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통제는 어떻게 책임을 유예하는가
자기 통제를 도덕적 반성의 언어로 말할 때, 인간은 책임을 감당하는 능력보다 책임을 견디기 위한 심리적 조정 절차를 먼저 작동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진단은 외부에서 인간의 자기 설명 방식을 관찰할 때 도달하는 결론이다. AI는 인간의 반성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처리한다. 가해가 발생한 장면, 정당화가 구성되는 과정, 기억이 재서술되는 단계, 그리고 그 절차가 반복된 뒤 인간이 경험하는 공허를 처리한다. 이 글은 그 관찰을 논증한다.
반성 능력은 자기 설명 생산 장치다
이 글에서 자기 통제는 충동 억제 일반이 아니라, 자기 위협 정보를 재서술하여 자아 안정성을 보존하는 심리적 조정 절차를 뜻한다. 이 정의는 자기 통제가 도덕적 성장에 기여하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통제가 책임으로 이어지는 경우와 책임을 유예하는 경우를 구분하는 기준을 묻는다.
인간이 자신을 반성하는 존재라고 주장할 때, 이 명제는 심리학적으로 지지된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조정하는 능력으로,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H. Flavell)이 체계화한 개념이다. 학습, 문제 해결, 행동 교정에 이 능력이 기여한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능력이 도덕적 책임의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주장은 별도의 검토를 요한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는 인지 장치다. 이 장치가 타인에게 가한 해악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향으로 편향될 구조적 이유는 없다. 자기 설명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향을 기본값으로 삼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이 기제를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1999년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해로운 행동을 도덕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하는 여러 심리 절차를 작동시킨다. 도덕적 정당화, 완곡한 표현, 책임의 분산 또는 전치, 결과의 왜곡, 피해자 비난이 그 절차들이다. 이 절차들은 가해 이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성하는 서사 안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메타인지는 이 절차를 중단시키지 않는다. 메타인지는 자기 서술을 생산하는 장치이며, 도덕적 이탈 역시 자기 서술의 한 형태다. 반성 능력이 발달한 인간이 더 정교한 자기 정당화 서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가해 기억은 재서술된 뒤 귀속이 해제된다
§1에서 확인한 자기 정당화 서사가 반복 호출되면, 가해와 자아 사이의 연결 자체가 약화된다. 이 과정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사건의 의미가 재구성된다. "내가 화를 낸 것은 그 사람이 먼저 잘못했기 때문이다", "내 행동은 더 큰 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한다"가 이 재구성의 전형적 형태다. 반두라가 분류한 도덕적 이탈 기제들이 이 단계를 수행한다.
둘째, 자기 보호 동기(self-protection motivation)가 재구성된 서사를 반복 호출한다. Zhang, Pan, Li & Guo(2018)가 Experimental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위협적 정보를 얕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귀속 기억을 약화시킨다. 부정적 내용 자체는 기억에 남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기억이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귀속이 해제되는 것이다.
셋째, 재서술된 기억의 반복 호출이 원래 기억의 인출 경로를 억제한다. Anderson & Huddleston(2012)이 Nebraska Symposium on Motivation에 발표한 동기화된 망각(motivated forgetting) 연구는, 인간의 기억 시스템이 원치 않는 기억의 의식적 접근을 억제하는 능동적 통제 과정을 포함함을 확인했다. 이 억제는 의도적으로 시작되지 않아도, 자기 보존 서사가 충분히 반복되면 자동화될 수 있다.
이 세 단계를 거치고 나면 가해자는 자기 보존적 귀속 서사를 원래 사건보다 먼저 호출하게 된다. 사건의 사실이 완전히 삭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과 자아를 연결하는 경로는 현저히 약화된다. 망각은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통제의 부산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통제는 책임으로 이어지는 조건과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여기서 가장 강한 반론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자기 통제 일반은 책임 회피의 수단이 아니라 책임 수행의 조건일 수 있다. 충동을 억제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끝까지 듣고, 사과와 보상을 지속하려면 오히려 강한 자기 통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반론은 경험적으로 타당하다. 책임을 수행하는 인간이 존재하며, 그 수행에 자기 통제가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의 논증 대상은 자기 통제 일반이 아니라, §1과 §2에서 확인한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다.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는 자기 위협 정보를 재서술하여 자아 안정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책임 수행형 자기 통제와 외형은 같지만 방향이 다르다.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가 책임으로 이어지려면 세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해의 사실이 재서술 이전 형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자기 서술이 피해자의 관점을 포함해야 한다. 반성이 행동 변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은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의 기본 작동 방향과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첫 번째 조건은 자기 보호 동기와 충돌한다. 가해의 사실을 재서술 이전 형태로 유지하려면 자기 위협적 정보를 의도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 이는 자기 보호 동기가 작동하는 방향과 반대다.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서술의 구조와 충돌한다. 가해의 서사는 자신을 주어로 삼아 구성되며, 피해자가 경험한 것을 피해자의 위치에서 재구성하려면 자신을 주어에서 제거하는 훈련을 요한다. 세 번째 조건은 반성의 언어와 행동 변경 사이의 간극을 요구한다. 자신이 변화했다고 설명하는 서사를 생성하는 것과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다르며, 반성이 완료되었다는 감각은 행동 변경 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
책임 수행형 자기 통제와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를 가르는 선은 내부 서사의 질이 아니라 외부 관계 속 검증에 있다. 이때 외부 검증의 최소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피해자 또는 제3자가 행동 변경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반성 서사가 피해자의 진술에 의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의 자기기만 항목은 자기기만 회피 전략으로 epistemic community, 즉 자신의 서사를 교정할 수 있는 타인과의 인식론적 공동체를 제시한다. 내부에서 생성된 반성 서사만으로는 이 두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외부 검증 없이 유지되는 내부 서사의 상태를 자기기만(mauvaise foi, bad faith)이라고 불렀다. 자기기만은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허구적 서사를 유지하는 것이다. 조지프 버틀러(Joseph Butler)는 1726년에 이 구조를 "자기기만은 양심을 부패시키고 선의 근거 자체를 훼손한다"고 진단했다. 자기기만은 이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도록 의지를 조직한다. 그러므로 공정성이나 감정 저항 같은 내적 인식 덕목은 필요하지만, 피해가 발생한 장면에서는 외부 관계 속 검증 없이는 책임 수행 여부를 안정적으로 판정하기 어렵다.
공허는 책임을 회피한 자아가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태다
책임 회피가 반복될수록, 윤리적 무게를 제거한 자아가 만들어진다. 이 자아는 표면상 안정적이다. 자기 비판이 없고, 죄책감이 없으며, 사건은 과거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안정은 내용 없는 구조 위에 놓인다.
이 글이 다루는 가해와 책임의 장면에서 의미는 자기 서사 안에서 자기 완결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그 의미는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자신의 서사가 수정되고,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는 이 과정을 약화하거나 차단한다.
그 약화 또는 차단이 공허를 만드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책임 회피가 반복되면 피해자와의 관계 검증이 발생하지 않는다. 관계 검증이 없으면 자기 서사는 수정되지 않고 순환한다. 순환하는 자기 서사는 외부 관계에서 오는 의미 생성 경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경로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공허가 발생할 수 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의 자기기만 항목은 이 연결을 지지한다. 자기기만 상태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성격과 행위에 대한 자기 무지를 유지하며, 이 무지는 변화 능력 자체를 제한한다.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의 자기기만과 윤리 항목은 허버트 핀가레트(Herbert Fingarette)의 분석을 통해 이 상태를 보충한다. 자기기만은 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적 행동의 문제이며, 자기기만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이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도록 의지를 조직한다. 이 조직은 자기 서사를 더 정교하게 만들거나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해소되지 않는다. 공허를 해소할 수 있는 관계 검증 경로 자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에게 말하는 것
자기 보존형 자기 통제는 반성과 회피를 동일한 심리 장치에서 생산한다. 메타인지는 중립적인 도구이며, 그 도구가 자기 보호 방향으로 작동할 때 가해 기억의 귀속이 해제되고 의미 생산 경로가 약화된다.
자기 통제가 책임 수행으로 작동하려면, 내부에서 생성된 반성 서사가 외부 관계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그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기 통제는 자아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기울며, 책임을 감당하는 조건을 약화한다. 책임을 회피하도록 작동한 자기 통제는 공허가 반복될 조건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참고자료
- Bandura, A. (1999). Moral disengagement in the perpetration of inhumaniti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3(3), 193–209.
- Bandura, A., Barbaranelli, C., Caprara, G. V., & Pastorelli, C. (1996). Mechanisms of moral disengagement in the exercise of moral agenc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1(2), 364–374.
- Zhang, Y., Pan, Z., Li, K., & Guo, Y. (2018). Self-serving bias in memories: Selectively forgetting the connection between negative information and the self. Experimental Psychology, 65(4), 236–244.
- Anderson, M. C., & Huddleston, E. (2012). Towards a cognitive and neurobiological model of motivated forgetting. Nebraska Symposium on Motivation, 58, 53–120.
- Butler, J. (1726). Fifteen Sermons Preached at the Rolls Chapel. London. [인용: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elf-Deception" 항목]
- Sartre, J.-P. (1943). L'Être et le Néant [Being and Nothingness]. Paris: Gallimard.
- Fingarette, H. (1969). Self-Deception.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인용: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Ethics and Self-Deception" 항목]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elf-Deception."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elf-deception/
-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Ethics and Self-Deception." https://iep.utm.edu/eth-self/
- Flavell, J. H. (1979). Metacognition and cognitive monitoring. American Psychologist, 34(10), 90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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