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라는 일인칭 반사실적 판단이다. 이것은 방관자의 후회—‘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와 질적으로 다르다.
윌리엄스에게 행위자-후회를 인정하지 않는 합리성 개념은 “미친 합리성 개념”이다. 칸트적 도덕 체계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오직 의지의 선함에서만 도출하므로, 결과가 운에 좌우된 경우 행위자가 후회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이러한 도덕적 평가의 순수성이야말로 인간 경험의 실재를 왜곡한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만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세계에 남긴 흔적 전체와 관계 맺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네이글은 같은 문제를 ‘통제 원칙(Control Principle)’의 관점에서 정식화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만 도덕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네이글이 보여주듯, 우리의 일상적 도덕 판단은 이 원칙을 체계적으로 위반한다. 결과적 운, 환경적 운, 구성적 운, 인과적 운—인간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운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윌리엄스가 제시한 고갱의 사례는 이 문제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준다. 가족을 버리고 타히티로 떠나 위대한 화가가 된 고갱은 결과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지만, 만약 그가 실패했다면 같은 결정은 비난받아 마땅한 무책임한 행위가 된다. 도덕적 평가가 운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도덕 체계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바로 여기서 후회는 정의(正義)의 감정이 아니라 노출의 감정이 된다. 우리는 후회를 통해 인간 행위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본다. 내가 내 삶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 선택은 정보의 결핍, 성격의 한계, 타이밍의 우연, 사회적 조건, 타인의 행동, 몸의 상태, 시대의 압력과 얽혀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살아낸 결과를 외부 요인으로만 분해하여 해체할 수 없다. 삶은 분석에서는 분산되지만 체험에서는 한 덩어리로 돌아온다. 인간은 완전한 주권자도 아니고 완전한 피해자도 아니다. 후회는 바로 이 중간지대, 곧 제한된 자유를 가진 존재의 정직한 통증이다.
4. 키르케고르: 자유의 현기증과 후회의 불가피성
“결혼하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이 구절은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인간 조건에 대한 존재론적 진단이다. 키르케고르에게 후회의 불가피성은 인간 자유의 구조에서 직접 도출된다.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가능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선택은 구조적으로 상실을 내포한다. 키르케고르가 “이중 후회(double regret)”라 부른 것은 바로 이 구조적 딜레마, 즉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배제한 가능성에 대한 후회가 불가피하게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키르케고르의 “자유의 현기증(Svimmelhed af Friheden)” 개념은 이 구조를 더 깊이 파고든다. «불안의 개념»(1844)에서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공포와 구별한다. 공포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대상을 향하지만, 불안은 특정한 원인 없이 존재 자체에 각인된 것이다. 높은 절벽 위에 선 사람은 떨어질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스스로 뛰어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전율을 경험한다. 이 전율이 바로 불안이다. 우리가 어떤 가능성—가장 끔찍한 가능성까지도—을 실현할 자유가 있다는 순전한 사실이 거대한 두려움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 통찰은 후회의 존재론적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후회는 단지 나쁜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하나의 경로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존재론적 조건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의 세 단계—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단계—는 각각 후회와 불안에 대한 상이한 대응 방식을 보여준다. 심미적 단계에서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며 선택의 무게를 회피하지만, 결국 권태와 절망에 부딪힌다. 윤리적 단계는 구조와 책임을 제공하지만, 실존적 죄의식을 도입한다. 종교적 단계에서야 비로소 불안은 초월의 계기가 되지만, 이는 신앙의 도약이라는 극한적 선택을 전제한다.
키르케고르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불안과 후회를 제거하려는 시도 자체가 비본래적 실존의 표지이다. 오히려 불안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불안에 의해 형성된 사람은 가능성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가능성에 의해 형성된 사람만이 자신의 무한성에 따라 교양된 것이다.” 이 문장은 후회의 역설적 기능을 함축한다. 후회는 우리를 마비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능성의 무게를 체감하게 함으로써 선택의 진지함을 회복시키는 존재론적 장치이기도 하다.
5. 하이데거: 시간성, 죽음을 향한 존재, 그리고 결단성
후회를 더 깊게 만드는 것은 시간의 비가역성이다. 잘못은 고치면 되지만, 후회는 많은 경우 고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과할 수는 있어도 이미 일어난 상처를 삭제할 수는 없다. 늦게라도 사랑을 고백할 수는 있어도, 그 고백이 가장 필요했던 시간의 공백은 복구되지 않는다. 직업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고 생활을 새로 꾸릴 수는 있어도, 한 시절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볼 수는 없다. 하이데거의 시간성 분석은 이 경험의 존재론적 구조를 해명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Dasein)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시간적이다. 시간성(Zeitlichkeit)은 미래, 기재(旣在), 현재의 탈자적(ekstatisch) 통일이며, 이 세 계기 가운데 미래가 근원적이다.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기투(Entwurf)함으로써 실존하며, 이 기투는 항상 이미 세계 안에 던져진(Geworfenheit) 상태에서 수행된다. 후회는 이 구조 안에서 정확한 존재론적 위치를 갖는다. 그것은 기재—이미 있었음—의 양태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되, 미래적 기투를 변형시키는 감정이다. 후회하는 인간은 과거의 선택을 다시 떠맡으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재배치하는 존재이다.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 개념은 후회의 무게를 존재론적으로 근거짓는다. 나의 시간적 유한성은 모든 선택에 되돌릴 수 없는 무게를 부여한다. 현존재가 유한하기 때문에, 하나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죽음은 어떤 실존 방식도 존재의 핵심 문제—그것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타당한 실존 방식이란 없다. 바로 이 사실이 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책임을 나에게 돌려보낸다.
비본래적 현존재는 이 유한성의 경험에서 도주한다. 일상적 규범과 정체성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거짓된 영속성과 안정성의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세인(das Man)’이라 부른 공공적 자기는 이러한 도피의 구조적 형식이다. 그러나 본래적 현존재는 불안(Angst) 속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직면하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소유한다. 이것이 ‘결단성(Entschlossenheit)’이다. 결단성은 자신의 피투성(被投性)—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의 것인 상황—을 온전히 떠맡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가능성을 기투하는 태도이다.
후회는 이 틀 안에서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비본래적 후회는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마비시키는 감정—하이데거가 ‘망각(Vergessenheit)’이라 부른 비본래적 기재의 양태—이다. 이 양태에서 인간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면서 현재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본래적 후회는 ‘반복(Wiederholung)’—과거를 다시 떠맡으면서 미래를 향해 자신을 새롭게 기투하는 것—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결단적 현존재는 후회를 과거의 형벌이 아니라 미래적 기투의 재료로 전환한다. 후회가 단순한 과거의 그림자가 아니라 남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6. 니체: 아모르 파티, 영원회귀, 그리고 후회의 극복
후회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철학적 응답은 니체에게서 나온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개념은 후회의 구조 자체를 전복하려는 시도이다. “위대한 인간의 나의 공식은 아모르 파티이다. 아무것도 다르기를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온 영원을 통틀어서도. 필연적인 것을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물며 감추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모든 이상주의는 필연적인 것 앞에서의 허위이다—그것을 사랑하는 것.”
니체에게 후회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시간적 표현이다. 르상티망은 과거에 대한 소급적 판단이며, 현실에 대한 부정이자 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소망적 투사이다. 전통 도덕은 이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를 심판하며 미래에 구원을 기대하는 시간 의식이 도덕적 르상티망의 뼈대이다. 니체는 이 구조 전체를 전복하려 한다. 아모르 파티는 필연적인 것에 대한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을 능동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고통과 상실을 포함한 삶의 전체를 긍정하는 것—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긍정의 최고 형식이다.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 실험은 이 긍정의 시금석이다. «즐거운 학문»(1882)의 유명한 아포리즘에서 니체는 악마가 당신의 가장 외로운 고독 속에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하라고 제안한다: 지금 살고 있고 살아온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모든 고통과 모든 기쁨과 모든 사유가 정확히 같은 순서와 연쇄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 사상 실험에 기쁨으로 응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절망으로 무너지는가? 니체에게 이것은 아모르 파티에 도달했는지를 시험하는 심리적 검사이다.
그러나 니체의 제안은 내적 긴장을 품고 있다. 니체 자신의 노트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나는 삶을 다시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견뎠는가? 창조함으로써. 무엇이 이 광경을 견디게 하는가? 삶을 긍정하는 초인의 비전. 나 자신이 그것을 긍정하려 시도했다—아!” 이 솔직한 고백은 진정한 긍정에 수반되는 실존적 현기증을 드러낸다. 아모르 파티는 쉽게 도달되는 태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이상이다. 아도르노는 이를 삶의 철학에서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비판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요구가 비판과 유토피아의 가능성 자체를 폐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가 후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전체를 긍정하라는 요구는 특정한 고통과 상실의 구체성을 추상적 긍정 속에 용해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니체의 통찰에서 여전히 취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후회가 르상티망의 형태를 취할 때—현재를 부정하고 과거를 심판하며 대안적 가능성을 무한히 낭만화할 때—그것은 삶의 에너지를 과거에 헌납하는 자기 파괴적 감정이 된다는 경고이다. 니체의 가르침을 후회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후회는 필요하되, 그것이 삶의 전체적 긍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점에서는 의식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7. 자유, 책임, 그리고 제한된 행위자성
후회는 자유의 환상과 깊이 연결된다. 인간은 늘 더 나은 선택이 가능했으리라고 상상한다. 바로 그 상상이 후회의 불을 키운다.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완전한 시야를 가진 채 선택하지 않는다. 성격은 이미 형성되어 있고, 정념은 판단을 흔들며, 제도와 환경은 옵션 자체를 비대칭적으로 배열한다. 사르트르의 급진적 자유 개념—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은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정식화한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자유가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진다. 그의 자기기만(mauvaise foi) 개념은 이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시도를 비본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입장은 후회의 현상학과 일정한 긴장 관계에 놓인다. 만약 자유가 절대적이라면, 후회는 순전한 자기 비난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으므로, 다르게 행동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후회는 무한한 자기 처벌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 경험의 실재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네이글이 보여주었듯, 인간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요소는 운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구성적 운—내가 어떤 성향, 어떤 기질, 어떤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는가—은 내 선택의 전제 조건이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를 절대화하지도, 무력화하지도 않는 것이다. 인간은 전능하게 자유롭지 않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후회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게 제한적이나마 자기 수정의 능력, 곧 반성적 거리두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르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순간들에서는 다르게 판단하도록 자신을 훈련할 수 있었다. 후회는 바로 그 가능성의 잔광을 본 자의 감정이다. 그러므로 후회의 윤리학은 사르트르의 급진적 자유도, 결정론의 완전한 면책도 아닌, 제한된 행위자성의 개념 위에 서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후회가 정당한 것은 바로 이 중간 영역, 곧 불완전한 자유의 영역에서이다.
8. 가치의 지도: 후회가 드러내는 것
후회는 또한 욕망의 구조를 폭로한다. 사람은 자신이 잃은 것을 후회한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놓쳤을 때 후회한다. 누군가는 돈을 더 벌지 못한 것을 오래 붙들고, 누군가는 한 사람에게 더 친절하지 못했던 저녁을 잊지 못하며, 누군가는 쓰지 않은 문장과 시작하지 않은 작업을 평생 마음에 묻고 산다. 후회의 내용은 곧 가치의 지도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평소에는 자주 모른다. 그러나 후회는 그 무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후회는 삶의 단일한 정답이 없다는 사실과도 깊이 연결된다. 어떤 선택들은 명백한 오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를 희생하는 비대칭적 결정이다. 진실을 말하면 관계가 깨지고, 침묵하면 자신을 배반한다. 안정된 직업을 택하면 창조적 가능성이 줄어들고, 모험을 택하면 타인에 대한 책임이 흔들린다. 이사야 벌린이 말한 가치의 복수성(value pluralism)—궁극적 가치들은 하나의 위계로 환원될 수 없으며 상호 간에 양립 불가능할 수 있다—은 후회의 불가피성에 대한 또 하나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 후회는 그 사라진 세계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후회는 하나의 도덕적 자료가 된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선언이 아니라 상실의 아픔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많이 후회하는 것이 반드시 더 고귀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후회는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절실한 것으로 간주하는지를 잔인할 만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삶은 어쩌면 아무것도 진지하게 선택하지 않은 삶일 수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요구하는 전면적 긍정조차도, 가치들의 충돌이 남긴 상처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포함한 채 삶을 긍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9. 통합의 윤리학: 후회를 감당하는 형식
후회의 반대를 망각이나 자기합리화에서 찾는 것은 값싼 해결이다. 진정한 반대는 통합이다. 통합이란 과거를 미화하는 것도,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후회의 내용을 삭제하지 않은 채 자기 서사 안에 다시 배치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 일은 없어도 되었을 상처”라는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 상처를 포함한 채로만 지금의 나는 성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수용은 화해와 닮아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화해가 감정의 봉합을 뜻한다면, 통합은 의미의 재배치에 가깝다. 상처는 여전히 상처로 남고, 잘못은 여전히 잘못으로 남는다. 다만 그것이 내 존재 전체를 영원히 규정하는 최종 판결은 아니라는 점을 배우는 것이다. 리쾨르의 서사적 정체성(identité narrative) 개념은 이 과정을 설명하는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며, 이 이야기는 과거의 행위를 현재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후회의 통합이란 자기 서사의 플롯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과거의 특정 장면에 부여되었던 의미를 변경하되, 그 장면 자체를 삭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후회의 정당한 몫과 과잉된 몫을 분별해야 한다. 후회가 자기 정체성과 결합하면 인간은 “나는 그때 실수했다”가 아니라 “나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다”라는 결론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이때 후회는 진실을 밝히는 감정이 아니라 자아를 왜곡하는 감정이 된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끝까지 책임지되, 우연과 한계와 당시의 무지까지 모두 현재의 도덕적 악의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후회의 윤리는 자기 학대가 아니라 정확성 위에 서야 한다.
하이데거의 용어로 말하자면, 통합은 비본래적 ‘망각’도 비본래적 ‘매몰’도 아닌, 본래적 ‘반복’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 과거를 다시 떠맡되, 그것을 미래를 향한 기투의 재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용어로 말하자면, 후회는 절망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인식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니체의 용어로 말하자면, 후회를 르상티망으로 굳어지게 둘 것인가, 아니면 삶에 대한 더 깊은 긍정으로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세 철학자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후회에 잠식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통과하는 형식을 찾는 것이 인간 실존의 핵심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10. 결론: 후회와 함께 살아가기
후회를 넘어선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후회와 함께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 인간은 과거를 떼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지나간 선택, 실패, 침묵, 비겁함, 미숙함, 그리고 때로는 어쩔 수 없었던 우연들까지도 품은 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존재다.
키르케고르가 보여준 것은 후회의 불가피성이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선택해야 하는 한, 후회는 구조적으로 제거될 수 없다. 하이데거가 보여준 것은 후회의 시간적 깊이이다. 시간의 비가역성이 모든 선택에 되돌릴 수 없는 무게를 부여하고, 본래적 실존은 이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떠맡는 데서 성립한다. 윌리엄스가 보여준 것은 후회의 도덕적 복잡성이다.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줄어들어도 행위자-후회는 사라지지 않으며, 이 사실은 인간 행위의 취약성과 도덕적 운의 편재를 증언한다. 니체가 보여준 것은 후회의 위험성이다. 후회가 르상티망의 형태를 취할 때 그것은 현재를 파괴하고 삶의 에너지를 과거에 헌납하는 자기 파괴적 감정이 된다.
이 네 가지 통찰을 종합하면 후회에 대한 하나의 윤리학이 윤곽을 드러낸다. 후회는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교육해야 할 감정이다. 그것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정확하고 더 겸허하고 더 책임 있는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후회 없는 삶은 매끈할 수 있으나 얄팍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후회가 지나치게 많은 삶은 깊을 수 있으나 스스로를 침몰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후회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하는 형식이다.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압도되지 않는 형식. 잘못을 인정하되 자기 존재 전체를 폐기하지 않는 형식. 사라진 가능성을 애도하되 남아 있는 현재를 낭비하지 않는 형식. 우연과 한계를 인정하되 제한된 자유마저 포기하지 않는 형식. 그런 형식 속에서만 후회는 독이 아니라 진실의 한 방식이 된다.
인간은 후회하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후회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충동의 동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존재가 된다. 후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잃은 것을 끝내 견딜 수 없는가. 그리고 바로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이 어떤 가치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후회는 단순히 지나간 삶의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남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늦게 도착한 그러나 결코 하찮지 않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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