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Einstein)은 왜 양자역학을 불완전하다고 보았는가
핵심 요약
Albert Einstein은 양자역학의 실험적·계산적 성공을 단순히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거부한 것은 양자역학이 자연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기술이라는 해석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크게 세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 자연 법칙이 근본적으로 확률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둘째, 멀리 떨어진 두 계가 즉각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얽힘 현상이 상대성이론의 국소성 원칙과 긴장한다고 보았다. 셋째, 측정 전에는 물리량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해석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설명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입장은 “양자역학은 틀렸다”가 아니라 “양자역학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에 가깝다. 1935년 Einstein, Boris Podolsky, Nathan Rosen이 발표한 EPR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사고실험이었다. 그러나 이후 John Bell의 정리와 Alain Aspect를 비롯한 여러 실험은 적어도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local hidden-variable theory) 이 양자역학의 예측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것이 모든 숨은 변수 이론을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Bohmian mechanics는 결정론과 실재성을 일부 보존하지만, 그 대가로 비국소성을 받아들인다.
1. 기존 초안에 대한 사실관계·논리 검토
기존 설명의 큰 방향은 대체로 타당하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계산적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완전성에는 반대했다는 점, EPR 논문이 그 문제의식을 대표한다는 점, Bell의 정리와 후속 실험이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에 강한 제약을 가했다는 점은 현대 물리학사 서술과 잘 맞는다.
다만 몇 가지 표현은 더 정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첫째, “측정이 현실을 만든다”는 문장은 지나치게 강하다.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을 단순화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엄밀히는 표준 양자역학이 측정 전 물리량에 대해 고전적 의미의 확정값을 일반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즉 문제는 “현실이 없다”가 아니라 “측정 전 물리량을 고전적 속성처럼 말할 수 있는가”이다.
둘째, “숨은 변수 이론 불가능”이라는 표현도 보완해야 한다. Bell의 정리와 Bell test 실험들이 강하게 배제한 것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다.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까지 논리적으로 모두 배제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David Bohm의 Bohmian mechanics는 비국소적 구조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예측을 재현한다.
셋째, “상대성이론과 충돌”이라는 표현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양자 얽힘은 Bell 부등식을 위반하는 비고전적 상관관계를 보여주지만, 그것만으로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더 정확한 표현은 “얽힘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신호 전달 제한과 직접 충돌한다기보다, 고전적 국소 실재론(local realism)과 충돌한다”이다.
넷째, EPR 논문을 “숨은 변수 이론을 찾기 위한 논문”이라고만 말하면 약간 좁다. EPR 논문의 직접 목표는 양자역학의 파동함수 설명이 완전한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숨은 변수는 그 불완전성을 보완할 가능성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EPR 논문 자체의 핵심 결론은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물리적 실재의 완전한 기술이 아니다”라는 쪽에 가깝다.
2. 문제의 출발점: 성공한 이론이 왜 불완전할 수 있는가
과학 이론은 두 가지 방식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예측이 맞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예측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양자역학은 첫 번째 기준에서는 압도적으로 성공했다. 원자 스펙트럼, 반도체, 레이저, 핵자기공명, 양자정보과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기술의 상당 부분은 양자역학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 아인슈타인도 이 점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양자론 형성에 직접 기여한 인물이었다. 광전효과에 대한 그의 설명은 양자 개념의 핵심적 출발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문제 삼은 것은 예측의 성공이 곧 완전한 설명을 의미하는가였다. 어떤 이론은 관측값을 정확히 맞히면서도 그 배후의 실재 구조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고전 통계역학을 예로 들면, 우리는 기체 분자의 개별 운동을 몰라도 온도와 압력을 확률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그 확률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분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확률도 이와 비슷하기를 기대했다. 즉 전자의 스핀, 위치, 운동량이 측정 전에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모르는 더 깊은 변수 때문에 확률적으로 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불만은 계산 결과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계산이 자연의 최종 구조를 말해준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3. 확률성: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의 의미
양자역학의 핵심은 측정 결과가 확률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전자의 스핀을 특정 방향으로 측정하면 결과는 위 또는 아래로 나타날 수 있다. 표준 양자역학은 개별 측정에서 어떤 결과가 반드시 나올지 말하지 않고, 각 결과가 나올 확률을 제공한다. 이 확률은 단순한 계산 편의가 아니라 이론의 기본 구조 안에 들어 있다.
아인슈타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자연이 근본적으로 우연에 의해 작동한다고 보는 해석에 반대했다. “God does not play dice”라는 표현은 이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종교적 신앙 고백이라기보다, 자연 법칙은 근본적으로 질서 있고 결정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물리학적 직관을 드러낸 표현에 가깝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된다. 아인슈타인이 모든 확률 사용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통계역학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확률의 지위였다. 고전 통계역학에서 확률은 우리의 정보 부족을 반영한다. 반면 표준 양자역학에서 확률은 자연 자체의 근본적 성격처럼 취급된다. 아인슈타인이 거부한 것은 바로 이 근본적 확률성이다.
4. 국소성: 멀리 떨어진 사건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물리적 영향이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넓게 말하면 국소성(locality)의 직관이다.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면 그 영향은 공간을 가로질러 전달되어야 하며,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양자 얽힘(entanglement)은 이 직관을 흔든다. 두 입자가 하나의 얽힌 상태로 준비된 뒤 멀리 떨어졌다고 하자. 한 입자를 측정하면 다른 입자의 측정 결과와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이 상관관계는 단순한 우연이나 사전에 정해진 고전적 정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현상을 “spooky action at a distance”, 즉 유령 같은 원격 작용으로 비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핵심은 그가 초자연적 현상을 말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이 그런 방식의 비국소적 연결을 최종 설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에게 물리 이론은 공간적으로 떨어진 계를 각각 독립적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했다.
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더 섬세한 구분이 필요하다. 얽힘은 빛보다 빠른 신호 전달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쪽 측정자가 자신의 결과를 마음대로 조작해 다른 쪽에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다. 따라서 얽힘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정보 전달 제한을 직접 깨뜨린다기보다, “측정 전부터 값이 정해져 있고, 멀리 떨어진 측정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고전적 국소 실재론과 충돌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5. 실재성: 측정 전에도 세계는 존재하는가
아인슈타인의 문제의식에서 실재성(realism)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물리 이론이 관측 결과의 목록을 정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물리학은 관측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의 구조를 설명해야 한다. 쉽게 말해, 달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직관이다.
양자역학은 이 직관을 곧장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표준 형식주의는 측정 전 물리량에 대해 고전적 의미의 확정값을 일반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고전적 입자처럼 정확히 갖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입자는 측정 전에는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로 기술되고, 측정 후 특정 결과가 얻어진다.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이것은 설명의 후퇴였다. 물리학이 말해야 할 것은 “우리가 측정하면 이런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온다”만이 아니라, “측정 여부와 무관하게 세계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여야 했다. 그는 양자역학이 후자에 대해 침묵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유용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6. EPR 논문: 완전성에 대한 공격
1935년 Einstein, Podolsky, Rosen은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양자역학이 실험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양자역학의 기술이 물리적 실재를 완전하게 설명하는가를 묻는다.
EPR의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두 입자가 서로 강하게 상관된 상태로 준비된다. 두 입자가 멀리 떨어진 뒤, 한 입자의 물리량을 측정하면 다른 입자의 대응 물리량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입자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한쪽에서 수행한 측정이 다른 쪽 입자의 물리적 상태를 즉시 바꾼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쪽 입자의 해당 물리량은 측정 전부터 어떤 의미에서 이미 실재해야 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그 물리량을 모두 완전하게 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완전하지 않다.
이 논증의 핵심은 세 가지 가정의 긴장이다.
1. 물리적 실재는 관측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2. 멀리 떨어진 사건은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3.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물리적 상태를 완전히 기술한다.
EPR은 이 셋을 동시에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들은 특히 세 번째를 포기하려 했다. 즉 양자역학의 파동함수는 완전한 설명이 아니며, 그 아래에 더 깊은 기술이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7. Bohr의 반론: 완전성의 의미가 다르다
Niels Bohr는 EPR 논문에 즉시 반론을 제기했다. Bohr의 관점에서 EPR은 양자현상에 고전적 실재 개념을 부적절하게 적용하고 있었다. 양자역학에서 물리량은 측정 장치와 분리된 추상적 속성으로만 말할 수 없으며, 어떤 실험 배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는지가 물리량의 의미를 결정한다.
Bohr의 반론은 난해하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다. EPR은 측정 전 입자가 이미 고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양자현상에서는 측정 맥락과 무관하게 모든 물리량이 동시에 확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양자역학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EPR이 요구하는 “완전성” 자체가 고전물리학적 기준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 대립은 단순히 수학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학이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충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관측자와 무관한 실재의 기술을 요구했다. Bohr는 실험 조건과 분리된 실재 언어가 양자영역에서는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8. Bell의 정리: 철학 논쟁이 실험 가능한 문제가 되다
EPR 논쟁은 오랫동안 해석의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1964년 John Bell은 이 논쟁을 실험 가능한 형태로 바꾸었다. Bell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맞다면 측정 결과들 사이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만족해야 하는 수학적 한계가 있음을 보였다. 이것이 Bell inequality이다.
중요한 점은 Bell의 정리가 단순히 “양자역학은 이상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제시했다.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맞다면
→ Bell 부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양자역학이 맞다면
→ 특정 조건에서 Bell 부등식이 위반될 수 있다.
따라서 실험을 통해 어느 쪽이 자연에 가까운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John Clauser, Alain Aspect, Anton Zeilinger 등은 얽힌 입자를 이용한 실험을 수행했고, 결과는 반복적으로 Bell 부등식 위반을 보여주었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이러한 얽힘 실험과 양자정보과학의 토대를 세운 공로로 Clauser, Aspect, Zeilinger에게 수여되었다.
이 결과는 아인슈타인이 기대한 형태의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을 “아인슈타인이 완전히 틀렸다”로 단순화하면 곤란하다. Bell의 정리와 후속 실험은 오히려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질문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문제 삼지 않았다면, 얽힘의 철학적·물리학적 의미는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9. 왜 “숨은 변수 이론 전체가 틀렸다”고 말하면 안 되는가
Bell test의 결과는 흔히 “숨은 변수 이론의 사망”처럼 설명된다. 그러나 이 표현은 부정확하다. 실험이 강하게 배제한 것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이다. 즉 측정 결과가 사전에 정해져 있으면서도, 한쪽 측정이 멀리 떨어진 다른 쪽 결과에 어떤 비국소적 방식으로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 배제된 것이다.
Bohmian mechanics는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 이 해석 또는 이론은 입자의 위치와 궤적 같은 실재적 요소를 도입하고, 전체 운동은 결정론적으로 진행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이 원했던 결정론과 실재성 일부를 되살린다. 하지만 Bohmian mechanics는 명시적으로 비국소적이다. 얽힌 계에서 한 입자의 상태는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와 분리해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Bohmian mechanics는 아인슈타인의 직관을 절반만 살린다. 결정론과 실재성은 살리지만, 국소성은 포기한다. 아인슈타인이 정말 원했던 것은 결정론, 실재성, 국소성을 모두 유지하는 더 깊은 이론이었다. Bell 이후의 물리학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유지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0. 현대적 관점: 아인슈타인은 어디까지 틀렸고, 어디까지 옳았는가
현대 물리학의 표준적 판단은 비교적 분명하다. 양자역학은 실험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며, Bell 부등식 위반 실험들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을 강하게 배제한다. 이 점에서 아인슈타인의 기대, 즉 국소적이고 결정론적이며 실재론적인 더 깊은 이론이 표준 양자역학 아래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현재까지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문제 제기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양자역학의 가장 깊은 난점을 정확히 찔렀다. 확률은 무지의 표현인가, 자연의 근본 성질인가. 멀리 떨어진 두 물리계는 정말 독립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가. 측정 전의 세계에 대해 물리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지금도 양자역학 해석의 핵심에 남아 있다.
오늘날의 양자역학 해석들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르게 답한다. 코펜하겐 계열 해석은 측정 맥락과 확률적 예측을 중심에 둔다. Many-worlds interpretation은 파동함수의 보편적 진화를 받아들이되, 측정 결과의 단일성을 다르게 해석한다. Bohmian mechanics는 결정론적 입자 운동을 도입하지만 비국소성을 받아들인다. 객관적 붕괴 이론(objective collapse theory)은 파동함수 붕괴를 물리적 과정으로 본다. 즉 양자역학의 수학은 강력하지만, 그 수학이 말하는 세계상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해석적 논쟁의 대상이다.
11. 정리: 아인슈타인의 반대는 실패한 고집이 아니라 생산적 저항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 비판은 낡은 결정론자의 고집으로만 볼 수 없다. 그는 새 이론의 예측력이 아니라, 그 이론이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원한 것은 관측자와 무관한 실재, 빛보다 빠른 물리적 영향이 없는 국소성, 그리고 우연이 아니라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이었다.
그러나 양자역학과 Bell 이후의 실험들은 자연이 그런 고전적 요구를 모두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얽힘은 세계가 서로 분리된 물체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고전적 직관보다 훨씬 더 깊은 상관구조를 가진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질문은 패배하지 않았다. 질문의 결론은 그가 기대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지만, 질문 자체가 현대 물리학을 전진시켰다. EPR 논문은 Bell의 정리로 이어졌고, Bell의 정리는 얽힘 실험으로 이어졌으며, 얽힘 실험은 오늘날 양자정보과학의 기반이 되었다. 이 점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막아선 인물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든 인물이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성공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이 곧 자연의 완전한 설명이라는 결론을 거부했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이 보여준 결론은 다음에 가깝다.
아인슈타인이 원한 국소적·결정론적·실재론적 세계상은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던진 완전성의 질문은 양자역학의 가장 생산적인 질문이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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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Bohr,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Physical Review 48, 696–7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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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Bell, “On the Einstein Podolsky Rosen Paradox”, Physics Physique Fizika 1, 195–200,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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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bel Prize, “The Nobel Prize in Physics 2022 — Press release”.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2022/press-release/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Quantum Entanglement and Information”.
https://plato.stanford.edu/entries/qt-entangle/