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없는 확신과 문명의 병
버트런드 러셀의 회의주의를 다시 읽다
인간은 흔히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더 자주 원하는 것은 진실 그 자체보다도 자신을 흔들지 않는 확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확실성보다 단정에 안도하고, 유보보다 선언에 끌리며, 모른다는 고백보다 강한 신념의 어조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향은 개인의 약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의 수사, 종교의 권위, 교육의 설계, 매체의 선정성 속에서 반복적으로 제도화되며, 때로는 전쟁과 박해의 조건이 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회의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그것이 바로 이 지점—개인적 오류가 집단적 재앙으로 확장되는 접합부—을 정면으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러셀의 핵심 논제를 재구성하되, 그가 다루지 않았거나 충분히 전개하지 않은 문제—인지적 편향의 메커니즘, 실용주의적 반론, 회의주의 자체의 한계—까지 포괄함으로써, 증거주의가 갖는 윤리적·정치적 함의를 보다 완전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러셀의 회의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부정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믿음 자체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회의주의 에세이집』(Sceptical Essays, 1928)의 서두에서 그가 제시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 "어떤 명제를 지지하는 근거가 없을 때, 그것을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그 사정거리는 넓다. 러셀에게 상식과 과학은 절대적 확실성의 대상이 아니라, 행동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개연성의 대상이었다. 그가 요구한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말라"가 아니라, "증거가 허락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믿지 말라"는 원칙이었다. 이 구별은 미세해 보이지만, 회의주의의 성격 전체를 결정한다. 여기서 회의주의는 파괴의 언어가 아니라 비례의 언어가 된다. 믿음은 도덕적 충성의 표식이 아니라, 증거의 무게에 따라 강도를 조절해야 하는 지적 행위로 재정의된다.
이 원칙이 갖는 함의는 『서양 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 서문에서 더 분명해진다. 러셀은 거기서 철학을 신학과 과학 사이의 중간 지대로 묘사하면서, 확실한 해답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물음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확정적 지식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승인, 그리고 그 영역에서조차 성급한 확실성을 거부하는 태도—이것이 러셀적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그 결과 가장 성숙한 지적 태도는 강한 단정이 아니라, 때로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 혹은 판단을 유보하는 능력이 된다. 지적 정직은 지식의 풍부함이 아니라 무지의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러셀의 논의는 인식론의 울타리를 넘어 곧바로 인간 심리의 구조로 이동한다. 「회의주의의 가치에 관하여」("On the Value of Scepticism")에서 그는 핵심적인 관찰을 제시한다: 인간은 진실을 향해 곧장 걷는 존재라기보다, 먼저 욕망하고 두려워한 뒤 나중에 이유를 덧붙이는 존재에 가깝다.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확신이 유난히 격정적인 어조를 띠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충분한 증거를 가진 사람은 대개 조용히 설명하지만, 근거가 빈약한 사람은 더 쉽게 열광의 어조에 의존한다. 러셀에게 증거 없는 확신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자기기만의 정교한 언어화였다. 인간은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원한다"보다 "내가 이것을 원하므로 사실이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믿음을 구성한다.
러셀이 이 통찰을 제시한 1920년대에는 아직 체계적 실증 연구가 부재했지만, 20세기 후반의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은 그의 직관을 상당 부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축적해왔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정리한 이중 과정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판단은 빠르고 자동적인 직관 체계(시스템 1)와 느리고 의식적인 분석 체계(시스템 2)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일상적 판단에서 직관 체계가 선행한다.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의 사회적 직관주의 모델은 이를 도덕 판단 영역으로 확장하여, 도덕적 판단이 먼저 직관적으로 내려진 후에 추론이 사후적 정당화로 동원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부조화 이론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존 신념과 충돌하는 증거를 접했을 때, 사람은 신념을 수정하기보다 증거를 재해석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찰스 로드(Charles Lord) 등의 1979년 연구는 사형 제도에 대한 상반된 증거를 제시받은 피험자들이, 자기 기존 입장을 지지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대 증거의 방법론적 결함을 더 예민하게 탐색하는 확증 편향 패턴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러셀의 핵심 통찰—욕망과 공포가 판단을 선행하고, 이성은 사후적으로 동원된다—이 단순한 철학적 경구가 아니라 인간 인지의 구조적 특성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은 편향의 존재와 그 경향성이지, 인간이 항상 혹은 필연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카너먼 자신도 시스템 2의 교정 기능이 작동하는 조건들—동기, 인지적 자원, 환경 설계—을 논의한 바 있다. 러셀의 회의주의가 교육과 제도를 강조한 것은 바로 이 교정 가능성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편향이 불가피하다면 회의주의는 무의미할 것이다. 편향이 교정 가능하되 자연적으로는 교정되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 훈련으로서의 회의주의가 필요해진다.
이 심리적 통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러셀의 회의주의가 왜 과학적 정신과 연결되는지도 분명해진다. 「자유교육에서 과학의 위치」("The Place of Science in a Liberal Education")에서 러셀이 과학에서 배운 것은 지식의 내용만이 아니라 태도의 형식이었다. 과학적 정신이란 세계를 내 취향의 거울로 보지 않는 훈련이다. 내가 바라기 때문에 참이 되는 것은 없고,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거짓이 되는 것도 없다. 세계는 내 희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사유의 성숙은 바로 그 무관심을 견디는 데서 시작된다.
이 점에서 러셀의 과학적 태도는 차가운 냉소와 다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비웃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가 내 마음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의 훈련이다. 러셀 자신은 이 태도를 '비인격적 사유'(impersonal contemplation)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것은 욕망과 공포에 앞서 대상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묻는 습관이다. 이 사유의 윤리적 품격은, 인간을 확신의 주인으로 세우지 않고 현실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드는 데 있다. 물러섬은 패배가 아니라 왜곡하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다. 판단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곧 정확성의 조건이 된다.
여기까지의 설명이 러셀 사유의 원리였다면, 이제 보아야 할 것은 그 원리가 왜 그토록 절실해졌는가 하는 역사적 장면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러셀에게 철학의 실험실 바깥을 보여주었다. 전쟁 이전의 러셀이 주로 논리학과 수학의 기초를 다루던 사상가였다면, 전쟁 이후의 러셀은 선전과 복종, 국가주의와 교조주의의 구조를 몸으로 겪은 비평가였다. 그는 전쟁을 통해 애국, 명예, 문명이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쉽게 살육의 수사로 전락하는지 목격했다. 그가 반전 활동으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해임되고, 1918년에는 투옥까지 당한 것은 이 경험의 물리적 잔해였다.
「자유사상과 공적 선전」("Free Thought and Official Propaganda", 1922)에서 러셀은 전쟁기의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리한다. 그는 정부가 어떻게 교육과 언론을 통해 특정한 믿음을 주입하며,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데 사회적·법적 비용을 부과하는지를 분석했다. 이 맥락에서 "증거 없는 믿음을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명제는 더 이상 추상적 인식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고, 전선으로 밀어 넣고, 서로를 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힘에 대한 응답이었다. 회의주의는 여기서 서재의 취향이 아니라 문명의 위생이 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따라가면, 러셀이 종교 비판을 수행한 방식도 보다 정확하게 이해된다.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 1935)에서 러셀은 종교를 단순히 거짓 명제들의 집합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더 근본적으로 그는 종교를, 그리고 종교와 닮은 모든 교조주의를, 무지의 영역을 확실성의 언어로 덮어버리는 습관으로 보았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자리를 권위 있는 이름으로 봉합하고 싶어 한다. 종교는 그 대표적인 형식일 수 있지만, 러셀의 비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가주의, 정당 충성, 도덕적 공황, 이념적 적대 역시 같은 구조를 갖는다. 그것들은 모두 불확실한 현실 위에 과도한 확신의 지붕을 얹는다. 이 점에서 러셀의 반종교성은 단순한 무신론이 아니라 반교조주의에 가깝다. 그의 적은 특정한 신만이 아니라, 신이든 국가든 민족이든 당파든 무엇이든 간에 인간에게 "여기서는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명령하는 모든 확실성의 체제였다. 이 점에서 러셀의 비판은 시대를 넘는다. 21세기의 알고리즘적 확증 편향, 정치적 양극화, 음모론의 확산은 모두 증거 없는 확신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조직적으로 재생산되는 현상이며, 그가 진단한 구조의 변주에 해당한다.
여기서 러셀의 사유가 개인 윤리에서 정치적 요구로 이행하는 결정적 전환이 일어난다. 러셀은 사람들이 근거 없이 믿는다고 해서 그 원인을 단지 개인의 우둔함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증거가 공정하게 유통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판단 자체가 구조적으로 훼손된다고 보았다. 한쪽 주장만 끊임없이 노출되고 다른 논거는 벌을 감수해야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회에서 믿음은 이미 자유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이익, 검열, 선전, 교육의 편향, 집단의 낙인은 모두 믿음의 형성 과정에 미리 개입한다.
러셀이 「자유사상과 공적 선전」에서 제안한 것은 단순히 "자유롭게 생각하라"는 도덕적 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하려면 먼저 사회가 질문을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도적 요구였다. 증거주의는 개인 윤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론장의 조건에 대한 정치적 요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늘 개인 내부에만 있지 않다. 때로 사회는 체계적으로 잘못 믿도록 설계된다. 회의주의가 개인의 미덕이 되려면, 먼저 그 미덕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러셀에게 교육은 부차적 주제가 아니었다. 앞선 논의가 믿음의 오류를 진단하는 데 집중했다면, 교육론은 그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통로를 제시한다. 러셀은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순응 훈련으로 보지 않았다. 교육의 핵심은 정답을 주입하는 데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것은 정보량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형식의 문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보다 먼저,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다.
러셀이 제시한 교육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결과를 예견하는 훈련, 근거의 정도를 가늠하는 훈련, 전문가의 합의와 불일치를 구별하는 훈련, 충분한 이유가 없을 때 유보할 줄 아는 훈련. 그는 이런 훈련이야말로 교조주의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방어선이라고 보았다. 도덕 설교는 쉽게 위선이 되지만, 판단의 훈련은 적어도 사고의 질서를 바꿀 수 있다. 이 교육론은 앞서 논의한 인지적 편향 연구와도 맥락이 닿는다. 편향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이라면,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러셀이 '습관'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회의주의는 일회적 결단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지적 체질이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진지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실용주의적 반론이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믿으려는 의지」("The Will to Believe", 1896)에서, 증거가 결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믿음이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중요한 결정을 증거가 축적될 때까지 무한정 유보한다면, 삶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반론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러셀의 입장을 정확히 읽으면, 이 반론이 겨냥하는 대상은 러셀의 실제 주장과 어긋나 있다. 러셀은 "증거가 완전할 때만 행동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개연성의 정도에 따라 잠정적으로 믿되, 그 잠정성을 자각하라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증거 부재 상태에서의 행동이 아니라, 증거 부재를 인식하면서도 마치 확실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습관이다. 제임스 자신도 이 구별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러셀의 회의주의가 행동 불능을 요구한다는 독해는 과장이다.
둘째, 삶의 건조함에 대한 반론이다. 이 입장은 러셀의 회의주의가 사랑과 예술, 우정과 열정까지 모두 증거와 계산의 저울 위에 올리려는 태도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러셀의 사유는 이 비판이 상정하는 것보다 더 섬세하다. 그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동일한 종류의 이성적 통제를 부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과 시와 예술의 영역에는 비합리적인 충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경계한 것은 사랑의 과잉이 아니라 증오의 과잉이었고, 창조적 열정이 아니라 파괴적 확신이었다. 이성이 가장 엄격하게 개입해야 할 곳은 인간이 미워하는 대상을 다루는 자리, 처벌하고 배제하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리다. 러셀의 회의주의는 삶을 얼려버리는 냉기가 아니라, 타인을 해치는 열광이 폭주할 때 작동해야 하는 냉각 장치다.
셋째, 회의주의 자체의 자기 적용 문제가 있다. 회의주의가 모든 확신에 의심을 적용해야 한다면, 회의주의 원칙 자체에도 의심을 적용해야 하지 않는가. "증거 없이 믿지 말라"는 원칙은 그 자체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가, 아니면 하나의 신념에 불과한가. 이 문제는 고대 회의주의 이래 반복되어 온 것이지만, 러셀의 맥락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해소된다. 러셀의 증거주의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아니라 방법론적 규범이다. 그것은 "이것이 절대적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방법을 따를 때 오류가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정당화에 기반한다. 과학의 성공과 교조주의의 재앙이 바로 그 경험적 증거다. 따라서 회의주의의 자기 적용은 회의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교조화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회의주의조차 잠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은, 러셀적 회의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내적 일관성의 표현이다.
이제 이 글의 논의를 종합할 수 있다. 러셀의 회의주의는 단일한 인식론적 명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심리의 자기기만적 구조에 대한 진단이며, 과학적 사유의 윤리적 함의에 대한 해석이며, 전쟁과 선전이 드러낸 문명의 취약성에 대한 응답이며, 교조주의의 구조를 해부하는 비판 도구이며, 공론장의 제도적 조건에 대한 정치적 요구이며, 교육의 목적을 재정의하는 제안이다. 이 모든 층위를 관통하는 하나의 통찰은 이것이다: 증거 없는 확신은 하나의 인식론적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욕망을 진실로 오인하는 방식이며, 사회가 그 오인을 조직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며, 문명이 그 대가를 전쟁과 박해, 복종과 침묵의 형태로 치르는 방식이다.
그러나 러셀이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인간이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인간은 확실성 없이도 살아야 하며,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정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할 때, 사람은 가장 쉽게 허위의 권위에 매혹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믿음은 충성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책임은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는다. 질문이 처벌받지 않는 사회, 증거가 공정하게 유통되는 제도, 판단의 형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모든 것이 증거주의의 조건이다. 러셀의 회의주의가 가르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증거가 빈약한 곳에서는 확신을 늦추라. 그 지연은 때로 인간을 덜 잔인하게 만들고, 사회를 덜 광기적으로 만들며, 문명을 조금 더 오래 버티게 하는 드문 미덕이다.
참고자료
1. Russell, Bertrand. Sceptical Essays.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28. 특히 "On the Value of Scepticism."
2. Russell, Bertrand. "The Place of Science in a Liberal Education." The New Statesman,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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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ussell, Bertrand. Religion and Science. London: Thornton Butterworth,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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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Haidt, Jonathan. "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 A Social Intuitionist Approach to Moral Judgment." Psychological Review 108, no. 4 (2001): 814–834.
9. Lord, Charles G., Lee Ross, and Mark R. Lepper. "Biased Assimilation and Attitude Polarization: The Effects of Prior Theories on Subsequently Considered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 no. 11 (1979): 2098–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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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Bertrand Russell." https://plato.stanford.edu/entries/rus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