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창의성의 기준은 바뀌어야 하는가
1. 감동은 일어났고, 창작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듣고 울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음악은 인간을 그런 식으로 건드린다. 어떤 선율은 오래전의 방을 열고, 어떤 문장은 자신도 잊고 있던 상처의 모서리를 만진다. 감동은 논리보다 빠르게 온다. 그것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몸 안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그다음에 왔다. 그 음악이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방금 전의 눈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눈물은 이미 흘렀다. 감동은 이미 발생했다. 그런데 창작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이 오늘의 질문을 만든다. AI가 인간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자기 감동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인간은 작품 앞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의 출처가 인간이 아니라고 알려지는 순간, 자신이 믿어 온 예술의 구조도 함께 흔들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작품을 두 겹으로 읽어 왔다. 하나는 작품이 내 안에서 무엇을 일으켰는가라는 층위다. 다른 하나는 그것을 만든 존재가 어떤 삶을 통과했는가라는 층위다. 좋은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단지 잘 배열된 언어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언어 뒤에 누군가의 실패, 수치, 집요한 수정, 혹은 끝내 말하지 못한 고통이 있다고 느낀다. 감동은 작품의 형식에서 오지만, 우리는 그 형식이 어떤 삶의 잔여물이라고 믿어 왔다.
AI는 이 믿음의 연결부를 자른다. 결과는 남고, 삶은 보이지 않는다. 형식은 남고, 상처의 주인은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감동이 일어났다면 충분한가. 아니면 감동을 일으킨 존재가 그 감동 앞에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너무 빨리 “AI도 예술가다”라고 말하면 인간 창작의 오래된 잔여를 놓친다. 반대로 너무 빨리 “AI는 결코 창의적일 수 없다”라고 말하면 이미 발생한 감동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글은 결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먼저 그 불편한 장면 앞에 조금 더 서 있어야 한다. 감동은 일어났고, 창작자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그 빈자리에서 시작된다.
2. 오래된 기준: 새로움과 가치
창의성은 본래부터 신비한 영혼의 이름만은 아니었다. 창의성 연구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어느 정도 건조한 조건으로 다루려 했다. 어떤 산출물이 창의적이려면 새로워야 하고, 동시에 가치 있거나 효과적이어야 한다. 새로움(originality)과 효과성(effectiveness). 이 두 단어는 학계가 합의한 표준 정의의 두 기둥이며, 철학 사전들도 “새로움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추가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아 왔다.
이 기준은 합리적이다. 새롭기만 한 것은 창의적이지 않다. 무작위로 흩어진 글자도 새로울 수 있다. 가치 있기만 한 것도 창의적이지 않다. 잘 작동하지만 진부한 설명서나 익숙한 광고 문구를 우리는 창의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창의성은 최소한 새로움과 의미 있는 작동 사이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그 교차점은 충분히 넓지 않다. 인간은 어떤 작품을 두고 “새롭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것을 묻는다. 그것은 어떻게 나왔는가. 누가 그것을 선택했는가. 그 선택은 우연인가, 판단인가, 책임인가. 한 인간은 왜 그 문장을 끝까지 고쳤는가. 왜 다른 쉬운 길을 버리고 이 불편한 형식을 택했는가. 창의성은 산출물의 속성이지만, 인간 예술에서는 종종 산출물을 둘러싼 과정과 삶의 해석까지 끌고 들어온다.
새로움, 놀라움, 가치. 창의성을 이 세 좌표 위에서 측정하려는 시도는 그것을 다시 세 갈래로 나눈다. 익숙한 요소를 새롭게 결합하는 조합적(combinational) 창의성, 가능한 형식의 공간을 따라가는 탐색적(exploratory) 창의성, 그 공간 자체를 변형시키는 변형적(transformational) 창의성. 이 구분은 AI 시대에 특히 중요해진다. AI가 기존 요소를 조합하고, 가능한 형식의 공간을 탐색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산출물 기준에서 AI를 단순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틀이 열어젖힌 문으로 AI가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그러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움은 필요조건일 수 있다. 가치는 필요조건일 수 있다. 놀라움도 중요한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예술 앞에서 요구해 온 것은 조건의 합집합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작품 안에서 어떤 판단의 흔적을 찾는다. 판단은 흔적을 남긴다. 어떤 가능성을 버렸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어떤 실패를 통과했는지의 흔적이다.
AI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새롭고 가치 있는 산출물을 만든다면, 기존 기준의 한 부분은 이미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 창의성 전체의 붕괴를 뜻하는지는 아직 별개의 문제다.
3. 산출물의 반란
AI를 낮잡아 보면 논증은 쉬워진다. “AI는 그저 베끼는 기계다.” “AI는 통계적 앵무새일 뿐이다.” 이런 문장은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하지만 좋은 논증은 안정을 주기 위해 사실을 줄이지 않는다. 생성형 AI는 단순 복사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학습된 패턴을 바탕으로 조합하고, 변형하고, 특정 요청에 맞추어 새로운 산출물을 만든다. 그 산출물이 언제나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 인간이 의미 있다고 느낄 만한 결과를 낸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발산 사고(divergent thinking)를 측정하는 실험들은 이 불편함을 수치로 옮긴다. 한 물건의 새로운 용도를 떠올리게 하는 표준 과제(Alternative Uses Task)에서, AI는 평균적인 인간 참가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동시에 최고의 인간 응답은 여전히 AI를 능가한다. 평균은 졌고, 정점은 남았다. 이 두 사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은 동일한 사태의 두 측면이다. 다른 연구들도 생성형 언어 모델이 발산 사고 과제에서 높은 창의적 잠재력을 보일 수 있음을 함께 보고한다. 이 연구들이 예술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AI가 산출물 수준에서 창의성의 일부 조건을 통과할 수 있다는 압력을 만든다.
여기서 신중해야 한다. 창의성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과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어떤 물건의 새로운 용도를 많이 떠올리는 능력과 자기 시대의 고통을 형식으로 응축하는 능력은 같은 좌표에 놓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차이를 이유로 AI의 산출물 능력을 무시하는 것도 도망이다.
문제는 AI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AI가 너무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인간은 조잡한 기계 앞에서는 안심한다. 정교한 기계 앞에서는 자기 특권의 거울을 본다.
텍스트-이미지 AI에 관한 대규모 플랫폼 데이터 분석은 이 긴장을 더 현실적인 장면으로 옮긴다. 도구의 도움을 받은 창작자들의 생산성과 평가 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나 같은 데이터에서 평균적 참신성은 떨어진다. AI는 개인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모두 같은 모델의 확률적 중심에서 흘러나온다면, 개별 작품은 좋아져도 문화 전체는 비슷해질 수 있다.
산출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형식, 감정, 분위기, 문장, 이미지가 기계적 생성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인간은 “결과물이 다르다”는 말만으로 자기 창의성을 방어하기 어렵다. 방어해야 한다면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4. 감동이라는 사건
감동은 작품 안에 고정된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과 수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 침묵한다. 같은 그림 앞에서 어떤 사람은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의 어떤 폐허를 본다. 감동은 작품의 속성이면서 동시에 수용자의 준비 상태다.
이 점 때문에 AI 예술의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AI가 만든 작품에 인간이 감동했다면, 그 감동을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쉽지 않다. 감동은 이미 인간 안에서 발생했다. 그것은 주체의 실제 경험이다. 누군가 AI가 쓴 문장을 읽고 위로받았다면, 그 위로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지울 수 없다. 인간은 출처를 알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감동한 뒤 출처를 묻는다.
그러나 감동은 많은 것을 증명하면서도 결정적인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감동은 산출물이 수용자 안에서 작동했다는 증거다. 의도의 증거는 아니다. 내가 어떤 문장에 울었다고 해서, 그 문장을 만든 존재가 나를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광고도 감동을 만든다. 선전도 감동을 만든다. 정교한 조작도 때로 감동을 만든다. 감동은 인간을 열지만, 동시에 인간을 속일 수도 있다.
AI 예술 수용 연구들은 인간이 출처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AI가 만들었다고 표시된 작품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표시된 작품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창작자가 인간인지 AI인지에 관한 정보가 미적 판단과 선호를 흔든다. 이것을 단순한 편견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인간은 작품을 볼 때 결과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떤 마음, 어떤 몸, 어떤 삶에서 나왔는지를 함께 상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상은 언제나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죽은 작가의 삶을 과장하고, 살아 있는 작가의 고통을 소비하며, 작품보다 전기를 더 사랑하기도 한다. 인간 예술에 대한 믿음 역시 순수하지 않다. 우리는 작품 뒤에 인간을 세워 놓고, 그 인간을 통해 자신의 감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AI 예술이 인간의 미적 판단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의 미적 판단 안에 있던 출처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감동은 진짜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감동이 곧바로 충분한 창의성 판단은 아니다. 감동은 문을 연다. 판단은 그 문을 지나 더 멀리 가야 한다.
5. 인간 창작의 실존적 잔여
인간 창작을 방어하려면 낭만주의의 낡은 방으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으므로 인간만 창의적이다”라는 말은 너무 빠르고, 너무 편하다. 그것은 논증이 아니라 선언이다. 인간 창작의 특수성을 말하려면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간은 작품을 만들 때 자기 삶의 어떤 부분을 잃거나, 고치거나, 감추거나, 드러낸다.
인간 창작의 실존적 잔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에 의해 되돌아 맞는다. 한 문장을 발표한 뒤 부끄러워하고, 한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자기 실패를 확인하고, 한 작품 때문에 관계를 잃거나 시대의 비난을 견딘다. 인간에게 작품은 외부에 놓인 산출물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거울이다. 거울은 칭찬하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피하고 싶던 얼굴을 보여 준다.
AI는 경험의 형식을 산출할 수 있다. 상실을 말할 수 있고, 죄책감을 묘사할 수 있으며, 사랑의 실패를 그럴듯하게 배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의미에서 AI는 그 상실을 겪지 않는다. 죄책감 앞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문장 때문에 다음 날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 실패가 존재의 균열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과 AI의 차이는 산출물의 품질 차이가 아니다. 산출물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가의 차이다.
이 말은 인간이 언제나 더 깊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작품도 얕다. 많은 인간 창작은 관습을 반복하고, 시장의 안전한 취향을 따르며, 타인의 고통을 장식으로 사용한다. 인간이라는 사실은 창의성의 보증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기에 더 많이 속이고, 더 많이 핑계를 만들고, 더 많이 자기기만을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럼에도 인간 창작에는 지워지지 않는 잔여가 있다. 인간은 자기 산출물에 대해 “나는 왜 이것을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때로 인간의 삶 전체를 겨냥한다. AI에게도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AI는 그 질문에 답을 생성할 뿐, 그 답 때문에 자기 삶을 다시 살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이 장의 결론은 “인간만 창의적이다”가 아니다. 그런 결론은 너무 거칠다. 더 정확히는 이렇다. 인간 창작의 특수성은 산출물의 독점권이 아니라, 산출물 앞에서 책임과 해석과 수치의 형태로 남는 실존적 잔여에 있다.
6. 협업 시대의 기능적 저자성
하지만 인간 창작의 실존적 잔여만으로 오늘의 창작 환경을 설명할 수는 없다. 많은 작품은 이미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어지고, 음악은 샘플과 편집과 믹싱의 층을 통과하며, 디지털 이미지는 도구와 알고리즘과 플랫폼의 조건 안에서 생산된다. 인간-AI 협업은 이 흐름의 급격한 확장이다.
여기서 질문은 달라진다. “인간은 어디에 남는가”라는 질문은 5장에서는 삶과 책임의 실존적 문제였다. 이 장에서는 기능의 문제다. 인간은 창작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작동하는가. 문제를 설정하는가. 프롬프트를 설계하는가. 수십 개의 출력물 중 하나를 고르는가. 고른 결과를 수정하고 배열하는가. 작품에 제목과 맥락을 부여하는가. 공개 후 비판을 감당하는가.
AI 시대의 저자는 더 이상 단독 발명가의 모습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는 선택자, 편집자, 큐레이터, 조율자, 책임자에 가까워진다. 이 변화는 인간 저자성의 소멸이 아니라 위치 이동이다. 작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손의 위치가 바뀌었다. 붓을 쥔 손에서, 가능성들의 더미 속에서 하나를 고르고 자기 이름을 거는 손으로.
이때 프롬프트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 문장이나 입력하고 나온 결과를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롬프트를 단순 명령으로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 어떤 창작자는 문제 설정, 자료 선택, 반복적 수정, 출력물 비교, 후처리, 맥락 구성의 전체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창작적 판단을 수행한다. 이 경우 인간의 저자성은 최초의 손놀림이 아니라 과정 전체의 설계와 선택에서 발생한다.
저작권 제도가 이 지점에서 흔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의 최근 가이드라인은 예술이 무엇인가를 최종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어느 정도 표현 요소를 결정했는지, 단순한 AI 산출물과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포함된 결과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법적 판단은 철학적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가 저자성을 어떤 기능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있는지는 그 안에 드러난다.
인간-AI 협업에서 저자성은 더 분산되고, 더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분산되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세밀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문제를 열었는가. 누가 가능성을 걸렀는가. 누가 마지막 형식을 승인했는가. 누가 이름을 걸었는가. 기능적 저자성은 바로 이 질문들의 배열 속에서 생긴다.
7. 확장과 평균화 사이
기능적 저자성이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그 이동이 곧 창의성의 확장은 아니다. 6장이 인간이 어디에 남는가를 물었다면, 이 장은 그 남음의 효과를 묻는다. 인간이 선택자·편집자·큐레이터의 자리에서 AI 산출물 중 하나를 고른다는 사실은 창의성의 공간을 실제로 넓히는 운동인가. 아니면 같은 모델의 확률적 중심에서 표본을 골라내는 평균화의 운동인가. 위치 이동과 공간 확장은 다른 문제다.
먼저 확장의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실제로 확장할 수 있다. 이 문장을 인정하지 않으면 논의는 시작되지 않는다. AI는 더 많은 초안을 보여 주고, 막힌 생각을 움직이며, 낮은 숙련도의 창작자에게 진입 장벽을 낮춘다. 어떤 사람에게 AI는 생각의 보조 장치가 아니라 문턱을 넘게 해 주는 장치다. 창작의 첫 문장을 쓰지 못하던 사람이 AI의 제안을 통해 자기 문장을 시작한다면, 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도구는 다른 데이터로 다른 그림을 그린다. 한 대규모 실험에서,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은 더 창의적이고, 더 잘 쓰였으며, 더 즐겁게 평가되었다. 특히 창의성이 낮게 측정된 참가자들에게 그 효과는 컸다. 그러나 동일한 데이터에서 다른 측정도 함께 떠올랐다. AI의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은 서로 더 비슷해졌다. 개인은 이익을 얻었지만, 집단은 다양성을 잃었다.
이것은 AI 창의성 논쟁의 중요한 반례다. 창의성은 개인 산출물의 품질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문화는 단일 작품의 우수성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문화에는 비효율적인 우회로, 이상한 취향, 실패한 실험, 시장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형식이 필요하다. 모두가 같은 도구에서 같은 종류의 가능성을 얻고, 같은 기준으로 결과를 고르면, 작품들은 더 매끄러워질 수 있지만 세계는 더 좁아질 수 있다.
AI는 많은 문을 보여 준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복도에서 같은 문을 고른다면, 문이 많다는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평균화는 AI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쇄술, 사진, 영화, 디지털 편집 도구, 플랫폼 알고리즘 모두 비슷한 문제를 만들었다. 새로운 도구는 언제나 창작의 확장과 규격화를 동시에 가져온다. 따라서 AI를 문화적 타락의 단일 원인으로 세우는 것은 부정확하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떤 사용 방식이 AI를 확장의 도구로 만들고, 어떤 제도와 시장 구조가 AI를 평균화의 장치로 만드는가.
여기서 창의성의 기준은 다시 압박을 받는다. 어떤 개인의 작품은 AI 덕분에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좋아진다면, 전체 문화는 덜 창의적이 될 수 있다. 창의성은 개인의 점수와 집단의 다양성 사이에서 갈라진다. 이 균열을 보지 못하면 AI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게 된다.
8. 법은 왜 감동하지 않는가
저작권 논의는 철학 에세이를 쉽게 정책 해설문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이 장의 목적은 미국, 한국, 유럽의 제도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더 정확히 말하면 법이 예술에서 무엇을 이해하지 않기로 결정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법은 감동하지 않는다.
법은 어떤 작품이 나를 울렸는지 묻지 않는다. 법은 누가 표현을 결정했는지, 누가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누가 침해에 책임지는지 묻는다. 감동은 미학의 사건이지만, 저작권은 귀속의 장치다. 제도는 작품의 깊이를 측정하기보다 권리와 책임이 돌아갈 주소를 찾는다.
미국 저작권청의 AI 저작권성 보고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생성형 AI의 산출물이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인간 저자가 충분한 표현 요소를 결정해야 하며, 단순한 프롬프트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한국의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 등록 안내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저작물과 보호받기 어려운 단순 산출물 사이의 경계를 다룬다. 유럽연합의 AI Act는 일반목적 AI 모델에 대해 기술문서, 저작권 정책, 학습 콘텐츠 요약 등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자료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제도는 창의성을 감동의 강도로 판단하지 않는다. 제도는 창의성을 귀속 가능성의 문제로 바꾼다. 누가 창작적 선택을 했는가. 누가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했는가. 누가 데이터의 출처를 설명해야 하는가. 누가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았는가. 누가 분쟁이 생겼을 때 남아 있는가.
여기서 법은 철학보다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안에 중요한 통찰이 있다. 감동은 흐른다. 책임은 남아야 한다. 작품이 사회적 효과를 낳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나는 감동했다”라는 말만으로 판단을 끝낼 수 없다. 작품은 시장으로 들어가고, 권리관계를 만들고, 타인의 노동과 데이터를 통과하며, 명성과 수익을 배분한다. 그때 사회는 감동이 아니라 책임의 주소를 요구한다.
물론 법적 기준이 곧 철학적 기준은 아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작품이 예술적으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고 해서 위대한 예술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법은 한 가지를 폭로한다. 창의성이라는 말 안에는 언제나 미학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귀속, 권리, 책임, 시장, 제도라는 건조한 잔여물이 함께 있었다.
9. 반론: 책임을 창의성에 넣는 것은 범주 오류 아닌가
여기서 가장 강한 반론이 등장한다. 책임을 창의성의 기준에 넣는 것은 범주 오류가 아닌가. 창의성은 미학적·인지적 판단이고, 책임은 윤리적·법적 판단이다. 어떤 작품이 창의적인지와 그 작품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둘을 섞으면 개념은 흐려진다. 창의성을 말하려면 새로움, 가치, 놀라움, 형식적 성취를 보아야지, 저작권이나 사회적 책임을 끌어오면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것 아닌가.
이 반론은 중요하다. 사실 이 반론을 통과하지 못하면 “책임”이라는 말은 그럴듯한 윤리적 장식에 머문다. 창의성의 판단과 책임의 판단은 동일하지 않다. 어떤 작품은 창의적이지만 무책임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은 윤리적으로 신중하지만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책임을 창의성의 본질 조건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반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가야 한다. 책임이 창의성의 본질 조건이 아니라면, 창의성 논의에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AI 시대의 문제는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판단들을 한꺼번에 떠안고 있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어떤 작품을 창의적이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그 작품의 산출물, 과정, 저자, 권리, 사회적 효과를 뒤섞어 평가해 왔다. AI는 이 뒤섞임을 분리시킨다.
따라서 책임은 산출물 창의성의 내부 조건이 아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한다. AI 산출물이 새롭고 가치 있고 놀라울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책임을 곧바로 끼워 넣으면 개념이 혼탁해진다. 그러나 책임은 창의성이 사회적 세계로 들어온 뒤 반드시 따라붙는 평가 층위다. 작품은 혼자 있지 않다. 작품은 유통되고, 이름을 얻고, 수익을 만들고, 타인의 권리를 침범할 수 있으며, 문화의 방향을 바꾼다. 그 순간 창의성은 산출물 판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 정밀한 답은 이렇다. 책임은 창의성의 단일한 본질 기준이 아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창의성 판단을 완성하는 외부 조건이다. 산출물의 창의성과 과정의 창의성과 책임의 귀속은 구분되어야 한다. 구분되어야 하지만, 분리되어 사라져서는 안 된다. 구분은 혼동을 막기 위한 것이지, 책임을 추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반론을 통과하면 논증은 더 단단해진다. 이제 우리는 “AI는 창의적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그 질문은 너무 넓고, 너무 둔하다. 더 정확한 질문들이 필요하다.
10. 갈라진 기준들
이제 질문을 다시 세워야 한다. AI가 인간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창의성의 기준은 바뀌어야 하는가. 여기서 “바뀐다”는 말은 폐기된다는 뜻이 아니다. 기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다. 하나의 칼날로 자르던 것을 이제 여러 칼날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째, 산출물의 창의성이다. 작품이 새롭고, 가치 있으며, 놀라움을 주고, 수용자 안에서 의미 있는 정서적·해석적 효과를 일으키는가. 이 기준에서 AI 산출물은 경우에 따라 창의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인간을 감동시킨 산출물을 단지 AI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경험을 부정하는 일이다.
둘째, 과정의 창의성이다. 그 산출물이 어떤 문제 설정, 선택, 수정, 배열, 실패의 과정을 통과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개입했는가. AI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단순히 버튼을 눌렀는가, 아니면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판단을 수행했는가. 이 기준에서 인간-AI 협업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어떤 것은 거의 자동 산출물에 가깝고, 어떤 것은 인간의 집요한 선택과 편집의 결과다.
셋째, 책임의 귀속이다. 작품이 사회적 세계에 들어왔을 때 누가 이름을 걸고 남는가. 데이터와 저작권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AI 사용 사실은 투명하게 제시되는가. 타인의 노동과 양식을 흡수한 결과에 대해 누가 설명할 수 있는가. 이 기준은 산출물의 미학적 가치와 동일하지 않지만, 오늘의 창의성 논의에서 제거될 수 없다.
이 세 기준은 서로 다른 답을 낼 수 있다. 어떤 AI 작품은 산출물 기준에서는 강하지만, 과정 기준에서는 빈약할 수 있다. 어떤 인간-AI 협업 작품은 과정 기준에서는 풍부하지만, 책임 기준에서는 불투명할 수 있다. 어떤 인간 작품은 책임 있게 만들어졌지만 산출물 기준에서는 진부할 수 있다. 이 불일치를 견디는 것이 AI 시대의 창의성 논의다.
단일 기준은 편하다. 그러나 편한 기준은 자주 거짓이다. 창의성이라는 말은 너무 오랫동안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해 왔다. 그것은 산출물의 이름이었고, 인간 경험의 이름이었고, 저자성의 이름이었고, 사회적 책임의 이름이었다. AI는 이 혼합물을 흔들어 각 성분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제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산출물은 창의적일 수 있다. 과정은 인간적이지 않을 수 있다. 책임은 여전히 인간과 제도에 남을 수 있다.
11. 남아 있는 자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자. 그는 AI가 만든 음악을 듣고 울었다. 이제 그 눈물을 취소할 필요는 없다. 감동은 일어났다. 인간의 몸은 이미 반응했고, 기억은 이미 움직였다. 그 경험을 거짓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인간의 감각을 지나치게 경멸하게 된다.
그러나 발생한 것이 정당화된 것은 아니다. 작품이 인간 안에서 작동했다는 사실은 작품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어떤 과정에서 나왔는지, 어떤 삶의 잔여를 갖는지, 어떤 책임의 주소를 요구하는지는 그 사실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별도로 물어야 한다.
AI는 인간에게서 창의성의 독점권 일부를 빼앗았다. 적어도 산출물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인간은 이제 “기계는 이런 것을 만들 수 없다”는 말에 오래 기대기 어렵다. 그 문장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반례를 만난다. 수학에서 반례 하나는 보편 명제를 무너뜨린다. 인간만이 감동적인 산출물을 만들 수 있다는 명제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반례가 인간 전체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반례는 명제를 정밀하게 고치라고 요구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기계보다 항상 더 뛰어난 산출물을 만든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의 창의성은 자신이 만든 것에 이름을 걸고, 그 결과 앞에서 물러서지 못하며, 때로는 그 작품 때문에 자기 삶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데 있다.
AI가 만든 작품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다면, 창의성의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인간의 퇴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뒤섞어 왔는지 더 정확히 보는 일이다. 결과, 과정, 책임. 이 세 가지는 한때 한 사람의 손 안에 비교적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제 그 매듭은 풀리고 있다.
AI가 감동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감동의 독점이 아니다. 감동 이후에도 그 결과 앞에 남아 책임지는 자리다. 그 자리조차 언제까지 인간의 몫일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다만 지금, 우리는 그 문제를 더 정확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참고자료
본문에서는 자료명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논증의 배경으로만 사용했다. 이하 목록은 본문 각 장의 논점을 받쳐 준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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