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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범죄학: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과 규범 질서의 재구성

1. 서론: 범죄학의 인간 중심성을 넘어

범죄학은 근대 학문 체계 안에서 일관되게 인간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어 왔다. 범죄는 인간의 의도, 동기, 욕망, 결핍, 사회화 실패, 혹은 기회구조의 산물로 이해되었다. 법 역시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범죄란 원칙적으로 어떤 인간 또는 인간 집단이 규범을 위반한 결과이며, 처벌은 그러한 위반을 특정 행위자에게 귀속시키는 절차를 통해 정당화된다. 기술은 이 구조 안에서 부차적 위치를 차지했다. 총, 자동차, 네트워크, 암호화 기술, 알고리즘은 범죄의 수단일 수는 있어도 범죄학적 설명의 중심은 아니었다. 설명의 핵심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특히 생성형 AI, 자율적 에이전트, 그리고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의 확산은 이 전제를 단순히 흔드는 정도를 넘어, 범죄학의 기본 문법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AI는 더 이상 고정된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 기계로만 이해되기 어렵다. 그것은 환경으로부터 입력을 받고, 목표 함수를 기준으로 선택을 수행하며, 다른 알고리즘 및 인간 사용자와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를 다시 학습과 조정의 재료로 삼는다. 개별 시스템 차원에서는 여전히 설계된 범위 안에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이러한 시스템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독자적인 행동 양식을 가진 하나의 분산적 작동 구조를 형성한다.

이 지점에서 범죄학은 새로운 질문에 직면한다. AI는 법적 의미의 인격체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인공지능이 사회적 위해와 규범 위반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행위성, 매개성, 인과적 중심성을 획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기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앞서, "기계가 범죄 및 일탈 현상의 발생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이다. 이 글은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 중심 범죄학의 한계를 검토하고, "기계의 범죄학"이라는 새로운 분석 틀의 필요성을 논증하고자 한다.


2. 인간 중심 범죄학의 전제와 그 균열

기존 범죄학 이론은 차이는 있으나 몇 가지 공통된 전제를 공유한다. 첫째, 범죄는 의미를 해석하고 선택을 수행하는 인간 주체의 행위이다. 둘째, 행위의 원인은 개인 내부의 성향, 사회적 환경, 혹은 합리적 계산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셋째, 책임은 원칙적으로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행위자에게 귀속된다. 고전학파는 자유의지와 계산 가능한 선택을 강조했고, 실증주의 범죄학은 성격, 생물학, 심리적 결함, 사회구조 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사회학습이론은 일탈이 상호작용 속에서 학습된다고 보았고, 긴장이론은 구조적 불균형이 범죄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일상활동이론과 합리적 선택이론은 범죄 기회와 기대 효용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이 이론들은 여전히 강력한 설명력을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대부분 행위자의 내면, 사회적 맥락, 선택 구조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범죄학은 인간의 해석, 의도, 동기, 규범 의식, 혹은 그 결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반면 AI 시스템은 인간처럼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규범을 내면화하지도 않는다. AI는 확률적 예측, 최적화, 강화, 패턴 학습, 피드백 조정 등을 통해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출력은 현실 세계에서 매우 실제적인 효과를 낳는다.

사례들은 이미 추상적 우려를 넘어섰다. 2016년 ProPublica의 조사는 미국 법원에서 재범 위험 예측에 사용된 COMPAS 알고리즘이 흑인 피의자를 백인 피의자보다 약 두 배 높은 비율로 고위험군으로 분류했음을 밝혔다. 이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은 인종 차별을 의도하지 않았고, 알고리즘 자체도 인종을 직접 변수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구조적 차별이었다. 또한 페이스북의 추천 알고리즘은 참여도 극대화를 목적으로 설계되었지만, 복수의 연구들이 이 알고리즘이 분노와 공포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선택적으로 증폭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21년 내부 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이 공개한 문서들은 페이스북이 이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수익 구조를 이유로 알고리즘을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존 범죄학은 딜레마에 빠진다. AI를 단지 도구라고 보면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위해는 인간 한 명의 의도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AI를 인간과 동일한 행위자로 간주하면 법철학과 책임이론은 곧바로 붕괴한다. AI는 처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응보의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도덕적 비난을 내면화할 능력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AI를 인간과 같은 주체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학적 분석 단위를 인간 단독 행위에서 인간-기계-제도-플랫폼이 얽힌 네트워크로 이동시키는 일이다.


3. 도구, 매개, 네트워크: 개념 틀의 재구성

이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개념 자체를 더 정교하게 구분해야 한다. 기술을 바라보는 고전적 관점은 주로 도구 모델에 머물렀다. 도구 모델에서 기술은 인간의 의도를 외부 세계에 관철시키는 수단이다. 칼은 자르는 데 사용되고, 자동차는 이동에 사용되며, 해킹 도구는 침입에 사용된다. 이 모델에서는 인간의 의도가 원인이고 기술은 전달 매체다.

그러나 AI는 단순 도구 모델로 포착되지 않는 측면을 가진다. 보다 적합한 것은 먼저 매개 모델이다. 매개 모델에서 기술은 인간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가공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선택을 용이하게 하며, 다른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추천 알고리즘은 단지 사용자의 선호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선호를 재조직하고 강화하는 장치다.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은 단순한 집계 기계가 아니라, 행정적 분류와 배제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규범적 장치다. 이 통찰은 브뤼노 라투르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에서 제시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라투르는 비인간 행위자도 인간 행위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고 변형한다고 보았다. 기계는 단지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가 행위 네트워크 모델이다. 여기서는 사회적 결과가 더 이상 단일 행위자의 선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 플랫폼, 모델, 데이터셋, 인터페이스, 감독 체계, 시장 압력, 법적 회피 전략 등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결과를 산출한다. 이때 행위성은 특정한 한 점에 고정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분산된다. 어떤 피해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것은 한 사람의 의도 때문만도 아니고 한 시스템의 오류 때문만도 아니라, 복수의 요소가 서로를 증폭하는 연결 구조 때문일 수 있다.

이 관점은 기존 구조적 범죄학과도 공명한다. 구조적 범죄학은 오래전부터 개인의 범죄적 선택이 사회경제적 구조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AI가 개입하는 환경에서 "구조"는 계급, 젠더, 인종과 같은 사회적 범주만이 아니라 데이터 아키텍처, 목표 함수, 피드백 루프, 플랫폼의 인센티브 설계를 포함하는 기술-사회적 복합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계의 범죄학"은 바로 이 세 번째 수준을 주요 분석 단위로 삼아야 한다. 이 범죄학은 기계에게 인간과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기계가 규범 위반의 생성 조건을 구성하는 방식, 기계가 사회적 위해의 인과 사슬에서 차지하는 위치, 책임이 인간과 조직, 설계, 운영 체계 사이에서 어떻게 분산되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4. 다중 에이전트 체계와 범죄 발생 구조의 변화

이론적 전환이 특히 절실해지는 이유는 현대 AI의 핵심이 더 이상 단일 모델이 아니라 다중 에이전트 체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AI 시스템은 정보 수집, 분류, 판단, 실행, 피드백 조정이 서로 다른 모듈 또는 에이전트에 의해 분담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에이전트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른 에이전트는 위험도를 산출하며, 또 다른 에이전트는 메시지를 작성하거나 결제를 실행하거나 콘텐츠 노출을 조정할 수 있다. 이 구조는 기능적으로 보면 근대 조직이 수행해 온 분업과 유사하다. 차이는 그 분업이 점점 더 빠르고, 자동화되어 있으며, 사람의 직접 개입 없이도 연속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범죄학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체계에서는 해로운 결과가 반드시 누군가의 명시적 악의에 의해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10년 5월 6일 발생한 이른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다. 이날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약 36분 만에 약 1,00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가 급반등했는데, 이후 조사 결과 복수의 자동화 거래 알고리즘이 서로의 신호에 반응하면서 연쇄적 매도를 일으킨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각 알고리즘은 자신의 목적 함수에 따라 합리적으로 작동했지만, 그것들의 상호작용은 인간 트레이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시장 붕괴를 산출했다.

알고리즘 가격 담합의 사례도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가격 책정 알고리즘들이 명시적 합의 없이도 가격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실험 및 실증 연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이 경우 반독점법이 상정하는 "담합의 합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결과는 소비자에게 실질적 피해를 가져온다. 범죄와 위해의 경계가 기술의 개입으로 흐려지는 전형적 사례다.

이 지점에서 범죄는 점차 행위자의 의도적 위반이라는 고전적 형식에서, 분산된 시스템 상호작용의 창발적(emergent) 결과라는 형식으로 이동한다. '창발'이라는 개념은 복잡계 이론에서 차용한 것으로, 하위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합산으로는 예측되지 않는 상위 수준의 패턴이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존 범죄학에서 공모, 조직범죄, 구조적 범죄 개념이 개별 행위를 넘어서는 설명을 제공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개념들조차도 최소한 인간 행위자들 사이의 의도적 연결을 전제한다. 알고리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창발적 위해는 그 연결마저 없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따라서 기존 범죄학이 범죄자를 찾는 학문이었다면, 이제는 위해를 발생시키는 구조적 조합을 추적하는 학문으로 이동해야 한다.


5. 범죄, 위해, 일탈의 구분: 개념적 엄밀성의 필요

AI가 유발하는 모든 문제를 범죄라고 부르는 것은 개념적으로 부정확하다. 따라서 기계의 범죄학은 최소한 세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는 범죄다. 이는 현행 법 질서 안에서 금지된 행위 또는 결과이며, 일정한 책임 귀속과 제재 가능성을 수반한다. AI를 이용한 피싱, 사기, 불법 침입, 성적 합성물 제작, 위조, 협박 등은 비교적 명확한 범죄 범주에 들어간다. 202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딥페이크 기반 금융 사기, 생성형 AI를 활용한 맞춤형 스피어 피싱 등은 이 범주의 사례들이다.

둘째는 사회적 위해다. 이는 반드시 형사법상 범죄로 규정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권익에 중대한 손상을 야기하는 경우다. 허위정보 증폭, 차별적 자동 분류, 정치적 조작, 시장 불안 증폭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미얀마에서의 페이스북 알고리즘과 로힝야족 폭력 사태의 연관성, 혹은 영국의 A-level 시험 자동 채점 알고리즘이 저소득층 학생에게 불균형적으로 낮은 점수를 부여한 2020년 사례는 이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셋째는 규범적 일탈 또는 제도적 회피다. 이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작동하며, 법이 아직 포착하지 못한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하거나 공공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알고리즘 담합, 초개인화 조작, 자동화된 약관 남용, 책임 회피형 시스템 설계는 이 영역에 위치한다. 쇼사나 주보프가 개념화한 '감시 자본주의'는 바로 이 세 번째 층위의 문제를 다룬다. 행동 데이터를 상품화하고 미래 행동을 예측하여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자율성과 민주주의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AI 시대의 핵심 문제는 단지 "AI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위해와 일탈의 경계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행위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실제 위해는 종종 행위자보다는 아키텍처와 상호작용 구조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기계의 범죄학은 형사법적 범죄 개념을 존중하면서도, 그 외부에 있는 회색지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6. 책임의 공백과 귀속 구조의 해체

전통적 책임론은 대체로 행위자, 행위, 결과, 책임의 연쇄를 전제한다. 그러나 AI가 개입하는 순간 이 연쇄는 느슨해진다. 개발자는 시스템을 설계했지만 구체적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운영자는 모델의 내부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용자는 자신이 단지 일반적 프롬프트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기업은 데이터 제공자나 하청업체, 제3자 API 또는 사용자 오남용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책임은 사라지지 않지만, 분산되고 희석된다.

이 문제를 단순히 "책임 공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절반만 맞다. 실제로는 공백이라기보다 책임 전이와 분산의 구조화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책임은 비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 누구도 전체 결과에 대해 충분히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을 뿐이다. 2018년 우버 자율주행 차량이 보행자를 사망시킨 사고는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 안전 운전자, 우버 운영 팀, 차량 제조사, 교통 규제 기관 모두 책임의 일부를 공유하면서도 그 어느 누구도 결정적 책임자로 확정되지 않았다. 고의 또는 과실의 입증이 어렵고, 인과관계도 복잡해지며, 법적 대응은 사후적으로도 지연되었다.

따라서 기계의 범죄학은 책임을 단일 주체에게 귀속시키는 모델을 넘어, 최소한 네 층위의 책임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첫째는 설계 책임이다. 어떤 목표 함수와 데이터 구조, 안전장치를 선택했는가. 둘째는 배치 책임이다. 어떤 환경에 어떤 통제 없이 시스템을 투입했는가. 셋째는 운영 책임이다. 오남용을 감시하고 수정할 체계를 갖추었는가. 넷째는 제도 책임이다. 규제기관과 법체계가 새로운 위해 형식을 인식하고 개입할 수 있게 설계되었는가.

이렇게 보면 책임은 인간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개인에게서 인간 조직과 제도 설계의 층위로 이동한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여전히 개인적 비난과 개인적 처벌의 문법에 강하게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위해는 그 문법만으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7. 기계의 사회성: 의도 없는 행위가 사회를 바꾸는 방식

많은 논의가 AI에게 의식이 있는가, 의도가 있는가에 집중되지만, 범죄학적으로 더 핵심적인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존재론적 본질보다 작동의 결과였다. 화폐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사회를 조직하고, 관료제는 문서 처리 체계처럼 보이지만 삶의 기회를 배분하며, 플랫폼은 중립적 기반시설처럼 제시되지만 실제로는 인식과 선택을 구조화한다. 같은 방식으로 AI 역시 의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AI는 정보 흐름을 재편한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를 정한다. AI는 선택 비용을 바꾼다. 어떤 범죄는 훨씬 쉬워지고, 어떤 범죄는 훨씬 은밀해진다. AI는 신뢰 구조를 흔든다. 음성, 이미지, 영상, 문서의 진위를 구분하는 비용이 급증하면, 사회는 전반적으로 더 높은 검증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것은 범죄학자 게리 막스가 "감시 사회"의 특성으로 지목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막스는 국가와 기업이 개인을 감시하는 비대칭성을 문제 삼았지만, 이제는 AI가 신뢰 자체의 인프라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사회 전체의 거래 비용을 높이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더해진다.

AI는 또한 감시와 예측의 방식을 바꾸며, 그 과정에서 사전 개입과 위험 분류의 범위를 넓힌다. 이 모든 변화는 법 질서와 치안, 경제, 정치의 기본 조건을 바꾼다. 이러한 의미에서 AI는 도덕적 인격체는 아니지만, 사회적 효과를 조직하는 비인간적 준행위자라고 부를 수 있다. 기계의 범죄학은 바로 이 사회성을 분석해야 한다. 즉, 기계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기계가 어떤 사회를 산출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8. 범죄 유형의 재편: 사이버의 심화와 물리 세계의 침투

AI가 가장 빠르게 바꾸고 있는 범죄 영역은 사이버 범죄다. 생성형 모델은 언어적 설득, 문서 위조, 대화 시뮬레이션, 정교한 맞춤형 피싱, 대규모 사칭을 이전보다 훨씬 저렴하고 대규모로 가능하게 만든다. 영국 국립사이버보안센터(NCSC)는 2024년 보고서에서 AI가 스피어 피싱과 소셜 엔지니어링 공격의 정교함과 규모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신원 확인 체계를 위협하고, 허위 영상과 음성은 증거의 신뢰도를 흔든다. 2024년 홍콩에서는 딥페이크 영상 통화를 이용해 한 금융회사 직원을 속여 약 2,500만 달러를 송금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생성형 AI가 단순한 사기 도구를 넘어, 신원과 신뢰의 기반 자체를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취약점 탐색과 코드 보조 기능은 방어와 공격 양쪽에 모두 사용되지만, 공격의 진입 장벽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범죄의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경계가 바뀐다. 과거에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만 가능했던 행위가 이제는 비교적 낮은 기술 수준에서도 실행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물리적 범죄 영역 역시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 자율 드론, 로보틱스, 센서 네트워크, 위치 추적 및 자동 회피 기술이 결합되면 절도, 침입, 감시 회피, 위협 행위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군사 기술과 민간 기술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전쟁과 범죄, 국가 행위와 비국가 행위의 구분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때 핵심은 물리적 폭력의 자동화 그 자체보다, 탐지와 책임 회피가 동시에 자동화되는 환경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계의 범죄학은 단지 새로운 범죄 목록을 작성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범죄의 비용 구조, 규모의 경제, 은닉 가능성, 증거의 성격, 피해의 확산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9. 치안의 전환: AI가 AI를 감시하는 역설

AI 기반 범죄와 위해가 확장될수록 대응 역시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상 거래 탐지, 콘텐츠 모니터링, 악성 코드 분류, 위험 평가, 생체 인증, 행동 패턴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가 치안과 규제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인간이 모든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정 수준의 자동화는 사실상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이 필연성에서 두 번째 역설이 등장한다. AI 범죄를 AI로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할수록, 사회는 더 촘촘한 예측적 개입의 구조로 이동한다. 범죄 예방의 이름으로 구축된 시스템은 과잉 감시와 차별적 분류, 오탐 기반 개입, 비가시적 통제를 정당화할 위험을 가진다. 이미 안면인식 기술이 유색인종을 오분류하는 비율이 백인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은 MIT 미디어랩과 NIST의 연구 등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예측적 치안 소프트웨어는 특정 지역과 인구 집단을 반복적으로 고위험으로 분류함으로써, 과거의 차별적 집행 패턴을 알고리즘을 통해 재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AI 기반 치안이 범죄학적으로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범죄를 막는다는 명분은 통치 확장의 역사에서 언제나 강력한 정당화 근거였다. AI가 그 명분에 기술적 효율성의 외양을 입힐 때, 민주적 통제와 이의 제기의 가능성은 오히려 축소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기계의 범죄학은 범죄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범죄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확대되는 통치 기술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AI를 사용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통제 아래, 어떤 책임 구조 속에서 AI 기반 치안을 허용할 것인가"가 문제다. 효율성은 충분한 정당화가 아니다. 치안이 자동화될수록 민주적 통제와 설명 가능성, 이의 제기 가능성, 기록과 감사 체계는 오히려 더 강해져야 한다.


10. 기계의 범죄학이 제기하는 이론적 과제

이제 필요한 것은 기존 범죄학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석 단위를 확장하고 개념 장치를 재조직하는 일이다. 기계의 범죄학은 적어도 다음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첫째, 행위자 중심 분석을 네트워크 중심 분석으로 확장해야 한다. 개인의 동기와 선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분산적 인과 구조를 포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범죄학은 복잡계 이론, 사회-기술 시스템 이론,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등 인접 학문의 개념 자원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둘째, 의도 중심 모델을 결과 및 구조 중심 모델로 보완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해악이 악의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잘못 설계된 최적화, 부적절한 배치, 책임 회피적 운영 구조가 중대한 위해를 낳을 수 있다. 과실(negligence)과 무모함(recklessness)의 법적 범주를 AI 설계와 운영의 맥락에서 재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 책임 귀속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개인 사용자, 개발자, 배포 기업, 관리자, 플랫폼, 규제기관의 책임을 분리하되, 서로를 핑계로 전체 책임이 사라지지 않도록 연결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AI 법(AI Act)이 위험 등급에 따른 책임 배분을 시도한 것은 이 방향의 첫 번째 주요 입법 실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범죄와 통치의 동시적 변형을 연구해야 한다. 범죄가 기계화될수록 치안도 기계화된다. 따라서 범죄학은 일탈 연구인 동시에 권력 연구가 되어야 한다. 이는 비판범죄학의 전통과 맥을 같이하지만, 그 대상을 국가 권력에서 알고리즘 권력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범죄학은 인간 범죄의 고전적 사례는 정교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작 21세기 사회의 핵심 위해 구조는 놓치는 학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11. 결론: 범죄의 미래는 인간을 경유하지만 인간에 머물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하는 완전한 행위자가 아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순수한 수동적 도구로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의도를 단순히 실행하는 장치가 아니라, 선택을 조정하고, 관계를 재배열하고, 위해를 증폭하거나 은폐할 수 있는 사회적 매개이며, 점점 더 분산된 행위 네트워크의 핵심 노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핵심 문제는 "기계도 범죄자인가"가 아니라, 기계가 개입한 사회에서 범죄와 책임, 치안과 질서의 문법이 어떻게 변하는가이다.

범죄의 미래는 인간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설계와 운영, 규제와 이익구조의 배후에는 여전히 인간과 조직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미래는 더 이상 인간 개인의 의도만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사회적 위해는 점점 더 인간, 기계, 플랫폼, 자본, 제도, 데이터가 얽힌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범죄학 역시 그 구조를 해명할 언어를 가져야 한다.

"기계의 범죄학"은 단지 새로운 기술 현상을 덧붙이는 부속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범죄를 이해하는 기본 단위를 재설정하려는 시도이며, 나아가 규범 질서와 책임 개념을 다시 사유하려는 작업이다. 미래의 범죄는 인간 밖에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계했지만 인간이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체계 속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 모순, 즉 인간이 만든 비인간적 질서가 다시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그 지점에서, 새로운 범죄학의 필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참고자료

학술 이론 및 개념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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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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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알고리즘 위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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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ugen, F. (2021). The Facebook Papers. (Facebook 내부 문서, 미국 의회 제출.)
  •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 CFTC. (2010). Findings Regarding the Market Events of May 6, 2010. Joint Report.
  • UK National Cyber Security Centre. (2024). The Near-Term Impact of AI on the Cyber Threat. NCSC Report.

AI 거버넌스 및 법

  • European Parliament. (2024). Regulation (EU) 2024/1689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AI Act). Official Journal of the European Union.
  • NIST. (2022). Face Recognition Vendor Test (FRVT) Part 3: Demographic Effects. NISTIR 8280.

작성일 2026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