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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생존은 보장되고, 선택은 자유로우며,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세계”

아침은 언제나 조용하게 시작된다.

알람은 없다. 깨워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뜬다. 몸이 아니라, 어떤 리듬이 나를 깨우는 것 같다. 그 리듬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른다. 아마 습관일 것이다. 아니면 습관이라고 부르고 싶은 무언가일 것이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온다.
이 도시는 계절을 선택할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흘러가는 날씨를 선호한다. 통제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킨다.

부엌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둘 필요가 없다. 원하는 것을 떠올리면 조용히 식탁 위에 놓인다. 오늘은 커피와 빵을 생각했는데, 잠시 후 향이 먼저 도착하고 그 다음 형태가 따라온다. 나는 가끔 일부러 메뉴를 고민한다.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은 분주하지 않다. 그러나 멈춰 있지도 않다. 각자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어떤 이는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아무 목적 없이 걷는다. 목적 없는 행동은 이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오늘도 토론이 열려 있다.
주제는 "고통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가"다.

한 사람이 말한다.
"고통이 없다면, 공감도 사라진다."

다른 사람이 고개를 젓는다.
"그건 우리가 고통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춘다.

몇 달 전부터 붙들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도시에서는 타인의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완전한 몰입으로, 감정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누군가의 슬픔, 누군가의 공포, 누군가의 기쁨이 내 것이 된다. 나는 아직 그 기능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의 삶이 너무 쉽게 내 것이 되는 것이, 어딘가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장의 저 사람 말이 맞다면—
고통 없이 공감이 사라진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우리가 고통에 너무 익숙해서."

이 말도 틀리지 않는다.
익숙함을 보편으로 착각하는 것. 그것도 일종의 오류다.

나는 결국 광장을 떠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다.
다만, 아까보다 조금 느리다.

도서관으로 향한다.
정확히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아직 남아 있는 공간이다.
책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사람들은 느끼기 위해 온다.

나는 오래된 종이책을 꺼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약간의 저항이 느껴진다. 이 작은 마찰이 좋다. 모든 것이 즉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지연은 일종의 사치다.

문장을 읽다가 멈춘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유롭다."

나는 책을 덮지 않는다.
그냥 그 문장 위에 시선을 올려둔다.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강요되지 않는다. 생존도, 노동도, 관계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선택이 된다. 먹는 것도, 만나는 것도, 오늘 어떤 질문을 붙들 것인지도. 강요가 없는 세계에서 선택은 더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핑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경험을 거부해왔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선택처럼 보이는 회피였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는다.
아직 결론은 없다.

해가 기울 무렵, 강가에 앉는다.
물은 특별할 것 없이 흐른다. 이 도시의 거의 모든 것은 최적화되어 있지만, 자연만은 일부러 덜 건드려져 있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인간을 붙잡아두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설계 문서에 적어두었다고 들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떠올린다.

광장에서 나는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타인의 경험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생산적인 하루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무언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 있다.
내가 회피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을, 오늘 처음으로 회피라고 불렀다. 그것뿐이다. 아직 바꾼 것은 없다.

강물은 방향을 묻지 않고 흐른다.
나는 그게 가끔 부럽다.

그리고 동시에,
방향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춘다.

내일 나는 아마 그 기능을 사용해볼 것이다.
아니면 또 미룰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