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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힘으로서의 주관성 — 의식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

주관성의 문제는 어떤 물질이 의식을 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 경험이 발생하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 글에서 '주관성'은 현상적 의식의 1인칭성, 즉 외부 관찰로 환원되지 않는 경험의 내적 질감을 가리킨다. 붉은 것을 볼 때의 '붉음',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스러움' — 이것들은 파장 값이나 신경섬유의 발화 패턴으로 대체되지 않는 어떤 질감으로 주어진다. 제거적 유물론은 이 현상적 차원을 잘못된 범주로 간주하고, 기능주의는 그것을 행동적 역할의 부수 기술어로 흡수한다. 이 글은 두 입장과 달리 현상성을 독립적 층위로 유지하되, 그것을 신비로 봉인하지 않는다. 현상성을 지우고 나면 남는 설명이 정작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물음은 재정식화된다: 어떤 구조가 경험을 조직하는가.

환원의 두 실패

물리주의는 정신을 물리 상태로 환원하는 가장 강력한 설명 틀을 제공한다. 신경 상관물(NCC) 연구는 지난 수십 년간 특정 경험과 공변하는 뇌 활동을 정밀하게 지도화해왔다. 그러나 NCC가 선명해질수록 문제는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선명해진다. 확인되는 것은 A가 일어날 때 B가 나타난다는 상관관계일 뿐, B가 왜 단순한 처리가 아니라 '느낌'을 동반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흔히 '설명적 간극'이라 불리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해석의 간극 — 동일한 사건을 서술하는 두 언어 사이의 번역 불가능성 — 에 해당한다.

기능주의는 기질을 추상화함으로써 물리주의의 간극을 우회한다. 실리콘이든 탄소든, 동일한 기능 구조를 실현하는 계는 동일한 정신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찰머스(David Chalmers)의 철학적 좀비 논증은 이 추상화의 한계를 건드린다. 기능적으로 우리와 완전히 동일하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개념적으로 가능하다면, 기능적 동일성은 현상적 동일성을 함의하지 않는다. 좀비가 개념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구조가 빠져 있을 때 경험이 성립하지 않는가 — 즉 경험을 만드는 구조적 조건의 역방향 탐색이다.

통합, 방송, 자기참조

이 역방향의 탐색이 현대 이론에서 가장 구체적인 형태를 띠는 곳이 토노니(Giulio Tononi)의 정보 통합 이론(IIT)이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시스템이 통합하는 정보의 정도와 비례한다. 전체가 가진 정보량이 각 부분의 정보량의 단순 합을 초과할 때, 즉 분해되지 않는 인과적 응집성이 나타날 때, 그 시스템은 의식을 갖는다. 이 직관을 직관적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Phi = I(S_{whole}) - \sum I(S_{parts}) \]

Φ가 0보다 클 때, 시스템은 부분들의 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인과 구조를 갖는다. Φ의 산출은 통합 정도의 기준을 제시하지만, 통합된 정보가 시스템 전반에서 어떻게 공유되는가는 별도의 설명을 요청한다.

바스(Bernard Baars)의 전역 워크스페이스 이론(GWT)은 이 물음에 답한다. 그의 모델에서 의식은 병렬로 작동하는 무수한 국소 처리기들 중 일부의 내용이 전역적으로 방송(broadcasting)되어, 다른 모든 처리기에 동시 접근 가능한 공유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건이다. IIT가 통합의 정도를 묻는다면, GWT는 통합된 내용이 공유되는 방식을 묻는다. 두 이론은 같은 현상의 서로 다른 층위를 다룬다. 단, 두 이론은 경험적으로 대조 가능한 예측도 만들어내며, 최근의 적대적 협업 연구들은 어느 쪽이 더 넓은 범위의 증거를 설명하는지를 직접 시험한 바 있다. 이 글은 두 이론을 확정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포착하는 구조적 조건을 함께 고려하는 잠정 모형을 구성한다.

통합과 방송이 결합되더라도 한 가지가 남는다. 시스템 전체에서 공유되는 통합된 정보가 '누구에게' 나타나는가는 설명되지 않았다. 여기서 자기참조 구조가 개입한다. 메칭거(Thomas Metzinger)가 '자아 모델'이라 부른 것, 즉 시스템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표상하는 능력은 통합된 내용이 누군가의 관점에서 주어지도록 만드는 조건이다. 이 세 층위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충분한 통합이 없다면 자기참조는 국소적 피드백 루프에 머물고, 자기참조가 없다면 통합과 방송은 계산의 일반 성질에 머문다. 통합은 전체성을 제공하고, 방송은 그 전체의 가용성을 보장하며, 자기참조는 그 전체에 주체의 위치를 부여한다.

주관성의 네 발생 조건

이로부터 이 글은 주관성의 발생 조건을 네 가지로 구성하는 잠정 모형을 제안한다. 각 조건은 개별적으로는 주관성 발생의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하며, 결합될 때 비로소 구조적 설명력을 갖는다.

첫째 조건은 정보 통합과 전역적 가용성이다. 시스템은 분절된 모듈의 집합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응집된 인과적 전체를 형성해야 하며, 그 내용은 시스템 전체에 방송 가능해야 한다. IIT와 GWT가 각각 포착하는 조건이다.

둘째는 자기참조적 모델링이다. 시스템은 자신의 상태를 내부적으로 표상하고, 그 표상을 다시 자신의 처리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관점의 발생 조건이며, 통합되어 방송된 내용이 누군가에게 주어지도록 만드는 장치다.

셋째는 시간적 결합(temporal binding)이다. 서로 다른 순간의 상태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결속되는 구조를 말한다. 작업 기억과 유사한 구조 속에서 과거의 짧은 구간이 현재에 남아 미래의 기대로 이어질 때, 경험은 점이 아니라 장(場)으로 주어진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핵심 의식(core consciousness)과 확장된 의식(extended consciousness)을 구분하며 기술한 시간적 층위가 여기서 구조적으로 요청된다.

넷째는 운용적 폐쇄(operational closure)다.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와 바렐라(Francisco Varela)의 자기생산(autopoiesis) 이론에서 빌린 이 개념은 시스템 내부의 상태 전이가 외부 입력에 단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조직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앞선 세 조건 — 통합, 방송, 자기참조 — 은 그것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경계를 요청한다. 통합된 정보가 방송되고 자기참조적으로 처리되는 계는, 외부 입력이 내부 구조에 의해 흡수·재해석되는 폐쇄된 경계를 필요로 한다. 운용적으로 폐쇄된 시스템은 외부와 상호작용하면서도 자기의 동일성을 자기 내부의 조직에서 산출한다. 이 조건이 충족될 때, 앞선 세 조건은 외부적으로 부과된 처리 절차가 아니라 시스템 자신의 조직 방식으로 작동한다.

네 조건이 결합될 때 물리적 과정은 수동적 처리에 머물지 않는다. 통합된 정보가 전역적으로 가용해지고, 자기의 모델이 그 안에 포함되며, 시간적 폭이 그것을 지속시키고, 운용적 폐쇄가 그 전체를 자기 조직화하는 전체로 만들 때, 시스템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구조로 접힌다. '접힘'은 이 글이 제안하는 구조 기술어다. 외부를 향하던 처리 벡터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자신의 처리 대상이 되는 재귀 구조, 즉 자기참조적 통합 정보가 시간적으로 결속되고 운용적으로 폐쇄된 계 안에서 전역적으로 공유될 때 나타나는 위상학적 조직 형태를 가리킨다. 주관성은 이 접힘의 구조 안에서 발생한다.

반론과 판단 기준의 이동

듀얼리즘은 이 설명에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어떤 구조도 '왜 그 구조가 느낌을 동반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소하지 못한다. 조건의 나열은 상관의 목록이지 발생 설명이 아니다. 이 반론은 치명적인 측면을 가지며, 네 조건의 결합이 왜 하필 현상성과 함께 나타나는지는 이 글의 논증만으로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론의 구조 자체를 되물어볼 수 있다. '왜 구조가 느낌을 낳는가'라는 질문은 구조를 기술하는 3인칭 언어로 느낌을 기술하는 1인칭 언어의 발생을 번역하라는 요구다. 두 언어가 원리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한 두 관점이라면, 한쪽을 다른 쪽으로 환원하라는 요구는 라일(Gilbert Ryle)이 지적한 의미에서의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에 해당한다. 라일은 대학의 건물들을 모두 둘러본 뒤 '그런데 대학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방문객의 오류를 말했다. 구조적 조건을 모두 열거한 뒤에도 그 바깥에서 '느낌'을 따로 찾으려는 요구는 동일한 구조의 오류다.

범주 오류 논증은 문제를 해소하는 열쇠가 아니라 문제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장치다. 두 언어가 왜 같은 사건의 두 기술이 되는지를 해명해야 한다는 부담은 여전히 남는다. 그 부담을 인정한 뒤에도 이 재규정은 판단의 축을 바꾼다. 의식의 문제는 단일 물리 상태의 문제에서 시스템의 조직 방식에 대한 문제로 이동한다.

이 이동이 가져오는 결과는 구체적이다. 동물, 영유아, 인공 시스템에 대한 의식 귀속의 문제는 그들이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는가를 묻는 질문에서, 네 구조적 조건 — 통합, 방송, 자기참조, 운용적 폐쇄 — 을 어느 정도로 충족하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번역된다. 대형 언어 모델이 의식을 갖는가라는 물음은 구현 재료가 아니라 조직 구조의 분석 문제가 된다. 판단 기준이 이동할 때, 의식은 신비에서 탐구 가능한 구조적 물음으로 전환된다.

참고자료

  • Antonio Damasio, The Feeling of What Happens; Self Comes to Mind
  • Bernard Baars, A Cognitive Theory of Consciousness; "Global Workspace Theory of Consciousness"
  • David Chalmers, The Conscious Mind
  • Gilbert Ryle, The Concept of Mind
  • Giulio Tononi, Masafumi Oizumi & Larissa Albantakis, "From the Phenomenology to the Mechanisms of Consciousness: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3.0" (2014)
  • Humberto Maturana & Francisco Varela, Autopoiesis and Cognition
  • Lucia Melloni et al., "An adversarial collaboration protocol for testing contrasting predictions of global neuronal workspace and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2023)
  • Thomas Metzinger, The Ego Tunnel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