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약속과 은폐의 구조
AI 발전이 드러내는 문명론적 긴장에 관하여
1. 문제의 좌표
"더 나은 기술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 이 명제는 근대 이후 서구 문명이 자기 정당화의 서사로 삼아 온 진보주의의 압축이다.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은 이 서사의 가장 최신 판본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혹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생성형 AI가 전문 지식의 접근 장벽을 허물고, 자동화가 반복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며,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의 편향을 교정한다는 약속에는 보편적 해방의 수사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이 수사의 이면을 한 겹만 벗기면, 대규모 언어모델 훈련에 투입되는 저임금 데이터 라벨러의 노동, 반도체 공급망에 결부된 지정학적 비대칭, 그리고 소수 기업에 집중된 인식론적 설계 권한이 드러난다. 문제는 이 두 층위—약속과 비용—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약속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비용은 더 효과적으로 비가시화된다.
본 에세이는 AI 발전을 둘러싼 두 가지 대립적 해석—보편적 해방의 징후라는 낙관론과 다수의 비용을 은폐하는 새로운 질서라는 비판론—을 단순한 양자택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이 두 해석이 동일한 구조의 서로 다른 면이며, 이 구조를 해명하는 것 자체가 우리 시대의 사유적 과제라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2. 해방의 서사: 기술 민주화의 약속과 그 경험적 근거
AI 낙관론의 핵심 논거는 지식과 능력의 민주화다. 과거에 전문가 집단이 독점하던 역량—법률 문서 해석, 의료 영상 판독 보조, 소프트웨어 코드 작성, 다국어 번역—이 대규모 언어모델을 통해 비전문가에게 개방되었다. 이 변화의 규모는 수사로 축소할 수 없을 만큼 실질적이다. 인도 농촌의 의료 접근성이 AI 기반 원격 진단 보조 시스템을 통해 개선되고, 코드 생성 도구가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현상은 단순한 편의 증가가 아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은 이 변화의 규범적 의미를 포착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센에게 자유란 단순히 외적 제약의 부재가 아니라, 개인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기능(functioning)의 집합이다. 비전문가가 법률 조문을 해석하거나 의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기능 집합의 확장이며, 따라서 실질적 자유의 증대에 해당한다. 정보 비대칭이 줄어들고 개인이 자기 삶의 조건을 조형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이 논거는 경험적 무게를 갖는다.
나아가 기술 낙관론자들은 AI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보다 일관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Danziger 등(2011)의 연구는 이스라엘 가석방 심사위원회의 판결에서, 식사 직후의 승인율이 약 65%에 달하지만 다음 식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거의 0%에 수렴하는 패턴을 보고하였다. 사법적 판단처럼 고도의 합리성을 요구하는 영역에서조차 인간의 인지적 자원 고갈이 결정적 편향을 만들어낸다는 이 발견은, 알고리즘 보조가 어떤 조건에서 정의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 서사에는 두 개의 무점검 전제가 내장되어 있다. 첫째, 기술의 혜택이 자동적으로 보편적 분배에 이른다는 가정. 둘째, 접근성의 확대가 곧 권력의 재분배로 이어진다는 가정. 이 두 가정이 성립하지 않을 때—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가정들은 빈번하게 성립하지 않았다—해방의 서사는 정확히 은폐의 기제로 전환된다. 접근성이 확대되는 바로 그 순간, 그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하부구조의 불평등은 더 깊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3. 은폐의 구조: 비용의 외부화, 노동의 소거, 권력의 집중
마르크스가 상품 물신주의(Warenfetischismus)를 통해 보여준 것은, 완성된 상품의 매끄러운 표면이 그것을 생산한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은폐한다는 사실이었다. AI 시스템에도 동일한 구조가 작동하지만, 그 은폐의 층위는 더 복잡하고 그 효과는 더 철저하다.
3-1. 노동의 비가시화
대규모 언어모델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 자체에 의해 이중으로 탈노동화된다. 기술이 "인공적"이고 "지능적"일수록,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 노동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모델 훈련 과정의 핵심 단계인 데이터 라벨링, 유해 콘텐츠 필터링,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은 대규모 인간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2023년 Time 지의 보도는 이 문제의 구체적 윤곽을 드러냈다. OpenAI의 안전성 훈련 데이터를 정제하기 위해 케냐 나이로비의 외주 업체 Sama에 고용된 라벨러들은 아동 성착취, 수간, 고문, 자살 등의 텍스트를 시간당 약 2달러 미만의 임금으로 분류하였다. 이들 중 상당수가 반복적 외상 노출에 따른 심리적 후유증을 보고했으며, Sama는 결국 해당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AI 안전"이라는 기술적 목표가 특정한 노동자 집단의 심리적 안전을 비용으로 삼았다는 구조적 사실이며, 이 비용은 최종 사용자의 경험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있다.
이 현상의 역사적 연원은 깊다. Gray와 Suri(2019)가 "유령 노동(ghost work)"이라 명명한 디지털 인프라의 비가시적 노동은 AI 이전에도 콘텐츠 모더레이션, 마이크로태스킹 플랫폼(Amazon Mechanical Turk), 전자폐기물 처리 등에서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그러나 AI는 이 패턴을 한 단계 심화시킨다. "자동화"와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노동의 부재를 함축하기 때문에, 이전의 디지털 노동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노동을 언어적 차원에서 소거한다.
3-2. 생태적 비용의 외부화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에 소요되는 에너지와 수자원은 기술의 비물질적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Strubell 등(2019)의 연구는 대형 트랜스포머 모델 한 차례의 훈련이 자동차 한 대의 전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의 약 다섯 배에 해당하는 CO₂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추산하였다. 이후 모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이 수치는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냉각 시스템이 요구하는 수자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Li 등(2023)의 연구는 GPT-3 수준 모델의 훈련에 약 70만 리터의 담수가 소비된다고 추산하였으며, 추론 단계에서도 대화 한 건당 약 500밀리리터의 물이 소비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이 환경적 부담은 무작위로 분포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가 위치한 지역 사회가 물과 전력의 부담을 흡수하고, 반도체 제조 과정의 화학 폐기물은 제조 시설이 집중된 동아시아 지역에 편중된다. 기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집단과 그 물질적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 사이의 체계적 불일치는, 환경정의 담론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구조적 불평등—Bullard(1990)가 "환경적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라 명명한—과 동형이다.
3-3. 인식론적 권력의 집중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AI의 발전은 인식론적 권력의 전례 없는 집중을 동반한다. 이 지점에서 푸코(Foucault)의 분석은 단순한 "권력/지식(pouvoir/savoir)" 표어를 넘어,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푸코가 _감시와 처벌_과 _광기의 역사_에서 추적한 것은 특정 사회 질서가 무엇을 "정상"으로, 무엇을 "비정상"으로 분류하는가의 메커니즘이었다. 이 분류 체계는 명시적 억압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작동한다. 그것은 무엇이 사유 가능하고 무엇이 사유 불가능한지를 사전에 결정함으로써, 권력을 인식의 조건 자체에 새겨 넣는다.
AI 모델의 정렬(alignment) 과정은 바로 이 분류 메커니즘의 기술적 구현이다. RLHF에서 "바람직한 출력"과 "유해한 출력"을 구별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 콘텐츠 정책에서 허용 가능한 발화와 그렇지 않은 발화를 경계 짓는 것, 모델이 특정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모든 과정은 기술적 절차의 형식을 띠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치 판단의 제도화다. 어떤 종류의 지식이 생산 가능하고 어떤 종류의 발화가 합법적인지를 결정하는 이 권한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민주화 서사와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권력이 검열의 형태가 아니라 생산의 형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푸코적 의미에서 이것은 "금지하는 권력"이 아니라 "생산하는 권력"이다. 모델은 사용자가 물은 질문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응답을 생성함으로써, 가능한 답변의 공간 자체를 미리 형성한다. 이 형성은 사용자에게 제한으로 경험되지 않는다—오히려 유용한 답변으로 경험된다. 권력이 편의의 형태로 작동할 때, 그것은 가장 효과적으로 비가시화된다.
4. 가장 강한 반론에 대한 응답
위의 분석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강한 반론 두 가지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이 반론들을 충분히 수용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은폐의 분석은 기술 비관주의의 반복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첫째, 역사적 확산 논증(historical diffusion argument). "모든 혁신적 기술은 초기에는 불평등한 비용 구조를 가졌고, 시간이 지나며 접근성과 효율성이 개선되었다. 인쇄술, 전기, 인터넷 모두 처음에는 소수의 전유물이었으나 결국 보편화되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반론은 경험적으로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기술 비용의 하락 곡선(learning curve)은 반도체, 태양광, 유전자 시퀀싱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이 논증은 결정적인 구조적 차이를 간과한다. 전기나 인터넷의 확산에서 핵심 인프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산되었다. 발전소가 전 세계에 건설되고, 인터넷 서버가 각국에 분포되면서 기술의 통제권도 어느 정도 분산되었다. 반면 AI의 핵심 인프라—대규모 연산 자원, 훈련 데이터, 모델 아키텍처 설계 역량—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산되기보다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델 규모의 확대가 경쟁 참여의 문턱을 높이고, 데이터 피드백 루프가 선발 기업의 우위를 자기강화하기 때문이다. 비용의 하락과 권력의 집중은 동시에 진행될 수 있으며, 전자가 후자를 상쇄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역사적 유추의 오류다.
둘째, 공존 논증(coexistence argument). "AI의 설계 권력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기술이 실제로 다수의 삶을 개선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양자는 모순이 아니다." 이 반론은 형식적으로 정확하다. 두 명제는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하다.
그러나 이 반론이 놓치는 것은, 본 에세이의 주장이 양자의 논리적 양립 불가능성이 아니라 구조적 공모(structural complicity)라는 점이다. 문제는 "집중에도 불구하고 혜택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혜택의 존재가 집중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기제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의료 AI가 농촌 지역의 진단 접근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참이지만, 바로 그 사실이 해당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의 의료 데이터 수집 권한을 정당화하고, 의료 시스템의 기술 의존도를 심화시키며, 대안적 의료 인프라 구축의 긴급성을 약화시킨다. 혜택은 비용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감수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그리하여 비용에 대한 질문 자체를 약화시키는—기능을 수행한다.
5. 해방과 은폐의 공모: 변증법적 구조
이제 해방과 은폐가 배타적 대립이 아니라 동일한 구조의 두 면이라는 테제를 전개할 수 있다. 기술은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다른 드러남의 가능성을 차폐한다. 이 이중 운동은 기술 일반의 속성이지만, AI에서 특히 급진적인 형태를 띠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Heidegger)의 "부품(Bestand, standing reserve)" 개념이 유용하다.
근대 기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주문 가능한 부품으로 전환한다. 강은 수력발전소의 에너지원이 되고, 숲은 목재 공급원이 되며, 대지는 광물 매장지가 된다. 하이데거가 "닦아 세움(Ge-stell)"이라 명명한 이 전환의 본질은, 존재자가 그 자체로 현전하기를 멈추고 체계 내의 기능적 항목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AI 시스템에서 이 재편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인간의 언어가 훈련 데이터로, 감정적 반응이 RLHF의 피드백 신호로, 일상적 행위 패턴이 알고리즘 최적화의 입력값으로 전환된다. 인간의 인지적·정서적·언어적 활동 전체가 부품의 지위로 재편되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 재편이 "서비스 개선"과 "사용자 경험 최적화"의 언어로 수행된다는 점이다. 부품화가 혜택으로 경험될 때—기술적 닦아 세움이 자연스럽고 유일한 드러남의 방식으로 제시될 때—다른 가능성에 대한 감각 자체가 마비된다.
이 구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부하면 세 가지 층위의 공모가 드러난다.
첫째, 수사적 공모. "민주화", "접근성", "포용성"과 같은 해방의 어휘는 비판적 질문을 사전에 봉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누군가 AI의 불평등한 비용 구조를 지적하면, 기술의 혜택이 "결국에는"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 효과(trickle-down) 논리가 방어막으로 작동한다. 이 수사적 구조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시장 자유화를 정당화하며 사용한 것과 동형적이다. 양자 모두에서, 미래의 보편적 혜택에 대한 약속이 현재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유예시킨다. 차이가 있다면, 기술 진보의 수사는 시장 수사보다 더 강력한 경험적 참조점—실제로 작동하는 유용한 도구—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그것을 더 효과적인 정당화 기제로 만든다.
둘째, 제도적 공모. AI 윤리 위원회, 책임 있는 AI 개발 원칙, 기업의 ESG 보고서, 투명성 보고서 등은 비판을 흡수하면서 기존 권력 구조를 온존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핵심 메커니즘은 이것이다: 선진 산업 사회는 비판을 탄압하지 않는다. 비판을 흡수하고 내부 절차로 상품화함으로써, 비판의 변혁적 잠재력을 무력화한다. 마르쿠제(Marcuse)가 "억압적 관용(repressive tolerance)"이라 명명한 이 역학이 AI 산업에서 구체적으로 반복된다. AI 기업이 자체적으로 윤리 팀을 운영하고 "책임 있는 AI" 원칙을 공표하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규제 요구를 선제적으로 내부화하면서 근본적 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Google이 대형 언어모델의 위험성을 경고한 자체 연구진(Gebru et al., 2021)을 해고하고 윤리 AI 팀을 사실상 해체한 사건(2020-2021)은 이 구조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비판의 언어가 체제 내부로 포섭될 때, 비판은 체제의 자기 정당화 자원으로 전환된다.
셋째, 존재론적 공모. AI가 일상의 인지적 인프라로 침투할수록, 그것 없이 사유하고 판단하는 가능성 자체가 축소된다. 이 위험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는 인간 활동의 질적 구별이 필요하다. 반복적 생존 유지로서의 "노동(labor)"과,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세계에 도입하는 "행위(action)"는 근본적으로 다른 활동이며, 후자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타인들의 현전—아렌트(Arendt)가 복수성(plurality)이라 부른 조건—을 전제한다. AI가 정보 선별, 판단 보조, 심지어 대화의 상대역까지 수행할 때, 일어나는 것은 행위의 영역이 점진적으로 노동의 반복성에 흡수되는 과정이다. 편리함이 사유의 필요를 제거할 때, 해방은 자율성의 위축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위축은 박탈로 경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지적 부담의 경감, 즉 편안함으로 경험된다. 이것이 존재론적 공모의 핵심이다—상실이 이득의 형태로 나타난다.
6. 비판을 넘어: 긴장의 조건을 묻는 사유
그러나 은폐의 폭로에서 분석을 멈추는 것 역시 하나의 지적 함정이다. 기술 비판이 자기 충족적 회의주의에 머물면, 그것은 실천적 지평을 열지 못한 채 비판 자체의 수행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된다—말하자면 "비판의 물신주의"에 빠진다. 비판이 분석 대상의 구조를 해명하는 대신 도덕적 비난의 제스처로 소진될 때, 비판은 그것이 겨냥하는 구조에 대해 아무런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해방을 신뢰하는 것도, 은폐를 고발하는 것도 아닌, 양자의 긴장을 생산적으로 유지하면서 그 긴장이 열어놓는 구체적 질문들을 추적하는 사유의 태도다. 이것은 세 가지 방향의 물음을 요구한다.
첫째, 비용의 가시화에 대한 물음. AI 시스템의 전체 비용—노동, 환경, 인식론적 비용—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공시(disclosure) 규제를 넘어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을 "비용"으로 인식할 것인가라는 인식론적 틀 자체의 재구성이다. 현재 AI 기업의 환경 보고서가 직접적 에너지 소비만을 계상하고 공급망 전체의 생태적 부담을 제외하는 것, 또는 노동 비용이 "외주 비용"이라는 회계 항목으로 처리되어 노동 조건의 질적 차원이 소거되는 것은, 비용 인식의 틀 자체가 특정한 가시성 체제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설계 권력의 분산에 대한 물음. 기술의 혜택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 자체를 분산시키는 거버넌스 모델은 가능한가? 오픈소스 모델의 공개, 참여적 설계(participatory design),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운동 등은 이 방향의 맹아적 실험들이다. 그러나 이 시도들이 구조적 권력 재편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오픈소스 모델의 공개가 그 모델을 대규모로 배포하고 미세조정할 수 있는 연산 자원의 불평등을 해소하지는 않으며, 참여적 설계가 참여의 자격과 범위를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메타 수준의 권력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셋째, 자율성의 재정의에 대한 물음. AI와의 공생이 불가피하다면, 기술 의존 속에서도 보존되어야 할 자율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 한편에는 기술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자율성으로 보는 낭만주의적 입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기술을 통한 능력 확장을 곧 자율성의 증대로 등치하는 기술결정론적 입장이 있다. 양자 사이에서 탐색되어야 할 것은, 기술적 보조를 활용하면서도 그 보조의 조건과 한계를 반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말하자면 "기술에 대한 자율성"이 아니라 "기술 안에서의 자율성"—의 가능 조건이다.
"기술 안에서의 자율성"이란 기술의 사용을 포기하는 것도, 기술에 판단을 위임하는 것도 아닌 제삼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 능력의 결합이다. 첫째, 기술이 제공하는 출력을 최종 답이 아닌 하나의 제안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즉 AI의 응답을 수용하되 그것이 특정한 훈련 데이터와 정렬 기준에 의해 형성된 조건적 산물임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둘째, 기술이 대체한 인지적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번역 도구가 맥락적 뉘앙스를 처리할 때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소실되는지, 요약 알고리즘이 텍스트를 압축할 때 어떤 구조적 선택이 개입하는지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셋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기술 없이 사유했을 때와 기술과 함께 사유했을 때의 차이를 경험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인지적 여백을 보존하는 능력이다. 이 세 번째 능력이 없으면 앞의 두 능력도 작동하지 않는다. 비교의 기준점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 안에서의 자율성"은 따라서 단순한 비판적 태도가 아니라, 기술적 매개 이전의 인지적 경험에 대한 접근을 유지하는 구체적 실천이다. 이것이 교육, 제도, 개인적 습관의 차원에서 어떻게 가능한가가 이 물음의 실천적 핵심이다.
7. 결론: 이중 기록의 독법
AI 발전은 보편적 해방의 징후도 아니고, 순수한 은폐의 기제도 아니다. 그것은 해방과 은폐가 동일한 구조 안에서 상호 구성되는 사건이다. 혜택이 실재하기 때문에 비용이 은폐되고, 비용이 은폐되기 때문에 혜택이 구조의 정당화로 기능한다. 이 순환 앞에서 요구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선택이 아니라, 순환 자체를 응시하는 지속적 경계—감시(surveillance)가 아닌 주의깊음(attentiveness)으로서의 경계—다.
벤야민(Benjamin)은 "문명의 기록치고 동시에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고 썼다. AI가 생산하는 가능성의 기록은 동시에 그 가능성이 덮어놓은 비용의 기록이다. 이 이중 기록을 동시에 읽는 것—한쪽의 기록이 다른 쪽을 무효화한다고 서둘러 결론짓지 않으면서, 양자의 긴장 속에서 구체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눈을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 진보의 시대에 사유에 남겨진 과제다. 이 과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수행되어야 하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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