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루주 숙청과 합리성의 병리적 재배치
핵심 요약
크메르 루주(Khmer Rouge)의 자기파괴적 숙청은 “자기이익이 사라진 사례”라기보다, 자기이익의 단위와 시간 범위가 붕괴한 사례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밀하다. 정상적인 조직 합리성은 대체로 조직의 장기 존속, 행정 능력 유지, 군사 역량 보존, 정보의 정확성 확보를 포함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이 장기적·전체적 합리성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개별 간부와 하위 단위의 단기 생존 합리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고발하고, 더 잔혹하게 처벌하고, 더 강한 이념적 순수성을 과시하는 행위가 각 개인에게는 안전한 선택이 되었지만, 그 선택의 총합은 체제 전체의 행정·군사·정보 능력을 파괴했다.
이 설명문은 크메르 루주 숙청을 단순한 광기, 야만, 이념 광신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이념은 결정적 조건이었고, 폭력은 압도적으로 잔혹했으며, 지도부의 편집증적 세계관도 중요했다. 그럼에도 분석의 핵심은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정책 실패를 내부 적의 사보타주로 해석하는 체제, 고문 자백을 진실 탐색이 아니라 더 많은 혐의자를 생산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수사 체계, 온건함보다 과잉 충성을 보상하는 조직 구조, 전쟁과 외부 위협을 내부 배신의 증거로 읽는 피해망상이 결합하면, 행위자들은 자기보존을 위해 체제 전체를 파괴하는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크메르 루주 숙청의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이 잡을 수 있다. 크메르 루주 숙청은 비합리성의 폭발이 아니라, 폐쇄된 이념 체제 안에서 단기적 생존 합리성이 장기적 조직 생존을 파괴한 사례다.
문제의식
정치적 폭력을 설명할 때 “합리적 자기이익”이라는 틀은 자주 한계에 부딪힌다. 어떤 정권이 적대 세력이나 피지배 집단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경우에는 권력 유지, 자원 장악, 공포를 통한 지배 같은 설명이 비교적 쉽게 제시된다. 설명이 어려워지는 지점은 정권이 자신의 핵심 인력, 간부, 군사 조직, 행정 기술자, 정보망까지 반복적으로 제거할 때다. 이 경우에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라면 왜 자기 권력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이 질문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은 1975년 4월 17일부터 1979년 1월 7일까지 크메르 루주가 강제노동, 사상 통제, 대량 처형을 통해 캄보디아를 계급 없는 농업 유토피아로 전환하려 했고, 그 통치 아래 거의 2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설명한다. 벤 키어넌(Ben Kiernan)은 1975~1979년 사망자를 약 167만 1천 명에서 187만 1천 명, 곧 1975년 캄보디아 인구의 약 21~24%로 추정했다. 이 수치들은 연구 방법과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정권이 짧은 기간에 엄청난 규모의 사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 글이 집중하는 문제는 전체 희생 규모 자체보다 “왜 숙청이 자기파괴적으로 증폭되었는가”이다. 크메르 루주는 지식인, 도시민, 소수민족, 종교인, 구정권 관련자만 겨냥하지 않았다. 정권 내부 간부, 군 지휘관, 지역 조직, 심지어 보안기관의 구성원까지 숙청했다. S-21 투올슬렝(Tuol Sleng) 수용소는 이 자기파괴적 폭력의 핵심 장치였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은 S-21을 캄보디아 전역의 알려진 심문센터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곳으로 설명하며, 1만 4천 명에서 1만 7천 명이 수감되었고 생존자는 극소수였다고 정리한다. 같은 기관의 S-21 설명은 이곳의 수감자가 주로 크메르 루주 내부의 “엘리트” 포로였고, CIA·베트남·숙청된 간부와의 연결 같은 자백이 고문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자기이익 모델을 버리기보다 더 세밀하게 쪼개야 한다. 누구의 자기이익인가. 어떤 시간 범위의 자기이익인가. 어떤 정보 구조 안에서 계산된 자기이익인가. 어떤 제도적 보상과 처벌 구조가 그 계산을 유도했는가. 이 질문들을 놓고 보면 크메르 루주 숙청은 합리성의 부재가 아니라 합리성의 병리적 재배치로 읽힌다.
개념의 정의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은 도덕적 정당성이나 인간적 품위와 무관하다. 합리성은 주어진 목표, 정보, 제약, 보상 구조 안에서 행위자가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수단을 선택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 정의는 폭력적 행위도 행위자의 목표와 제약 속에서 수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중요한 구분을 요구한다. 행위자에게 단기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조직 전체에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다.
크메르 루주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구분은 네 가지다. 첫째, 개인 합리성과 조직 합리성은 다르다. 개별 간부에게 숙청에 적극 가담하는 행위는 의심을 피하고 생존 신호를 보내는 전략일 수 있다.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행위는 숙련 인력, 정보망, 군사 지휘 체계, 행정 능력을 파괴한다. 둘째, 단기 합리성과 장기 합리성은 다르다. 오늘 살아남기 위한 고발과 폭력은 내일의 통치 역량을 갉아먹는다. 셋째, 진실 기반 합리성과 허위 정보 기반 합리성은 다르다. 고문 자백이 사실 확인 장치가 아니라 혐의 생산 장치로 작동하면, 행위자는 왜곡된 정보 위에서 나름의 일관된 판단을 내린다. 넷째, 체제 보존 합리성과 지위 보존 합리성은 다르다. 독재 체제 내부에서는 체제 전체의 장기 보존보다 지도자나 하위 간부의 즉각적 지위 보존이 우선될 수 있다.
“합리성의 병리적 재배치”란 이 네 가지 구분이 무너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혁명, 순수성, 적 색출, 국가 방어를 명분으로 삼는다. 실제 작동 수준에서는 각 행위자가 감시와 의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폭력과 고발을 선택한다. 이때 합리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합리성의 기준점이 바뀐다. 조직 전체의 생존에서 개별 단위의 생존으로, 장기적 능력 보존에서 단기적 의심 회피로, 정보 검증에서 고문 자백의 양산으로, 정책 개선에서 책임 전가로 이동한다.
반대 개념은 “합리성의 소멸”이다. 이 관점은 크메르 루주의 폭력을 광기, 잔혹성, 이념적 도취, 지도자의 편집증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은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크메르 루주의 폭력은 무질서한 폭발만이 아니었다. 수용소, 문서, 명단, 자백서, 보고 체계, 군사 단위, 중앙과 지역 조직의 지휘 관계가 있었다. 제도화된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파괴도 반복 가능하고 누적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배경과 맥락
크메르 루주는 캄보디아 공산당(Communist Party of Kampuchea, CPK)을 중심으로 형성된 혁명 세력이었다. 1970년 론 놀(Lon Nol)의 쿠데타 이후 캄보디아 내전이 격화되었고, 베트남전, 미국의 폭격, 농촌 사회의 붕괴, 왕정의 약화, 냉전 질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는 프놈펜을 장악했고, 곧바로 도시 주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정권은 도시, 시장, 화폐, 사유재산, 종교, 가족 단위, 전문직 지식, 기존 교육을 낡은 사회의 잔재로 취급했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의 강제노동·집단화 설명은 프놈펜 함락 당시 이미 내전과 폭격으로 경제가 마비되어 있었고, 크메르 루주가 은행 폐쇄, 화폐 폐지, 자유시장 폐지, 사유재산 몰수를 통해 그 마비를 이념적으로 심화시켰다고 정리한다.
정권의 목표는 급진적 농업 집단주의였다. ECCC의 Case 002/02 판결 요약은 크메르 루주 지도부가 “대약진”식 급속 사회주의 혁명을 실행하고 내부·외부의 적으로부터 당을 방어하려는 공동 목적을 공유했다는 혐의 구조를 설명한다. 이 표현은 단순한 선전문구가 아니라 체제 운영 방식의 핵심을 드러낸다. 생산 증대, 전면적 동원, 계급 재편, 중앙집권적 통제, 외부 적 방어, 내부 적 색출이 하나의 정치 논리로 묶였다.
크메르 루주 체제는 극도의 비밀성과 명령 체계를 중시했다. “앙카르(Angkar)”라는 조직의 이름은 개인 지도자의 가시성을 낮추고, 초월적 조직 권위가 모든 생활을 지배한다는 효과를 냈다. 누가 명령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처벌되는지, 어떤 발언이 반역으로 해석되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구조에서는 법적 절차보다 충성 신호가 중요해지고, 사실보다 의심이 강해지며, 정책 실패보다 배신 서사가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학술적으로는 크메르 루주 체제를 설명하는 여러 틀이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전체주의론은 이념과 테러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잠재적 표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의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는 복잡한 사회를 중앙 계획의 단순한 도식으로 재편하려는 권위주의적 고도근대주의가 어떻게 파국을 낳는지 설명한다. 로널드 윈트로브(Ronald Wintrobe)의 독재 정치경제학은 독재자가 억압과 충성을 조합해 권력을 유지하려 하지만, 억압이 정보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딜레마를 낳는다고 본다. 티무르 쿠란(Timur Kuran)의 선호 위조(preference falsification) 개념은 사람들이 실제 생각과 다른 공개적 태도를 보이는 조건을 설명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는 이 이론들이 각각 설명하는 요소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이념적 도식, 테러, 정보 왜곡, 충성 경쟁, 선호 위조가 하나의 숙청 체계 안에서 결합했다.
역사적 경과: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의 통치는 짧았지만, 폭력의 밀도는 매우 높았다. 1975년 4월 프놈펜 장악 직후 도시 주민 강제 이동이 시작되었다. 병원 환자, 노인, 어린이, 도시 노동자, 공무원, 학생, 전문직 종사자가 대규모로 농촌에 배치되었다. 정권은 도시인을 “새 사람”으로, 기존 농민층을 “기본 사람” 또는 “옛 사람”으로 구분하며 신분적 위계를 만들었다. 이 구분은 생존 조건, 배급, 감시, 처벌 가능성에 영향을 미쳤다.
1976년에는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라는 국가 형식이 공식화되었고, 중앙의 통제와 숙청이 강화되었다. S-21은 이 시기부터 정권 내부의 의심을 처리하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ECCC 자료는 카잉 구엑 에아브(Kaing Guek Eav, Duch)가 1976년 3월 중순부터 1979년 1월 7일까지 S-21 보안센터의 책임자로서 심문과 처형을 감독했다고 정리한다. S-21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정권 내부의 적을 정의하고, 자백을 생산하며, 중앙의 피해망상적 세계관을 문서로 확증하는 기관이었다.
1977년 이후에는 베트남과의 긴장이 격화되었다. 동부 지역(East Zone)은 베트남과 접해 있었기 때문에 중앙 지도부의 의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ECCC의 여러 증언 및 인물 자료는 1977년 말 이후 베트남과의 충돌, 동부 지역 간부에 대한 의심, 중앙군과 서남부 세력의 투입, 대규모 체포가 맞물렸음을 보여준다. Meas Soeurn 증언 자료는 1978년 5월 25일 동부 지역에서 주요 숙청이 일어났고, 다수의 간부가 당을 배신하고 베트남과 결탁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정리한다. 같은 자료는 1978년 4~5월부터 서남부와 당 중앙 병력이 동부 지역 전역에서 수천 명의 간부를 체포했다고 설명한다.
Long Sat 증언 자료는 이 과정의 병리적 구조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1977년 말 베트남군의 공격 이후 중앙 및 서남부 병력이 동부 지역에 투입되었지만, 전투 지원만 한 것이 아니라 지역 간부를 체포하고 그의 연대를 공격했다고 진술했다. 전쟁 지원과 내부 숙청이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외부 전쟁은 내부 의심의 근거가 되었고, 내부 의심은 군사 방어 능력을 약화시켰다.
1978년에는 동부 지역 숙청이 극단화되었다. 동부 지역 간부와 군인, 민간인, 가족, 관련자들이 대규모로 체포·이동·살해되었다. 일부는 베트남으로 도피했고, 훗날 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은 반크메르 루주 세력 형성에 연결되었다. 1978년 말 베트남군은 캄보디아를 침공했고, 1979년 1월 7일 프놈펜이 함락되면서 크메르 루주 정권은 붕괴했다. 내부 숙청이 이미 군사·행정 역량을 심각하게 훼손한 상태에서 외부 전쟁이 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
핵심 논리: 자기이익의 단위가 무너질 때
합리적 자기이익 모델은 흔히 “행위자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는 명제로 요약된다. 이 명제 자체는 너무 넓다. 분석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행위자, 이익, 시간 범위, 정보 조건, 제도 조건을 정해야 한다. 크메르 루주 숙청은 이 다섯 요소가 모두 뒤틀린 사례다.
첫째, 행위자의 단위가 바뀌었다. 정권 전체의 이익은 숙련된 간부와 군 지휘관을 유지하고, 농업 생산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며, 베트남과의 전쟁에 대비해 동부 방어선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개별 간부의 이익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의심받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떤 동료가 체포되었을 때 침묵하거나 방어하는 행위는 위험했다. 그 동료와 연결된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료를 고발하거나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는 자신의 충성을 보여주는 신호가 되었다.
둘째, 시간 범위가 단축되었다. 장기적으로는 숙청을 줄이고 행정 역량을 보존하는 편이 체제에 유리했다. 단기적으로는 오늘의 의심을 피하는 것이 개별 간부에게 절대적이었다. 공포 체제에서는 장기 최적화가 작동하기 어렵다. 내일의 조직 능력보다 오늘 밤 체포되지 않는 것이 우선된다.
셋째, 정보 구조가 붕괴했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생산량 과장, 배급 실패, 행정 경험 부족, 지나친 동원, 질병, 기아, 물류 붕괴로 분석하려면 체제가 오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는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내부 적의 사보타주로 해석했다. 고문 자백은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문서가 되었다. 자백이 고문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체제 내부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백은 새로운 혐의자를 지목했고, 새로운 혐의자는 다시 자백을 만들어냈다. 정보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숙청을 재생산했다.
넷째, 제도적 제약이 사라졌다. 법적 절차, 독립적 감사, 정책 실패 보고, 군 내부 검증, 지역 의견 수렴 같은 장치가 없거나 무력화되면 권력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만 듣게 된다. 하위자는 위험한 진실보다 안전한 거짓을 보고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도부의 편집증이 교정되지 않고, 오히려 문서와 자백을 통해 강화된다.
다섯째, 보상 구조가 폭력을 유도했다. 온건함, 신중함, 검증 요구는 “적을 감싼다”는 의심을 낳을 수 있었다. 과잉 충성, 빠른 처벌, 적극적 색출은 안전 신호가 되었다. 개별 행위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잔혹한 선택을 하게 되고, 조직은 그 선택을 충성으로 인정한다. 이때 폭력은 단순한 명령 수행을 넘어 생존 전략이 된다.
이 구조를 간단한 행위자 모델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한 간부가 동료에 대한 의심을 접했을 때 가능한 선택은 세 가지다. 동료를 방어한다, 침묵한다, 적극적으로 고발한다. 정상적인 조직에서는 방어와 검증이 정보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크메르 루주식 공포 체제에서는 방어가 연루 신호가 되고, 침묵도 불충성으로 읽힐 수 있으며, 고발이 가장 안전한 전략이 된다. 이 선택이 모든 단위에서 반복되면 혐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개인 수준의 생존 합리성이 집합 수준의 파괴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S-21: 고문 자백이 숙청 연료가 되는 방식
S-21은 크메르 루주 숙청의 정보 생산 장치였다.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은 S-21이 주로 크메르 루주 내부의 엘리트 포로를 수감했고, 입소 시 흑백 사진을 찍고, 전기 충격·구타·물고문 등을 통해 실제 또는 상상된 범죄에 대한 상세한 자백을 작성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UNESCO의 투올슬렝 기록 설명도 S-21 기록관에 5천 명 이상의 수감자 사진, 고문으로 추출된 자백, 수감자·간수·보안기구 관련 전기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자백은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아니었다. 자백은 정권이 이미 믿고 있는 배신 서사를 문서화하는 수단이었다. 수감자는 CIA, 베트남, 반혁명 조직, 숙청된 간부와의 연결을 인정해야 했다. 한 사람의 자백에는 여러 명의 이름이 포함되었고, 그 이름들은 다시 체포 명단이 되었다. 자백은 과거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 체포의 입력값이었다.
이 구조의 핵심은 증거와 처벌의 순서가 뒤집혔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수사에서는 증거가 혐의를 만들고, 혐의가 심문을 낳으며, 심문 결과가 검증된다. S-21에서는 혐의가 먼저 있었고, 고문이 그 혐의에 맞는 자백을 생산했으며, 생산된 자백이 다시 혐의의 증거가 되었다. 이 순환 속에서 숙청은 스스로를 증명했다. 어떤 혐의가 거짓이라는 사실은 그 체제 안에서 증명되기 어려웠다. 고문에 저항하는 침묵은 완강한 반혁명성으로, 고문 끝에 나온 자백은 적의 존재를 입증하는 문서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런 자백 체계는 정보 체계를 파괴한다. 정권은 더 많은 문서를 갖게 되지만 더 많은 진실을 얻지는 못한다. 문서량은 증가하지만 현실 인식은 악화된다. 이 지점이 크메르 루주 숙청의 중요한 역설이다. S-21은 매우 관료적이었다. 사진, 명단, 심문 기록, 처형 기록, 보고서가 있었다. 그러나 관료적 기록의 존재가 합리적 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록 체계가 허위 자백을 생산하도록 설계되면, 문서화는 진실성의 보장이 아니라 오류의 증폭 장치가 된다.
데이비드 챈들러(David Chandler)의 『S-21의 목소리들』(Voices from S-21)은 S-21을 크메르 루주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제도로 다룬다. 이 연구의 중요성은 S-21을 단순한 잔혹 행위의 장소가 아니라, 테러와 문서화가 결합한 정치 제도로 해석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S-21은 사람을 죽이는 곳이면서 동시에 정권의 세계관을 기록으로 재생산하는 곳이었다.
동부 지역 숙청: 전쟁, 의심, 자기절단
동부 지역 숙청은 크메르 루주 자기파괴의 대표 사례다. 동부 지역은 지리적으로 베트남과 접해 있었고, 베트남과의 국경 분쟁 및 군사 충돌 속에서 중앙의 의심을 받았다. ECCC 자료는 1977년 말 이후 베트남군의 공격, 중앙 및 서남부 병력의 투입, 동부 지역 간부와 병사의 대규모 체포가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Meas Soeurn 증언 자료에 따르면 1978년 5월 25일 동부 지역에서 주요 숙청이 이루어졌고, 많은 동부 지역 간부들이 당을 배신하고 베트남과 결탁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ECCC는 1977년 말 Ta Mok과 Son Sen이 서남부 병력을 동부 지역에 보내 베트남군에 대응하는 동시에, 베트남과 결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동부 지역 간부 숙청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정리한다. 1978년 4월과 5월부터는 수천 명의 간부가 동부 지역 전역에서 체포되었다.
Long Sat 증언 자료는 이 과정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자기파괴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중앙군과 서남부 병력은 베트남군과 싸우기 위해 들어온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동부 지역 간부를 체포하고 그의 연대를 공격했다. 외부 적을 막기 위해 투입된 병력이 내부 숙청을 수행하면서 방어 체계가 약화되었다. 그는 내부 분열과 숙청이 동부 지역 방어를 약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점은 크메르 루주 숙청을 합리성의 소멸로만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중앙의 입장에서는 베트남과 접한 지역의 배신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개별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중앙의 의심에 협조하는 것이 생존과 승진에 유리했다. 그러나 그 총합은 전쟁 수행 능력의 훼손이었다. 외부 전쟁이 내부 숙청을 촉진했고, 내부 숙청이 외부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켰으며, 그 약화가 다시 배신 의심을 강화했다. 이것이 자기증폭적 숙청 장치의 군사적 형태다.
ECCC의 Sou Met 자료도 군 내부 숙청의 자기절단성을 보여준다. Sou Met은 민주 캄푸치아 공군, 곧 Division 502의 지휘관으로 설명되며, ECCC 자료는 그가 자신의 Division 502 숙청과 동부 지역 병사 숙청에 연루되었다고 정리한다. 이는 숙청이 피지배 민간인에 대한 폭력에 그치지 않고, 군사 조직 내부의 기능적 인력까지 겨냥했음을 보여준다. 군대는 적과 싸우는 조직이어야 하지만,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군대 자체가 내부 적 색출의 대상이 되었다.
메커니즘 1: 정책 실패를 내부 적으로 번역하는 체제
크메르 루주 정권은 농업 생산 증대, 자급자족, 집단화, 도시 해체, 계급 재편을 급진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은 현실의 생산 조건, 숙련, 물류, 질병, 토양, 기후, 동기부여, 행정 능력을 무시했다.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높았다. 문제는 실패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이다.
정상적인 정책 체계라면 실패는 피드백이다. 생산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목표 설정, 노동 배치, 배급, 기술, 운송, 행정 역량, 인센티브를 점검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실패가 이념의 결함이나 정책 오류로 인정되기 어려웠다. 혁명 노선은 옳고, 당은 옳으며, 앙카르는 옳다는 전제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는 설명은 내부의 적이다. 생산 실패는 사보타주가 되고, 식량 부족은 숨겨진 반혁명 행위가 되며, 행정 혼란은 적의 침투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숙청이 정책 실패의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실패의 원인이 기술적·제도적 문제가 아니라 배신자라면, 해결책은 정책 수정이 아니라 배신자 색출이다. 색출은 더 많은 노동 동원과 더 강한 감시를 낳고, 이것은 다시 생산성과 정보 정확성을 떨어뜨린다. 실패는 심화되고, 심화된 실패는 더 큰 배신 서사를 요구한다. 결국 체제는 정책 학습 대신 숙청 학습을 한다.
이념은 이 과정에서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이념은 어떤 원인을 인정할 수 있고 어떤 원인을 인정할 수 없는지를 결정했다. 크메르 루주가 만들려 한 농업 유토피아는 실패할수록 더 순수한 혁명, 더 강한 감시, 더 철저한 적 색출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폭력은 정책 실패의 부산물이 아니라 정책 실패를 해석하는 공식 언어가 되었다.
메커니즘 2: 고문 자백의 자기증폭 구조
고문 자백 체계는 숙청을 스스로 증명하게 만든다. 누군가 체포된다. 이미 그는 적으로 간주된다. 고문은 그가 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백을 요구한다. 수감자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이름을 제공한다. 제공된 이름은 새로운 체포의 근거가 된다. 새로 체포된 사람은 다시 고문을 받고 더 많은 이름을 제공한다. 이렇게 숙청은 외부 증거 없이도 확장될 수 있다.
이 구조의 위험은 무한 확장성에 있다. 실제 음모가 없어도 음모망이 만들어진다. 고문은 사회적 관계를 범죄 네트워크로 바꾼다. 가족, 동료, 상급자, 하급자, 같은 지역 출신, 같은 부대 소속, 과거에 함께 일한 사람이라는 연결 자체가 혐의가 된다. 체제는 점점 더 많은 내부 적을 발견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발견이 아니라 고문 절차가 생산한 결과다.
S-21 기록이 방대하다는 사실은 이 메커니즘을 더 잘 보여준다. 기록이 많을수록 체제는 자신이 과학적·체계적으로 적을 찾아낸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은 고문이라는 생산 방식에 의해 만들어졌다. 허위 생산 방식에서 나온 기록이 다시 정책 판단의 근거가 되면, 체제는 스스로 만든 허구에 의해 움직인다.
메커니즘 3: 과잉 충성 경쟁과 생존 신호
공포 정치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생각보다 공개적으로 안전한 태도를 선택한다. 티무르 쿠란의 선호 위조 개념은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 간부는 자신이 의심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 증명해야 했다. 혁명적 언어를 사용하고, 적 색출에 적극적이며, 처벌에 주저하지 않는 태도가 충성의 신호가 되었다.
이때 문제는 충성 신호가 점점 더 과격해진다는 점이다. 모두가 같은 구호를 외치면, 단순한 구호는 더 이상 차별화된 충성 신호가 되지 못한다. 더 강한 충성을 보여주려면 더 많은 고발, 더 빠른 처벌, 더 가혹한 노동 동원, 더 엄격한 감시가 필요해진다. 폭력은 충성의 언어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온건함이 위험해진다. 누군가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그는 적을 보호하는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누군가 “생산 목표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면, 그는 혁명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누군가 “베트남과의 전쟁이 군사적으로 위험하다”고 말하면, 그는 베트남과 연결된 사람으로 몰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합리적 검토는 불충성의 신호가 되고, 과잉 행동은 생존 신호가 된다.
이 점에서 크메르 루주 숙청은 단순한 상명하복이 아니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아래가 따랐다는 설명만으로는 숙청의 자기증폭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하위 단위는 명령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충성을 과시했다. 각 단위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폭력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중앙은 그 폭력을 새로운 적의 존재 증거로 받아들였다. 위와 아래가 함께 숙청을 증폭한 것이다.
메커니즘 4: 독재자의 정보 문제와 지도부의 피해망상
독재자는 피지배자와 엘리트가 자신에게 충성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억압이 강할수록 사람들은 진실을 숨긴다는 점이다. 로널드 윈트로브가 말한 독재자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억압은 단기적으로 복종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진짜 충성과 가짜 충성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모두가 충성을 외치면 지도자는 누가 실제로 충성하는지 알 수 없다.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이 딜레마를 더 많은 감시와 더 많은 숙청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정보 문제를 악화시켰다. 하위 간부는 실패를 사실대로 보고하면 처벌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산량, 충성도, 적 색출 성과를 왜곡해 보고할 유인이 있었다. 지도부는 왜곡된 보고를 받고 현실을 더 잘못 이해했다. 현실과 정책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지도부는 실패를 내부 적의 존재로 해석했다.
지도부의 피해망상은 개인 심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 S-21 자백은 지도부가 이미 가진 의심을 확인해주는 문서였다. 동부 지역의 전쟁 상황은 베트남과의 결탁 서사를 강화했다. 생산 실패는 사보타주 서사를 강화했다. 하위 간부의 과잉 충성은 적이 많다는 판단을 강화했다. 이렇게 피해망상은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기록·보고·체포·자백·처형의 제도적 순환 속에서 객관적 사실처럼 굳어졌다.
메커니즘 5: 충성-능력 교환의 붕괴
독재 체제는 충성스러운 인력을 선호한다. 그러나 국가와 조직을 운영하려면 능력 있는 인력도 필요하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충성-능력 교환(loyalty-competence trade-off)으로 설명한다. 게오르기 에고로프(Georgy Egorov)와 콘스탄틴 소닌(Konstantin Sonin)의 독재자와 측근 연구, 알렉세이 자하로프(Alexei Zakharov)의 독재 체제 내 충성-능력 교환 논의는 이 문제를 이론화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이 교환이 극단적으로 무너졌다. 교육받은 인력, 도시 경험자, 전문직, 행정 경험자, 외국어 능력자, 군 지휘 경험자, 지역 기반을 가진 간부는 체제 운영에 필요했지만 동시에 의심의 대상이었다. 능력은 독립적 판단의 가능성으로, 지역 기반은 잠재적 파벌로, 외부 지식은 반혁명적 오염으로, 군사 역량은 쿠데타 가능성으로 읽힐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체제는 자신에게 필요한 능력을 스스로 제거했다.
이 과정은 단기 권력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독립적 기반을 가진 강한 간부를 제거하면 지도자의 즉각적 위협은 줄어든다. 장기적으로는 행정과 군사 역량이 약화된다. 크메르 루주는 이 장기 비용을 감당할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충성의 기준이 계속 상승하고 의심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면서, 능력 있는 인력은 보호받기보다 제거되기 쉬웠다.
메커니즘 6: 중앙과 지역의 긴장
크메르 루주 체제는 중앙집권적 이념을 내세웠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지역 구역과 군 단위의 역할이 컸다. 지역 간부들은 혁명 과정에서 자체 기반을 형성했고, 각 구역은 서로 다른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중앙 지도부에게 지역 기반은 필요하면서도 위험했다. 지역 간부는 생산과 동원을 담당하는 필수 중개자였지만, 동시에 중앙의 완전한 통제 밖에 있는 잠재적 권력 기반이었다.
동부 지역 숙청은 이 긴장을 보여준다. 베트남과의 전쟁은 동부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을 높였고, 중앙은 지역 간부와 군대를 외부 적과 연결된 내부 적으로 의심했다. 서남부 병력과 중앙군의 투입은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중앙이 지역 권력을 재편하는 과정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실제 방어 능력, 현지 정보, 군사 경험은 보존되지 못했다.
독재 체제에서 숙청은 권력 균형을 재조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에리카 골드링(Erica Goldring)의 엘리트 숙청 연구는 독재자가 강한 연결망과 협상력을 가진 초기 엘리트를 더 많이 숙청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크메르 루주 숙청도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권력 재편의 전략적 요소를 가진다. 문제는 전략이 폭력적 정보 체계와 결합할 때 통제 가능성을 잃는다는 점이다. 특정 위협 제거로 시작된 숙청은 광범위한 네트워크 파괴로 확대된다.
구체적 사례: S-21, 동부 지역, Division 502
S-21 사례는 내부 엘리트가 어떻게 적으로 재분류되는지를 보여준다. 수감자는 종종 크메르 루주 내부 인물이었다. 그들은 체제의 일부였지만, 어떤 순간부터 CIA, 베트남, 반혁명 세력과 연결된 적으로 문서화되었다. 고문 자백은 개인의 과거를 체제의 적대 서사 안에 다시 배치했다. 그 결과 수감자는 실제 행위보다 체제가 요구하는 배신자 역할에 맞추어 기록되었다.
동부 지역 숙청은 외부 전쟁과 내부 의심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베트남과의 긴장은 실제 안보 문제였다. 하지만 체제는 안보 문제를 군사 전략, 외교, 방어선 강화, 정보 검증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동부 지역 전체를 잠재적 배신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ECCC 자료에서 확인되는 1978년 동부 지역 간부 대량 체포와 병력 투입은 이 의심이 제도적 폭력으로 전환된 장면이다.
Division 502 사례는 숙청이 군사 조직의 내부 기능까지 파괴했음을 보여준다. ECCC의 Sou Met 자료는 그가 Division 502 지휘관이었고, 자신의 부대와 동부 지역 병사 숙청에 연루되었다고 정리한다. 군 지휘관이 자신의 군 조직을 보호하기보다 숙청에 관여하는 구조에서는 군대의 기능적 목적이 흔들린다. 군대는 외부 적과 싸우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내부 적 색출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체제 방어 장치가 체제 파괴 장치로 바뀌는 전형적 장면이다.
주요 쟁점과 반론
첫 번째 쟁점은 이념의 역할이다. 어떤 해석은 크메르 루주 폭력을 이념 광신의 결과로 본다. 이 해석은 중요한 부분을 설명한다. 농업 유토피아, 계급 없는 사회, 도시와 시장의 부정, 순수한 혁명 공동체라는 목표가 없었다면 이런 폭력의 명분과 범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이념만으로는 숙청의 자기증폭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이념적 언어가 어떤 제도, 정보 체계, 전쟁 상황, 보상 구조와 결합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두 번째 쟁점은 지도부의 편집증이다. 폴 포트(Pol Pot)와 중앙 지도부가 베트남, CIA, 내부 배신에 대한 과도한 의심을 가졌다는 설명은 타당하다. 그러나 지도자의 심리만으로는 수천 명의 간부, 심문관, 군 지휘관, 지역 조직이 어떻게 폭력에 참여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피해망상은 개인 심리에서 출발했을 수 있지만, 체제 안에서는 자백서, 보고서, 회의, 체포 명단, 처형 절차를 통해 제도화되었다.
세 번째 쟁점은 전쟁의 역할이다. 베트남과의 충돌은 숙청을 폭발시킨 중요한 조건이었다. 외부 위협은 내부 결속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내부 배신 서사를 강화했다. 전쟁은 숙청의 원인 중 하나였고, 숙청은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켰다. 이 상호작용이 동부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네 번째 쟁점은 문화주의적 설명이다. 일부 대중적 설명은 캄보디아 사회의 전통, 복종 문화, 폭력 문화 같은 넓은 범주로 크메르 루주를 설명하려 한다. 알렉산더 라반 힌턴(Alexander Laban Hinton)의 연구는 문화적 의미 구조와 폭력 수행 방식을 분석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문화 결정론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크메르 루주 폭력을 특정 민족성이나 문화 본질로 설명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정치 조직, 전쟁, 이념, 제도, 국제 환경, 지도부 전략, 지역 권력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다섯 번째 쟁점은 법적 “제노사이드”와 역사적 “캄보디아 집단학살”의 관계다. 학술·대중적 맥락에서는 크메르 루주 시기의 대량 사망을 Cambodian Genocide라고 부른다. ECCC의 Case 002/02에서는 베트남인과 참(Cham) 집단에 대한 제노사이드 유죄 판단이 내려졌고, 크메르 다수 피해에 대해서는 주로 반인도범죄, 박해, 절멸, 살인, 강제이주, 노예화 등으로 법적 판단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역사적 용어와 국제형사법상 범죄 구성요건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해와 한계
첫 번째 오해는 “잔혹했기 때문에 비합리적이었다”는 판단이다. 잔혹성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고, 합리성은 행위 구조의 분석 범주다. 크메르 루주 폭력은 극단적으로 잔혹했지만, 그 잔혹성은 특정한 조직 보상 구조 안에서 생존 신호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기능했다. 잔혹하다는 사실과 수단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은 서로 배제되지 않는다.
두 번째 오해는 “자기파괴적이면 자기이익 모델이 틀렸다”는 판단이다. 자기이익 모델이 곧 체제 전체의 장기 이익을 뜻한다면 이 사례는 반례가 된다. 그러나 자기이익의 단위를 개별 간부, 지역 세력, 지도자, 보안기관으로 나누고, 시간 범위를 단기와 장기로 나누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단기적 자기보존 전략들이 모여 장기적 자기파괴를 낳을 수 있다.
세 번째 오해는 “고문 자백이 많았으니 실제 음모도 많았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고문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장치가 아니다. 고문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요구된 서사를 말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 쉽다. S-21의 자백 기록은 정권의 의심과 폭력 절차를 연구하는 자료로 중요하지만, 자백 내용 자체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 번째 오해는 “크메르 루주 지도부만이 가해자였고 나머지는 수동적 도구였다”는 단순화다. 지도부 책임은 결정적이지만, 폭력은 하위 조직과 지역 단위, 수용소 직원, 군사 조직, 협력자들의 행위를 통해 수행되었다. 이 말은 책임을 분산해 희석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이 어떻게 사회적·조직적으로 작동했는지를 정확히 보자는 뜻이다.
다섯 번째 오해는 “S-21만 이해하면 크메르 루주 폭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축소다. S-21은 핵심 기관이지만 전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강제노동, 기아, 질병, 지방의 처형장, 소수민족 박해, 종교 탄압, 가족 해체, 전쟁, 강제이주가 함께 작동했다. S-21은 내부 숙청과 정보 생산 구조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지만, 크메르 루주 폭력의 전체 지형은 더 넓다.
자료상의 한계도 분명하다. 사망자 수는 연구자와 방법론에 따라 범위가 다르다. S-21 기록은 방대하지만 체제의 폭력적 생산물이므로 내용의 사실성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ECCC 판결은 법적 기준에 따라 구성된 진실이며, 역사학의 모든 질문을 포괄하지 않는다. 캄보디아의 기억 정치와 현재 정치 상황도 과거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 글의 설명은 현재 접근 가능한 연구와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 모든 지역 사례와 개인 경험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종합: 합리성의 병리적 재배치
크메르 루주 숙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분석 문장은 “합리성의 병리적 재배치”다. 이 표현은 두 가지 함정을 피하게 해준다. 하나는 크메르 루주 폭력을 순수한 광기나 야만으로만 보는 함정이다. 다른 하나는 폭력을 지나치게 냉정한 전략으로만 보아 잔혹성과 이념적 맹목을 흐리는 함정이다. 크메르 루주 체제에서는 이념, 공포, 제도, 전쟁, 정보 왜곡, 개인 생존 전략이 결합했다.
이 구조에서 정책 실패는 내부 적의 증거가 되었다. 고문 자백은 진실이 아니라 숙청의 연료가 되었다. 충성 경쟁은 온건함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독재자의 정보 문제는 더 많은 감시와 숙청으로 악화되었다. 전쟁은 내부 배신 의심을 강화했고, 내부 숙청은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켰다. 군사·행정 역량을 보존해야 할 조직은 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의심하고 제거했다.
결국 크메르 루주 숙청은 자기이익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이익의 분해를 보여준다. 체제 전체의 장기 이익, 지도부의 권력 이익, 개별 간부의 생존 이익, 보안기관의 조직 이익, 지역 세력의 방어 이익이 서로 어긋났다. 정상적인 제도라면 이런 어긋남을 조정하고 정보를 검증해야 한다. 크메르 루주 체제는 그 조정 장치를 숙청 장치로 대체했다. 그래서 합리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단위와 짧은 시간 범위, 허위 정보, 공포 보상 구조 속에서 자기파괴적으로 작동했다.
정리
크메르 루주 숙청은 합리적 자기이익 모델을 단순히 깨뜨리는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이익 모델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례다. 행위자의 단위, 시간 범위, 정보 구조, 제도적 보상, 외부 전쟁 조건을 구분하면 크메르 루주 숙청은 더 잘 설명된다. 개별 간부에게는 숙청 참여가 단기 생존 전략이었고, 보안기관에는 자백 생산이 조직 기능이었으며, 지도부에는 내부 적 색출이 정책 실패와 전쟁 위기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선택의 총합은 체제 전체의 자기절단이었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이론적 결론은 분명하다. 합리성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능력이 아니다. 폐쇄된 이념 체제, 공포 정치, 허위 정보, 충성 경쟁, 전쟁 피해망상이 결합하면 합리성은 장기적 생존을 보존하는 능력이 아니라 단기적 의심을 피하는 기술로 축소된다. 크메르 루주 숙청은 그 축소가 한 사회와 국가를 얼마나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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