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은 결핍이 세운 망명지다
디지털 플랫폼은 현대인을 지배하기 위해 갑자기 나타난 외부 권력이 아니다. 스스로를 내부에서 정의할 동력을 잃은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 증명을 맡기기 위해 공동으로 세운 망명지에 가깝다. 피드는 중독을 생산하기 전에 안도감을 제공한다. 누군가 보고 있고, 반응하고 있으며, 추천의 흐름이 자신을 계속 호출하고 있다는 감각. 현대인은 이 지속적인 호출을 통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확인한다.
과거의 자기 확인은 느렸다. 기억은 축적되어야 했고, 관계는 반복되어야 했으며, 선택은 오래 버텨야 형상을 만들었다. 플랫폼은 이 시간을 제거했다. 즉시 반응하는 수치, 끊임없이 갱신되는 비교 대상, 취향을 대신 정렬해주는 추천은 자기를 형성하는 시간을 자기를 점검하는 자극으로 바꿨다. 현대인은 무엇을 원하는지 오래 견디며 알아내지 않는다. 먼저 노출되고, 반응하고, 그 반응의 흔적을 다시 자기라고 읽는다.
주권은 강제로 박탈되지 않는다. 귀찮은 내면 노동을 덜어주는 편의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반납된다. 고독 속에서 욕망을 식별하는 일, 타인의 침묵을 견디며 관계의 의미를 보류하는 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선택을 지속하는 일은 점점 비효율적인 절차처럼 취급된다. 추천은 망설임을 줄이고, 피드백은 불안을 잠재우며, 비교 구조는 위치를 즉시 알려준다. 인간은 자유를 잃기 전에 자유가 요구하던 긴 체류 시간을 버린다.
플랫폼의 권력은 인간 내부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커진다. 반응이 없으면 자신이 희미해진다고 느끼는 감각, 타인의 시선이 멎는 순간 자기 형상도 멎는 듯한 초조함, 선택이 공적 신호로 변환되지 않으면 무효에 가까워지는 습관이 먼저 축적되었다. 플랫폼은 이 결핍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높은 해상도로 수익화했다.
이미지와 비교 구조가 자아를 흔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강한 자기 위에 외부 자극을 얹는 방식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를 유지하는 힘이 이미 약화된 상태에서 외부 신호가 임시 골격으로 작동한다. 좋아요, 조회 수, 저장 수, 팔로워 수는 평가의 도구를 넘어 붕괴를 지연시키는 보조 장치가 된다. 수치가 오르면 확장되고, 멈추면 줄어드는 자기는 플랫폼에 의해 조작된 허상으로 닫히지 않는다. 그것은 플랫폼 없이는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한 조립물에 가깝다.
현대인은 이 상태를 억압의 언어로만 서술하며 자신을 면책하려 한다. 알고리즘이 과잉 자극을 설계했고, 기업이 주의를 수탈했으며, 비교 문화가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진단은 모두 일정 부분 유효하다. 그 진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탈의 통로가 이토록 깊게 열린 이유는 인간이 자기 내부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인간의 공백을 만든 범인이기 전에, 공백이 스스로 요구한 가장 정교한 대답이다.
피드를 모두 지우고, 추천을 끊고, 비교의 장치를 철거한다고 해서 곧바로 주권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오래 방치된 내부의 황무지다. 자극이 사라진 자리에 취향이 자동으로 솟지 않고, 연결이 끊긴 자리에 독립성이 즉시 생기지 않는다. 남는 것은 무엇을 보고 싶은지조차 외부 갱신에 기대어 결정해온 감각의 빈자리다.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플랫폼의 감시만이 아니다. 감시가 멈춘 뒤에도 자신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지 확인할 방법을 잃는 일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인간이 자기 내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선택한 망명지다. 그곳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문이 잠겨 있어서가 아니라, 돌아가야 할 내부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성일: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