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성의 계보: 복종의 형식은 어떻게 발명되고 침식되는가
정당성은 시간 속에서 발명되고 침식되는 정치적 형식이며, 시대별로 다른 작동 조건 위에서 복종을 조직한다. 여기서 '작동 조건'은 피지배자에게 믿어질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기반, 구체적으로는 발언권·응답성·자기 정정 가능성의 세 요소가 함께 요구된다.
환원주의는 정당화 서사를 통치 기술로 설명한다. 피지배자가 자발적으로 복종하면 물리적 강제의 반복 비용이 줄어드므로, 정당성 서사는 폭력의 효율적 보완재라는 논리다. 이 설명은 정당화 서사의 존재 자체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도구적 설명은 다음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왜 같은 도구적 효과를 위해 시대마다 근본적으로 다른 정당화 형식이 요구되었는가. 통치 기술이라면 가장 효율적인 단일 형식으로 수렴해야 할 텐데, 신정 정당화, 주권 이론, 사회계약, 절차적 민주주의는 서로 이식 가능하지 않다. 이 불가능성은 정당화 형식이 도구 이상의 규범 구조를 가짐을 보여준다. 도구가 작동하려면 그 형식이 피지배자에게 정당하게 인식되어야 하고, 그 인식 가능성은 각 형식의 내부 규범 논리에 달려 있다. 도구적 설명은 정당성의 효과를 전제한 채 정당성을 설명한다.
정당성의 역사적 변천은 이 규범 구조가 시간 속에서 형성되고 교체되어 온 과정이다.
베버에서 출발하는 이유: 복종은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조건으로 한다
베버(Max Weber)는 정당한 지배(legitime Herrschaft)를 "복종할 만하다는 믿음"의 산물로 규정했다. 강제력과 그 믿음은 별개의 층위에서 작동한다. 경제와 사회(Wirtschaft und Gesellschaft, 1922)에서 베버는 정당한 지배의 세 가지 이상형을 제시한다. 전통적 지배는 "영원한 어제의 권위"에서, 카리스마적 지배는 지도자의 비범한 자질에 대한 인정에서, 합법적-합리적 지배는 형식적으로 제정된 규칙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세 유형 중 카리스마적 지배는 제도적 정당성 형식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진다. 베버는 카리스마가 지도자의 죽음이나 실패 이후 전통적 또는 합법적-합리적 형식으로 "일상화(Veralltäglichung)"된다고 분석했다. 카리스마는 장기 지배를 지탱하기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며, 안정적 지배를 위해서는 전통이나 합법성의 제도적 외피를 필요로 한다. 본 글의 계보가 다루는 정당성 형식은 이 일상화 이후 제도로 안착한 형태들이다.
베버의 핵심 통찰은 지배가 강제력 외에 피지배자의 인정이라는 조건을 함께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인정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변천하며 서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정당화 형식이 다른 시대로 이식되면 권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신정 군주의 종교적 권위는 근대 시민에게 통하지 않으며, 합법적 절차의 권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끌어모은 군중 앞에서 약해진다. 이 차이가 정당성을 단순한 통치 기술로 환원하는 설명의 한계를 보여준다.
신정에서 주권으로: 정당화 체계의 첫 번째 세속화
정당성 체계의 첫 번째 큰 전환은 중세 신정 정당화에서 근대 세속 주권 이론으로의 이동이다. 중세 유럽의 지배는 신성한 질서에 대한 참조 위에 세워졌다. 군주의 권력은 신의 위임으로 정당화되었고, 교회의 권위는 그 위임을 검증하는 장치였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서 17세기 보쉬에(Bossuet)가 정식화한 왕권신수설에 이르기까지, 정당화의 기축은 초월적 질서에 대한 일치였다.
이 틀의 내부 논리에서 보면 신정 정당화는 환원주의가 설명하는 단순한 통치 기술이 아니었다. 초월적 권위에 대한 인정은 군주와 피지배자 모두를 구속하는 규범 질서를 형성했다. 군주는 그 질서를 위반할 경우 저항의 정당화라는 내재적 위험에 직면했다. 순수한 폭력 논리에서는 이 내재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체계는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을 거치며 무너졌다. 같은 신을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들이 무력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신성한 질서는 정당화의 공통 기반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 보댕(Jean Bodin)의 공화국에 관한 여섯 권의 책(1576)은 이 전환의 이론적 전조다. 그는 주권을 "법에 의존하지 않는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권력"으로 정의하면서 세속적 권위 자체가 정당화의 단위가 될 수 있다는 틀을 제공했다. 홉스(Thomas Hobbes)의 리바이어던(1651)은 이 세속적 주권 이론을 계약론으로 연결한 다음 단계다. 자연 상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하며, 그 양도가 주권을 정당화한다.
사회계약과 법치국가: 동의의 제도화 단계
홉스 이후 정당성 체계는 동의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로크(John Locke)의 통치론(1689)은 정당성의 근거를 생명·자유·재산에 대한 자연권 보호로 옮겼고, 통치자의 위반은 저항의 정당화로 이어졌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1762)은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개념으로 정당성을 시민의 자기 입법 행위로 정식화했다.
이 단계에서 환원주의의 도구적 설명이 가장 강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계약 서사는 자연 상태의 공포를 기억하게 하고, 국가가 그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로 복종을 조직한다. 이것이 정당화 서사를 통치비용 절감 장치로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자체 논리로 반박된다. 반복적 통치에서는 복종을 매번 물리력으로 갱신하면 지속 비용이 커진다.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서사가 투입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서사가 작동하려면 그 서사의 내적 규범 논리 — 자연권의 보호, 계약의 상호성, 저항의 조건 — 가 피지배자에게 실제로 수용되어야 한다. 수용 가능성은 서사 형식 자체의 규범 구조에 달려 있으며, 이 구조는 단순한 공포의 언어로 대체될 수 없다. 홉스의 언어, 로크의 언어, 루소의 언어가 각각 다른 조건에서 수용 가능했던 것은 그 언어들이 서로 다른 규범 논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친 입헌국가의 형성은 이 동의 이론을 헌법, 의회, 권력분립, 법치주의 같은 제도로 번역했다. 베버가 경제와 사회에서 분석한 합법적-합리적 지배의 형태는 이 제도화의 결과다. 이 단계에서도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는 여전히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행사했다. 폭력 행사 자체가 절차적 규칙에 따라야 정당성을 얻는다는 조건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비합법적 폭력 행사가 정권을 흔드는 사건은 폭력이 통과해야 하는 형식의 무너짐에서 발생한다.
절차적 민주주의: 동의 구조의 제도적 완성과 내장된 취약성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당성의 지배적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법치국가가 법의 적용 과정을 규율했다면, 민주국가는 법 자체를 만드는 과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원리를 추가했다. 보통선거권의 확대, 의회 대표성의 제도화, 기본권 보장 체계의 형성이 이 단계의 핵심 발명이다.
이 단계의 정당성 논리는 선명하다. 법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해진 절차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절차적 정당성은 도덕적 합의 없이도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치 체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동시에 이 형식은 취약성을 내장한다. 절차는 형식적으로 완료되면서도, 그 산출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절차의 합법성과 절차가 산출한 결과에 대한 시민의 수용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면, 이 단계의 정당성 형식은 자기 보정 능력 없이 균열한다. 이 취약성이 20세기 정치 이론의 중심 문제를 예고했다.
합법성과 정당성의 분리: 슈미트와 하버마스가 드러낸 균열
20세기 들어 합법성(Legalität)과 정당성(Legitimität)이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치 이론의 중심 문제로 들어왔다.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1932년 합법성과 정당성(Legalität und Legitimität)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합법성의 외피를 유지하면서 정당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의 진단은 절차적 합법성이 다수결 게임으로 환원될 때 형식적으로 정당한 절차가 정치 체제 자체를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슈미트의 분석은 그가 곧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사실로 정치적 평가가 어려워졌지만, 합법성과 정당성 사이의 가능한 간극이라는 문제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1973년 후기 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Legitimationsprobleme im Spätkapitalismus)에서 이 균열을 다른 방향에서 진단했다. 그가 본 정당성 위기는 국가가 자본 축적의 모순을 행정적으로 흡수하려 하면서 시민의 충성과 동기 부여를 산출하는 문화적·규범적 자원을 침식한다는 것이었다. 합법성은 유지되지만, 그 합법성이 신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약해진다.
베버에서 슈미트, 하버마스로 이어지는 선은 절차적 형식과 그 형식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함께 정당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절차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조건 없이 자생적으로 정당성을 공급하지 못한다.
현재의 정당성 침식: 작동 조건의 해체
현재의 국가 정당성은 침식의 국면에 있다. 2024년 OECD 조사(2023년 조사, 30개국 기준)에 따르면,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9%에 그친 반면 낮거나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4%에 달한다. 더 구체적으로, 정부 결정에 발언권이 있다고 느끼는 집단(69%)과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집단(22%) 사이의 간극은 47%포인트에 이른다. 이 수치를 정당성 붕괴의 직접 증명으로 읽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다만, 앞서 정의한 세 작동 조건 — 발언권, 응답성, 자기 정정 가능성 — 의 침식을 시사하는 제도적 신호로 읽는 것은 가능하다.
침식의 원인은 여러 요인의 결합에서 발생한다. 자본의 초국적 이동성은 한 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좁히고, 절차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실질적 정책 범위에서 갖는 재량을 제한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공론장의 형성 조건을 사적 기업의 알고리즘에 의존시킨다. 행정의 복잡성은 시민이 결정 과정을 추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이 조건들이 합쳐지면 절차는 합법성을 유지하면서 응답성과 발언권의 기반을 잃는다.
같은 폭력 독점 구조를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도 신뢰 수준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차이는 정당성의 위기가 물리적 강제력의 양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절차를 복종 가능한 질서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 약해질 때, 합법성은 유지되어도 정당성의 산출 능력은 낮아진다.
진단의 귀결: 정당성은 발명품이며, 발명품은 침식된다
정당성은 시간 속에서 발명되고 침식되는 사회적 형식으로 작동한다. 신정 정당화, 세속적 주권 이론, 사회계약, 법치국가, 절차적 민주주의는 각각의 단계에서 복종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든 별개의 발명품이다. 한 단계에서 작동하던 정당화 형식이 다음 단계에서 무력해질 때마다 권력 자체가 위기를 맞았으며, 인간은 그때마다 새로운 정당화 형식을 발명해 왔다.
현재의 국면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형식이 그것을 지탱하는 세 작동 조건 — 발언권, 응답성, 자기 정정 가능성 — 의 침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단계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이 진단이 가리키는 것은 정당성의 종말이 아니다. 정당화의 사회적 조건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는 국면에 우리가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발명품의 한 단계가 침식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참고자료
- Weber, Max. Wirtschaft und Gesellschaft. Tübingen: Mohr, 1922. (영역본: Economy and Societ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8.) — 정당한 지배의 세 이상형, 관료제 분석.
- Weber, Max. "Politik als Beruf." 1919년 뮌헨 강연. (영역본: "Politics as a Vocation," in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Routledge, 1991.) — 국가와 물리적 폭력의 독점.
- Weber, Max.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4–1905. (영역본: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Penguin, 2002.) — 합리화와 쇠우리(stahlhartes Gehäuse) 비유.
- Bodin, Jean. Les Six livres de la République. Paris, 1576.
- Hobbes, Thomas. Leviathan. London, 1651.
- Locke, John. Two Treatises of Government. London, 1689.
- Rousseau, Jean-Jacques.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Amsterdam, 1762.
- Schmitt, Carl. Legalität und Legitimität. München/Leipzig: Duncker & Humblot, 1932. (영역본: Legality and Legitimacy, trans. Jeffrey Seitzer, Duke University Press, 2004.)
- Habermas, Jürgen. Legitimationsprobleme im Spätkapitalismus.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3. (영역본: Legitimation Crisis, trans. Thomas McCarthy, Beacon Press, 1975.)
- OECD. OECD Survey on Drivers of Trust in Public Institutions — 2024 Results. Paris: OECD Publishin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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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